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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07) 해방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4 조회수421 추천수0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996       작성일    2004-05-06 오전 11:30:10 

  (107) 해방

                           이순의

 

 

ㅡ받아쓰기ㅡ

연일 남의 아이들은 100점짜리 받아쓰기를 빨간색연필로 휘갈겨 오는데 우리아들은

날이면 날마다 한두 개씩은 틀려오거나 어떤 날은 절반을 못 맞아서 엄마의 마음을 무

척 조급하게 했다. 그럴 때면 무슨 대학입시 공부처럼 밤늦도록 받아쓰기를 시키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한 학기를 서울에서 보내면서 받아쓰기를 하느라고 실랑이 하던 이외

의 다른 기억이 그다지 깊은 게 별로 없다. 그런데 1학년 여름방학에 섬으로 이사를

갔다.

해방이었다. 받아쓰기로부터 해방!

농가의 일손이 달려서 받아쓰기를 시켜줄 시간적 여유가 부모들에게 없었을 뿐만 아

니라 여러 아이들 중에는 부모님들이 도시에 거주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할머니께

양육이 전가된 아이들도 있었으므로 특별한 학습의 도움을 줄 수가 없는 아이들도 많

았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가정학습을 요구할 수도 없고 가정에서는 따를 수도 없는 것

이다. 섬에 가서는 받아쓰기를 연습시키려고 밤늦도록 아이를 힘들게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좋았다. 대신에 섬 아이들이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에 대한 텃

세로 적응하느라고 여간 용감해야만 했다. 체력 면에서 섬 아이들을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과 들과 바다를 누비며 태양에 익어버린 탱글탱글한 시골아이들

의 체력은 마치 무쇠팔 무쇠다리 로버트 주먹을 능가하는 마징가 촌놈들이었다.

받아쓰기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섬에는 섬 아이들이 지녀야할 기본기들이 있어야

한다. 거친 물살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수영실력이 있어야하고, 뱀을 보면 무섭다고 도

망가지 않고 잡을 줄 알아야 하고, 이농현상으로 강물에 콩 나듯이 어쩌다 마을에 한

명씩 박혀있는 머나먼 친구 집을 찾아 갔다가 지치지 않고 원거리 집까지 돌아올 수

있어야하고, 산도 평지처럼 잽싸게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고, 들판 한 가운데서 소낙

비를 맞아도 감기 들지 않아야 하는, 여러 가지로 섬에는 섬 아이들의 방편이 있다.

받아쓰기가 없어서 해방은 되었으나 섬 아이들이 지닌 기본기들을 따르고 소화 해 대

느라고 벅찼다. 우리가족이 꼬박 2년 동안 섬 살이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 왔지만 섬

아이들의 넘치는 건강을 송두리째 습득해 오지는 못했다. 태아 때부터 맑은 공기와 힘

든 노동으로 단련된 아이들의 체력을 2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우리 것을 삼기에는

너무나 무모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어떠한 과외공부로

도 얻을 수 없는 진리였음은 분명하다. 투박한 인생의 진리를 맛 배기로 거저 얻은 축

복이었다.

 

 

5월5일은 어린이 날이다.

중간고사 시험 중인 아들이 도시의 이 탁한 방안에서 불끈불끈 끌어 오르는 왕성한 혈

기를 잠재우느라고 시험공부 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며칠째 저 작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평가받을 준비를 한다는

사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왕성한 사춘기라는 정열을 사

각이 두 뼘도 안 되는 의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잘 못 되었다

라고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부터 아니 어쩌면 도시의 아이들은 더 이전부터 한 뼘 의자에서 시

간을 보내고 있다. 먹고 살기가 힘든 사람은 먹고 살려고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 시

간을 소비하게 하고, 가진 사람은 가졌기 때문에 영재교육이라고 아이들을 학원으로

몰아낸다. 공부가 아니면 딱히 해야 할 것들을 망각한 시대를 사느라고 우리의 아이들

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방치한 격이 되는 도시 삶의

연속이다. 이런 시대적 모순 속에서 내 아이가 주님의 지휘봉을 따라 섬마을에서 유년

의 한 시기를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었다.

그 때 그 섬마을이라는 청정의 학원은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학원이 아니었다.

인생의 여정이 주님을 닮아서 갈 수 있었던 자연 학습장이었다. 다시 시험으로부터 해

방시켜주고 싶다. 받아쓰기에서 해방 되었듯이 지금 시험에 짓눌려있는 아들을 그 시

절로 돌려주고 싶다. 받아쓰기를 하지 않았어도 배우고 익힐 것이 너무나 많았던 섬에

서의 진리처럼 지금 내 아들에게 삶의 진리를 가르칠 여백이나 있는지 조차 모를 일

이다. 엄마의 눈에는 언제나 어리기만 한 아들에게 오늘만이라도 공부에서 해방시켜

줄 수는 없을까? 라고 마음에 담으며 하루를 보냈다. 섬마을의 경치 좋은 초등학교 잔

치를 추억하고 이야기하면서!!!!!!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자식에게 초코파이를 선물했다.

아들은 싫지 않은 듯이 씨익 웃으며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렇게 큰 입을 보니 내 아들은 지금 어린이가 아니구나! (^-^)피이~~~~

지구위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늘 사랑받으시라고 기도하면서

축하를 전합니다.

어린이여러분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2004년5월5일 어린이날에 썼지만 인터넷의 오류로 5월6일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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