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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05) 짝꿍이 보고 싶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2 조회수446 추천수3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973         작성일    2004-05-01 오후 9:31:56
 
 

2004년5월1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ㅡ사도행전9,31-42;요한6,60-69ㅡ

 

     (105) 짝꿍이 보고 싶다.

                                       이순의

                 

ㅡ음식ㅡ

오전의 중간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새참 때쯤에 다려진 하복을 입고 역마살이 낀 짝꿍이 집을

나섰다. 중간고사 시험기간인 아들을 부탁하며 먼 길을 나선 것이다. 성호경을 시키

고 차 단속을 시키며 가는 짝꿍의 뒷모습에 잔소리를 했다. 빨래를 널고 집안 청소에

비지땀을 뻘뻘 흐르고 있을 때 아들이 왔다. 말을 하지 않아도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안

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곧 대관령으로 떠나고 나면 가을이 되어 돌아올 짝꿍이 안타까워서 곰국을 끓였었다.

각시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떠날 요량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곰국을 절반도 못 먹고 오

늘 또 지방에 갈 일이 생겨버렸다. 그 아픈 마음에 징징거리는 각시를 안심시키느라고

아들을 잘 먹이라고 신신 당부한 곰국에 가스 불을 지폈다. 그리고 아들에게 주문을

받았다.

"김치 볶음밥!"

아들의 한마디에 준비 !

다 되었다. 그런데 뭔가 좀 심심하다. 시험 중인데 좀 더 영양가 있게 해 주고 싶고 좀

더 정성을 부리고 싶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생선을 손질 하면서 다음에 혹

시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알들을 모아 따로 얼려 둔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 알을 우리 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기를 먹을 때도

동태찌게를 먹을 때도 알은 먹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알이지만 반으로 나누어 비빔밥에 추가를 했다. 비린 냄새가 나

지 않도록 잘 볶았다. 가슴 아픈 곰국도 잘 끓고 있다. 아들의 방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들은 시험기간이라서 접근금지 상태인 컴퓨터 앞에서 잠깐만 하고자 하는 자세로

엉거주춤 정신이 팔려 있다. 청소를 하던 중이라서 냄비 채 책상위에 놓았다. 곰국도

역시 책상위에 놓고 아들의 방을 나왔다.

 

하던 청소를 하려는데 짐작했던 대로 아들의 투정이 들려왔다.

"엄마 이게 뭐야?"

<김>

"아니 이거 여기 보이는 거!"  

<김치>

"아니 김치 말고 이거 말이야 좁쌀처럼 동글동글한 것 말이야!"

<양념이지>

"엄마 누가 이딴 거 넣으랬어? 와서 자세히 보란 말이야."

<뭐가? 아무것도 아니네.>

"엄마 그냥 김치볶음밥 해 달랬지 누가 이딴 것 넣으래?"

<뭐? 뭐 넣었는데 맛있어 먹어봐.>

"맛은 무슨 맛이야? 개뿔이지."  

<뭐? 개뿔? 이런 썅놈의 새끼! 생선 알 좀 넣었다. 시험 중이라 영양가 있으라고.>

"시험핑계 대지 말어. 어떻게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넣냐구? 한 가지씩 빼고 넣는 건

말 안하는데 왜 꼭 한 가지씩 더 넣냐구?"

<너는 꼭 결혼을 해서 너 같은 놈 낳아가지고 꼭 한 가지씩 빼고 주는 애비노릇 해라

이놈아. 너네 새끼 먹는 거에 한 가지씩 더 넣기만 해 봐라. 내가 지켜보고 있다가 가

만 두지 않을 거야.>

아들 녀석은 휘졌던 숟가락을 냄비에 꽂아놓고 컴퓨터 앞으로 가버렸다. 화가 났다.

살아 보겠노라고 떠돌면서 먹는 식당 밥에 질린 짝꿍이 갑자기 집에 오면 준비가 안

된 찬이라도 집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먹는다. 김치 한 가닥도 각시가 담그는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먹는다. 그런 짝꿍이 곧 산으로 들어가 가을이 되어서 돌아 올

때까지 햇볕에 타고, 노동에 마르고, 일감에 지처서 살아갈 날들에 마음이 아파서 절

반도 더 남은 곰국을 데우는 가슴이 미어지던데 자식 놈은 영양가 있는 것을 더 넣었

다고 지랄급살을 하고 있다.

그대로 냄비를 들어다가 설거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곰국은 다시 들통에 부어버렸다.

순간의 분노가 일으킨 행동이었다. 아들의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딸깍!"

