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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09) 장미와 찔레꽃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5 조회수386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040       작성일    2004-05-11 오후 12:51:01
 
 

2004년5월11일 부활5주간 화요일 ㅡ사도행전14,19-28;요한14,27-31ㅡ

 

 

  (109) 장미와 찔레꽃

                                이순의

 

 

2층 발코니에 연결 된 좁은 아래층 지붕에 장미와 찔레꽃이 만발을 했다.

겨우내 앙상한 줄기가 꼴사나워 낫을 들고 확 베고 싶을 만큼 추접하더니 향기까지 동

원해서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기분이 상당하다. 탐스럽게 짙은 홍색의 장미와

홑겹의 연분홍 찔레꽃과 하얀색 겹 찔레꽃이 어우러진 우리 집의 장대한 넝쿨기둥은

길을 가던 주민들도 한 번씩은 더 처다 볼 만큼 어여쁜 처녀가슴의 속살 같이 풍성하고

수줍다.주인집 사모님은 화초를 무척 좋아하신다. 그래서 화분도 곧 잘 사 오시는데 사

오신 만큼 화초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신다. 불경스럽게도 늘 짧게 유명을 달리하는 화

초들 때문에 마음이 애석하시다. 그럴 때면 나의 처방전이 발부된다.

"조금만 사랑하십시오."

불과 얼마 전에 기관이 들어서버린 옛 친정집 정원에는 유실수와 화초들이 숲을 이뤄

사시사철 볼거리가 많았다. 아버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천국이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집이 천국이라고, 꽃이 피면 놀러가지 말고 내 집에서 꽃구경하라고 하실

만큼 애정이 깊은 정원이었다.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겨울에 피는

설화까지 아름다웠던 풍경은 사진속의 그림으로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런 덕택으로 화초뿐만 아니라 수목을 기르는 솜씨가 나도 모르게 전수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모님은 예뻐만 하시지 가꾸실 줄을 모르신다. 아니 너무 열심히 가꾸셔서 실

패를 하신다. 더구나 항상 예쁜 상태를 요구하신다. 예뻐지기 위해서는 인내를 하고

기다리면서 그 개화시기를 참아야 하는데 예뻐서 사오셨다가 환경에 적응이 안 되거나

만개한 꽃들이 사그라지면 듣는데서 밉다는 소리를 하신다. 꽃들도 다 알아들으니까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밉다고 밉다고 밉다고만 하신다. 뿐만 아니라 시기를 잘 모르셔

서 아무 때나 잘라버리거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내에는 좀 못 견디신다. 제 때 잘라

야 제 때 꽃이 피고, 몇 달을 기다려야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는 화초에게 자라지 않는

다고 구박이시다. 모든 인고의 시기를 보내고 꽃시장에 완제품으로 출시된 상품을 보

고 오셔서 왜 그 꽃처럼 자라지 않느냐고 투덜거리신다. 그러니 영양과잉이나 수분과

잉으로 화초들이 웃자라서 비리비리 하거나 어느 날은 너무 싹둑 잘라 놓아서 망연자

실 할 때도 있다.

"사모님 애네들이 준비완료 상태인데 이렇게 잘라버리면 다시 몸살을 하고 고통을 해

야 되는데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애네들도 사람하고 똑 같다니까요. 애네들도 인격

을 존중해 줘야 해요. 사모님 마음대로 애네들에게 요구하면 애네들도 화병들어요."

그렇지만 너무 열심히 바라보시며 사고만치는 사모님 때문에 언제나 고생이 많은 쪽

은 화초들이다.

