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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별" - 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4 조회수315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3 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60,1-6 에페3,2.3ㄴ.5-6 마태2,1-12

                                                              
 
 
 
 
 
"주님의 별"
 
 


여러분은 주님의 별이,
여러분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주님의 별이 있습니까?

주님의 별을 보지 못해 목표와 방향을 잃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무기력하게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하늘에 있는 주님의 별만 아니라
눈 만 열리면 주님께로 인도하는 주님의 별은 여러분 곁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여러분 곁에 있는 성경도,
매일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도 주님의 별이 될 수 있고
믿음이 좋은 형제들도, 아름다운 자연도, 매일 떠오르는 태양도
주님의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겐 매일 미사가 주님께로 인도하는 제일 좋고 확실한 주님의 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일어나 비추십시오.
여러분의 빛이 왔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여러분 위에 떠올랐습니다.
 
자 보십시오.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고 있지만,
여러분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여러분 위에 나타납니다.

간절히 주님을 찾을 때 떠오르는 주님의 별입니다.

저절로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주님의 별이 아니라
간절히 찾을 때 눈이 열려 떠오르는 주님의 별을 발견합니다.
 
남 탓, 하느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내 하느님 찾는 열정의 사랑 부족을 탓해야 합니다.
 
아무리 주님의 별이 나타나도 내 눈이 닫혀 있으면 주님의 별을 보지 못합니다.
 
찾을 때 찾아오시는 주님이시오 주님의 별입니다.
 
주님을 찾는 열정의 사랑이 우선입니다.
 
늘 떠 있는 주님의 별이 아니라
사랑이 식어 찾지 않으면 사라지는 주님의 별입니다.
 
찾을 때 떠오르고 찾지 않을 때 사라지는 주님의 별입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모두가 주님의 탄생을 목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독과 침묵 중에 밤새 깨어 양떼를 지키며
주님을 갈망하던 가난한 목자들만이
주님의 천사로부터 구원자 탄생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잠들어 있던 그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들
아무도 주님 탄생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동방박사들, 진정 구도자의 모범입니다.
 
베들레헴, 예루살렘 가까이 사는 누구도 구원자 주님의 탄생을 몰랐는데
먼 동방의 이방인들인 박사들만이 주님의 별을 보고
탄생하신 주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동방박사들 역시 고독과 침묵의 인생여정 중에 끊임없이 주님을 찾았고
주님은 이들의 눈을 열어 주시어 주님의 별을 발견케 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예루살렘의 대 신학자들의 지식은 얼마나 해박합니까?
 
그러나 주님 탄생을 지척에 두고도 몰랐으니 죽은 지식일 뿐입니다.
 
깨어 주님을 찾지 않으면 그 많은 신학지식들 쓰레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동방박사들 진정 구도자의 모범입니다.
 
주님을 찾는 열렬한 사랑 있어 주님의 별을 발견한 동방박사들,
과연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가 주님께 경배하며 바칠 예물 중 첫째 예물입니다.


주님의 별을 따라 나선 동방박사들 진정 용기의 사람들입니다.
마음으로만 찾아 나선 게 아니라 실제 두발로 순례여정의 길에 올랐습니다.
 
온갖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힘들고 험한 시련의 여정에 오른 동방박사들
결코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처신은 얼마나 당당합니까?
 
헤로데 임금이나 백성의 수석사제들, 울법학자들에게
전혀 위축되거나 겁먹은 모습이 아닙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박사의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합니다.
 
이런 동방박사들의 용기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희망입니다.
 
희망은 용기의 샘 입니다.
 
 주님께 희망을 둘 때 백절불굴의 용기입니다.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곧 두려움이요,
절망과 더불어 용기도 시들어 버립니다.
 
희망에서 샘솟는 용기입니다.
 
동방박사들 참으로 용기 있는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이 희망이 우리가 주님께 경배하며 바칠 예물 중 둘째 예물입니다.

주님을 찾는 순례여정은 평생과정입니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단판 승부가 아니라
평생 승부를 요하는 순례 여정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순례여정,
그대로 우리의 인생여정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항구함이요
지칠 줄 모른 끈기와 인내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마지막 승리자가 됩니다.
 
해인사 방장이자 불교 종정이신 법전 큰 스님의 말씀입니다.

“바보처럼 꾸준히 가라. 그래야 자신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수 있다.”

꾸준히, 끝까지 순례여정에 충실했던 동방박사들
말 그대로 거룩한 바보들입니다.
 
이런 거룩한 바보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이런 이들을 은밀히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제 복음 나눔 중 형제들이 재미있어 한 헤로데의 다음 말입니다.

“가서 그 아이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속이 뻔히 보이는 헤로데가 꼭 사기꾼 같다는 말에 모두 웃으며 공감했고,
저는 ‘아무리 뛰어난 사기꾼도 하느님께는 사기 칠 수 없다.’고 화답했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는 동방박사들,
결코 헤로데에 속아 넘어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그대로 헤로데와 동방박사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 같습니다.
 
아니 헤로데와 동방박사들의 전쟁이지만
실상은 헤로데와 하느님과의 전쟁입니다.
 
그러니 이미 승부는 끝난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로 헤로데의 덫을 벗어나 무사히 귀가하는 동방박사들이요,
다음 대목이 동방박사들의 결정적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하느님의 작전지시에 따라 헤로데를 피해
자기고장에 돌아간 동방박사들은 싸우지 않고 헤로데를 이긴 셈입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헤로데 임금입니다.
 
바로 이 동방박사들의 항구한 인내와 끈기의 원천은 바로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순례여정에 항구했던 동방박사들 그대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가 주님께 경배하며 바칠 세 번째 예물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과거에 감추어졌던 신비가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완전히 계시되었습니다.
 
하여 다른 민족들인 우리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수혜자가 되었습니다.
 
그대로 이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실현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거룩한 미사시간
동방박사들과 함께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보다 더 좋은
사랑과 희망과 믿음의 예물을 바치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더 큰 사랑과 희망과 믿음의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 또한 사랑과 희망과 믿음이 충만한
‘주님의 별들’이 되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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