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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2 조회수407 추천수3 반대(0) 신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19-28)

 -유 광수신부-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다."

 

1,1-18 절까지에서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서 말하였다. 즉 말씀으로 탄생하신 예수는 누구이신가? 그분은 하느님이시고 생겨난 모든 것의 생명이시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서 밝혔다면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은 누구인가? 라는 요한의 신원을 밝히는 말씀이다.

요한은 사람들의 질문에 세 번이나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분명히 밝혔다. "아니오"와 "네"를 올바로 대답 할 수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또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좋은 기회를 "아니오"라고 말하고 자기 입으로 스스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자신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들이"그리스도, 엘리야, 예언자"라고 알고 있는데 그냥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존경도 받고 명예스럽고 얼마든지 자기에게 영광스러운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오"라고 말하고 겨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요한은 세 번의 유혹을 받은 거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예수님이 세 번 유혹을 받으셨듯이 요한도 세 번 유혹을 받았지만 선구자답게 그 유혹을 물리쳤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니오"와 "네"를 분명히 할 줄 아는 생활이다. 많은 경우 "아니오" 와 "네"를 반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 즉 "아니오" 해야할 경우인데 "네"라고 하고 "네"라고 해야 하는데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개 이런 경우는 자기와의 관계에서 자기에게 이로울 때는 "네"라고 하고 해로울 때에는 "아니오"라고 한다. 즉 대답의 기준은 자기 신원이 아니라 이해득실에 따라서 하기 때문에 거짓 대답을 하게 된다.

요한 세례자는 이런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알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아니오"라고 대답하였고 자신은 다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대답하였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는 대답이다.

 

소리란 무엇인가? 소리란 하나의 전달 매체이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밖으러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아무리 좋은 소식 좋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소리가 없으면 내용을 올바로 전달할 수 없다. 할 말은 많은데,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는 얼마나 답답한가? 참 환장할 일이다. 소리가 나와야 무슨 말을 할 것 아닌가? 또 소리는 있어도 내용이 없으면 헛소리만 하게 된다. 헛소리는 아무 가치도 없고 들어 주는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속에 아무 것도 들어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소리나 외쳐되는 사람이다. 내용은 없으면서 큰 소리만 치는 사람들, 아무 가치도 없는 지저분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 아무리 큰 소리 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쓸데 없는 소리를 외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좋은 내용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서 외쳐질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멋있는 소리가 외쳐질 것이다.

 

각자 자기의 고유한 소리를 내어야 한다. 기타는 기타의 소리를 내고 피아노는 피아노의 소리를 내어야 한다. 기타가 기타의 소리를 피아노가 피아노의 소리를 내지 못할 때 기타나 피아노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폐품처리 되고 만다. 좋은 악기의 소리를 낼수록 그 악기의 가치는 높아지고 명품으로 인정받는 법이다. 아무리 겉은 번지를 하더라도 자기의 고유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담아야할 내용은 무엇인가?
앞에서 즉 1장 4절에서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고 하셨던 생명과 빛을 담아야 한다. "빛이 비치고 있다."는 말은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 때 그 어둠을 비추시는 빛을 통하여 하나씩 깨달음을 얻게 되면 내 안에서 생명이 다시 움틀거리고 그 생명력에 의해 외쳐지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 소리는 모든 이들에게 외치는 소리로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드리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소리일 것이다. 누구나 들어서 감동을 주는 소리,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리, 주님의 길을 안내해주는 소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소리일 것이다. 기쁨을 전달해주는 소리,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소리,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 내게 하는 소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 소리인가?    

 

그리스도 신자의 입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가 쉽지가 않다. 요한이 위대한 것은 그리스도로서가 아니고 엘리야로서도 아니고 예언자로서도 아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도 아닌데 그리스도라고 엘리야 예언자고 대답하고서 그리스도의 소리 엘리야의 소리 예언자의 소리를 외치지 못하였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선구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요한은 선구자로서 선구자로서의 소리를 외쳤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었고 광야에서 외치는 그의 소리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이다.
그는 선구자로서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고 하신 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소리"를 외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운 심포니 소리가 연주되려면 여러 악기가 각자 자기의 고유한 소리를 내어야 하듯이 우리 각자 외쳐야할 소리가 있고 그 소리를 외칠 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제는 사제의 소리, 수도자는 수도자의 소리, 신자는 신자의 소리를 내어야 하고, 부모는 부모의 소리, 스승은 스승의 소리를 내고, 정치인은 정치인의 소리를 내어야 한다. 자기 소리를 내지 않고 다른 소리를 낼 때 아름다운 연주가 되지 못하듯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소리를 내지 못할 때 불협화음이 되고 난장판 소리만 외쳐질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며 예언자도 아니고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소리"이어야 한다. 나의 소리를 통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고 가르쳐 주고 인도해주는 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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