 

지난 가을부터 장미 넝쿨과 찔레꽃 넝쿨을 묶어야 한다고, 그러나 그 방법이 서지 않

는다고 누차에 하문을 하셨다. 친정집에서 어려서 부터 해 본 일들이라서 걱정을 마시

라고 해도 걱정이 되시는 겨울을 났다. 그런데 봄이 되어서 새 잎이 돋아나기 전에 넝

쿨 손질을 하셔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신다. 싹이 돋으면 어린잎이 다치니까 돋기 전

에 손질을 하시자고 해도 안하시더니 어린 싹이 움트실 준비를 하느라고 넝쿨의 검붉

은 겨울줄기에 연초록 물오름이 보이는 3월에 나는 손이 다쳐버렸다. 그냥 모른 체 해

버렸다. 손도 다쳤고, 사다리도 안 빌려 오시고, 하자고 해도 바쁘신 것 같고, 귀찮기

도 하고........

결국 넝쿨은 미친년 산발하듯이 벌래 벌래한 상태에서도 어린 연둣빛 새싹들이 돋아

나고 있었다. 그 때서야 사모님은 사다리를 빌려오시고 줄을 사오시고 준비완료 상태

시지만 나는 손이 다쳤기 때문에 도와드릴 수가 없어서 입으로 지시만 했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보지 않으신 분이라 넝쿨을 묶는데도 이해의 폭이 한계가 있었다. 사람이

흙에 대하여 생물에 대하여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작정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냥 내 몸 안에서 익히고 있는 생명론을 왜 그렇게 해야 하

는지를 입으로 표현을 해서 이해를 돋우어야 한다는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에" 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완동물을 사랑해서 키우지만 키우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그 동물

이 필요로 하는 모든 환경을 박탈하고 인간이 요구하는 최고의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사람이 좋아서 마련한 환경이 그 동물에게도 좋다는 말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식물에게도 그런 적용이 되려고 했다. 코딱지만 한 화단에서 너풀거리는 넝쿨 하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하고 사람의 마음대로 동여 매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몇 가닥

줄기상태를 묶어 주지만 곧 새순이 돋으면 몇 배로 무성해질 여름도 생각해서 느슨하

고 여유를 보아가며 태풍에도 주저앉지 않게 묶어줘야 한다는 사소한 이해까지 구해

야 했다.

 

어찌되었든 나와 사모님의 합작으로 장미와 찔레꽃의 넝쿨들이 아래층 화단에서 2층

발코니까지 멋지게 올라와 있다. 그런데 햇살이 좋은 2층 발코니만 먼저 무성하다. 꽃

도 아래층보다 훨씬 굵고 향이 짙다. 봉오리도 아래층 봉오리 보다 배가 더 알차다.

5월이 오시면서 꽃들이 쉬지 않고 노동했음을 선언하고 있다. 사모님께서 실랑이하시

며 넝쿨을 묶었을 뿐인데 꽃들은 열심히 자기의 몫을 다 하며 움직인 것이다. 새 순이

돋을락 말락 하던 그 초라한 줄기에 무성한 잎사귀뿐만 아니라 꽃들과 향기까지 동행

하고 올라와 컴퓨터를 치고 있는 이 방안을 기웃거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 줄기 몇 가닥 묶어 준 선물치고는 너무 큰 답례를 받고 있다. 물 한 번도

주지 않았고, 척박한 도시의 코딱지만 한 화단에서 주변이 공사 중인데, 꽃들도 나만

큼 숨쉬기도 힘들었고 시끄러워서 두드러기가 돋아날 지경이었을 텐데, 꽃들은 군락

을 이루어 방실방실 웃는다. 지금 자기들의 글을 쓰고 있는걸 아는지 더욱 활짝 웃어

보인다. 내가 저 꽃들을 피워내기 위해 이른 봄부터 꼬챙이를 들고 줄기를 후벼 파는

작업을 했더라면 절대로 나오지 않았을 꽃들이다. 제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저렇게 열

심히 해낸 보람으로 예쁜 꽃을 피운 것이다.

우리네 사람들은 누리는 축복을 쉽게 발견하지 못 한다.

창조주님이신 아버지는 모두에게, 각자에게, 공기 한 점,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게

도 그 의미를 충분히 부여하셨는데도.......

 

ㅡ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요한14,2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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