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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08) 엄마의 솜 조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4 조회수402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017      작성일    2004-05-08 오전 3:30:44

 

2004년5월8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ㅡ사도행전13,44-52;요한14,7-14ㅡ

 

   (108) 엄마의 솜 조끼

                                       이순의

               

ㅡ어버이 날ㅡ

내가 중학교 1학년 어버이날에 어머니께 장한 어머니 상을 안겨드릴 뻔 한 일이 있었다.

장한 어머니 글짓기에서 중학생 대표로 뽑힐 만큼 글재주가 있었다고 생각 되지는 않

고, 어머니의 삶이 장한 어머니 상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종 결선에서 

임선생님은 어머니를 부르셨다. 어머니는 학교에 다녀오신 뒤로 몹시 기뻐 하셨을 뿐

만 아니라 막내딸의 글재주로 학교에까지 다녀오신 보람이 크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장한 어머니 상을 타지 못하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우리 엄마가 제일 훌

륭한 엄마인데 학교에서는 오시라고 해 놓고 왜 장한 어머니 상은 주지 않는지 몹시

마음 상해라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받으나 다름이 없다고 크게 위안을 삼으셨다.

내가 그때 제목으로 쓴 글이 "엄마의 솜 조끼"였다. 그 때도 지금처럼 쓰는 걸 좋아해

서 중학교 1학년짜리 꼬마 여학생이 여러 날 동안 그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께서 입으시는 솜 조끼가 있었다. 조실부모한 아버지의 넘

치는 학구열과 진취적 성향을 뒷바라지 하는 데는 어머니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지 않

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안 해보신 일도 없지만 안 해보신 장사도

없다. 그 시절의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렇다고 하시니 굳이 내 어머니만이 장

한 어머니라고 밝히기에는 송구하기 그지없어서 더 이상의 모든 미사여구를 어버이

날을 맞은 모든 어버이들께 돌려드리고자 한다.

 

어머니의 체구는 자그마하시고 상호는 부리부리한 눈에 입술은 얇으신 데다 인중이

길고 광대뼈는 불거지셨다. 특히 어머니의 코는 생선 운지리를 닮았다고 하여 아버지

께서 어머니를 애칭으로 부르실 때는 "운지리코"라고 부르셨다. 얼굴이 곱상은 못 되

시고 어머니 스스로 상당한 세월동안 세상에서 나 보다 더 안 예쁜 여자는 없다고 생

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중년이 다 되어서 어느 날 길을 가시다가 어찌나 박색인 여

인이 지나쳐 가는 걸 보시고 세상에는 나 보다 더 안 예쁜 여자도 있다고 아버지 앞에

서 가끔은 힘주어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어머니 스스로 보아줄

얼굴이라고 인정하신 시점으로부터 몇 해를 넘기지 못 하시고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떠나셨다.

그런 어머니는 내가 유년의 아주 어린 기억으로 돌아가 보면 이불보다도 더 무거운 솜

조끼를 항상 입으셨다. 겨울이 오면 솜 조끼를 다시 손질하시곤 했는데, 허리가 시리

다고, 등이 시리다고, 그렇게 무거운 솜 조끼를 터서 두터운 속살에 얇은 속살을 덧대

서 다시 누비시곤 했다. 그렇게 무거운 이불 같은 조끼를 입고 어머니는 매일 밤이면

늦은 귀가를 하신 기억이 아련하다. 어머니께서 귀가 하셔야 그 솜 조끼도 함께 귀가

하는 겨울밤이 어린 막내의 기억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허리와 등이 시

린 만큼 솜 조끼도 도톰해 졌다. 솜 조끼의 무게가 어머니 인생의 무게였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었다.

그렇게 무거운 솜 조끼가 어머니의 등에서 사라진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

께서 지금도 겨울이면 입으시는 조끼가 있다. 내가 여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털조끼 두

개를 짰었다. 대바늘로 한 땀 한 땀 짜서 어머니께 등 따수우시라고 드렸는데 어머니

는 지금도 그 조끼를 입으신다. 막내딸이 짜주었다는 기억이나 애착심을 가지고 입으

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따숩고 오랫동안 입으셔서 마음

에 편안하시니까 마냥 입으시는 것 같다. 그 조끼를 입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아직도

저 조끼를 입으신다는 감회에 젖어드는 사람은 오히려 나다. 그 조끼가 20년도 더 된

조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솜 조끼"라고 쓴 장한 어머니 상을 타지 못한 이유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시골 읍내에 자리 잡은 여학교는 여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정 안에 여고도 있

었는데 그 여고에 다니는 사촌언니도 응모를 해서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뽑고 보니 여고와 여중의 대표로 뽑힌 장한 어머니가 한 집안의 친 동서 지관인

것이다. 한 집안에 상을 두개씩 안겨 준다는 것은 농촌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조금은 무

리인 것 같고, 학교에서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어머니를 부르신 것이다. 어머니는 담임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듣고 뽑힌 상을 양보하고 돌아 오셨다.

"형님이 지 땜시 떨어지먼 쓴다요? 지는 받으나 다름 없은께 우리 형님이 받으셔야제

라! 잉! 집안에서 똑같이 그런 일이 생겼으면 형님이 받어야 집안에서 대소가들 보기

도 좋고 더 큰 빛이 날 것인디 제가 무슨 큰 일을 했다고 형님을 제끼고 상을 받는다

요?! 우리 형님을 모셔다가 꼭 상을 주시제라. 우리 형님은 상을 받고도 남을 어른이

구먼이요.잉!"

그래서 어머니는 상을 못 받으셨고, 상을 받으신 큰어머니께도 그 사실을 밀고하지 않

았다. 그것이 나에게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나에게도 신혼 시절

에는 생각이 있었는데 5년이면 집 사고 10년이면 시동생들 독립시켜서 자리 잡아 주고,

시어머니 모시고 사람답게 살아야지. 라고 계획이 많았었다. 그러나 인생이 나의 마음

과 같이 순조롭지 못하면서 터득해 가는 것은 가난이 죄더라는 속담이 맞는다는 사실

과, 현실이 따르지 못 할 때는 각자 각자 생계라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효도라는 결

심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입은 다물 줄 알아야 모두에게 짐이 되는 약자는 면할 수 있

다는 냉혹한 진리를 더 따르게 되었다.

 

나도 어머니의 딸이며 한 가정의 며느리이다. 5월이 오면 벌써 몇 년째 심기가 불편한

날들에 빗금을 치고 있다. 나는 내 어머니께서 솜 조끼를 입고 희생하셨던 그런 희생

을 내 자식에게 안겨주지 못하는 엄마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부족하

고 자격이 없는 어미노릇을 하느라고 매일 씩씩거리고 있다. 조금 아프다고, 하던 일도

쉬고 앉아서 약만 먹고 있다. 5월이 오면 나는 무기력한 나를 반추하느라고 어머니의

큰 거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머니의 40대를 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허무 그 자체

이다. 자식도 어머니만큼 열정적으로 길러내지 못했고, 남편도 어머니만큼 출세시키

지 못 했고, 재산도 어머니만큼 이루기는커녕 새의 눈물만큼도 갖춘 게 없다.

그저 드릴 것도 없고 할 말도 없다. 나는 어머니처럼 솜 조끼를 입지 않으면서 인고를

통탄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에 가슴 아픈 자식이 나 뿐이겠는가?! 살다보니 죄인이 되어있더라는 것이지!

"엄마! 우리엄마! 못난 딸을 용서 하시구랴."  

"어머니! 우리 어머니! 부족한 며느리를 이해해 주시구랴."

아들이 작은 카네이션 바구니를 선물로 주었다. 아직 그 카네이션을 받아두기에는 우

리부부 서로 부족함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께 드리라고 했다. 아들의 한마디!

"이 카네이션은 내가 내 엄마아빠께 드리는 거고, 할머니 것은 아빠의 엄마니까 아빠

가 사야지요."

이런 날 아들에게 묵비권을 행사하는 아빠의 심정을 아들에게 일렀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를 못 하는 아빠의 심정을 아들이 헤아

려 드리는 것도 선물이지 않을까?"

아빠를 위해 마련한 꽃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아들은 효자다. 너는 가슴 아픈 자식이

되지 말거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식이 가슴 아프지 않는 자식이 된다는 것

은 내가 호강 받겠다는 소리 같아서 그 소리는 못 할 말이 되었다.

우리아들은 할머니께 조근조근 설명을 잘한다.

"이것은 엄마가 마련했구요. 이 꽃은 손자가 커서 마련했구요. 할머니, 아빠한테 섭섭

해 하지 말으세요. 아빠가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아빠가 너무 힘들어 하시거든요.

할머니 제가 아빠대신 왔잖아요. 손자가 대신 왔잖아요."

시키지 않았어도 할머니를 뵈러 가면 조근조근 말을 잘 하는 우리아들이 고마운 효자다.  

 

ㅡ어머님 은혜

 

  낳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 낮으로 애 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 될사 자식-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의 그 무엇이 높다하리오,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위하며, 살과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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