그 작은 소리가 엄마의 귀에는 천둥소리로 들리는 순간이다. 그럴 때 엄마의 심장은

멎어버린다. 아들의 마음이 엄마로 부터 닫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손잡이를 잡고 돌려 보지만 미동도 않는다. 짝꿍이 보고 싶다. 불과 두세 시간 전에 떠

난 짝꿍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여름동안 저렇게 억센 놈을 어미 혼자 이겨

낼 일이 답답했다. 짝꿍이라면 얼마나 달게 먹어줄 알밥인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통에 엎어진 냄비를 뒤집어 보았다. 뜨거운 열기에 눌러 붙은 탓인지 김치볶음

밥들이 그대로 냄비에 붙어있다. 맛있는 참기름 냄새도 솔솔~~ 풍기며 안 떨어지

고 붙어있다.

 

참으로 다행한 감사다. 큰 사발을 내려놓고 맛있는 비빔밥을 퍼서 담았다. 그리고 한

숟가락 떠서 먹어 보니 맛은 있는데 입안은 껄끄럽다. 그래도 시험 본다고 얼굴이 홀쪽

해진 아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다시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역시 미동도 없었다.

소리를 꽥 질렀다.

"그놈의 문짝을 뿌셔버리기 전에 문 안 열어?"

아들은 문을 열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나왔다.

"나는 싫어도 밥은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설거지통에 처박았으니까 그런 밥은 안 먹

을 거예요."

그 말을 하는데 아들의 얼굴이 더 홀쪽해 보인다. 시험에 시달리고, 밥에 시달리고,

더 홀쪽한 얼굴이 어미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서로 냉전을 하는 중에는 섬 집에라도 가서 한 달 동안만이라도 아들의 꼴을 보지 않

고 쉬고 싶어진다.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식을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살아

가는 것이 부모이며, 부모에게는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자식을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의무가 있다. 또한 객지로 떠도는 짝꿍에게 조금이라도 근심을 덜

어주는 일은 아들이라도 잘 길러주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쉬어서는 안 된다. 섬 집에

가겠다고만 하면 더욱 심하게 요동을 치는 아들 때문에도 갈 수가 없다.

 

엄마의 힘든 모습 때문이었는지, 섬 집에를 못 가게 하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숟가

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들이! 그러나 이미 엄마가 먹어버린 밥이라서 요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더는 먹지 않겠다고 한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아들의 홀쪽한 모습을 보며 더 먹으라고 실랑이를 하느니 차라리 외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갔다.

무작정 나서기는 했지만 발걸음은 중식집 <홍해>로 향하고 있었다.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키고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몇 일전에 이사를 간 새댁 집으로 갔다. 나는 오늘도 아

들한테 졌다고 인정했다. 자장면을 시켜주지 않고 저녁까지 버티기에는 내가 <엄마>

라는 사실에 모질어 질 수가 없었다. 그래! 좀 지면 어떠냐? 자장면이라도 잘 먹고 있

기를 바랄뿐이다.

새댁 집에 가는 길목에서 짝꿍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도 고속버스 안이라고 한다.

"꼭 성부와 하고 차 조심해. 다른 여자들처럼 돈도 벌고 재테크도 잘해서 당신을 도와

주지 못하고 밥만 축내서 미안해."

짝꿍은 금방 알아차렸다. 아빠이기 때문이다.

"또 싸웠는가? 나만 없으면 탈이 나서 큰일이네. 자식을 참어야제 어쩌것는가?! 내가

전화 해 볼라네."

짝꿍의 음성에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모든 힘이 전달되었다.

"아니야. 전화 하지 말아요. 지금은 시험공부중인데 엄마가 일렀다고 화내면 나만 또

힘들어지니까 전화하지 말아요."

아빠라는 위치는 돈보다도 지식보다도 너그러운 이해와 과묵한 포용의 산실이다.

"그러세!"

 

지금은 컴컴한 저녁!

농사꾼이라면 초저녁 단잠에 고스러질 때에 아들은 시험공부를 하다말고 쉬는 시간

을 선언했다. 엄마가 묵상 글을 쓰는 바로 옆에 앉아서 훈수를 하다가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엄마, 나를 나쁜 놈 만들어도 좋으니까 제발 그만 쓰고 비켜주라. 나도 컴퓨터 좀 만

져 보자. 지금 머리 속이 포화상태라 쉬어야 한다니까."

내 자식이 분명하다. 노여움은 없고 요구만 있는걸 보면 내 자식이 분명하다. 남에게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자식을 이기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는 내 자식도 이기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를 이기셔서 묵상에 응답하도록 하셨듯이 지

금 내 곁에서 철없이 까불고 있는 이놈도 언젠가는 주님께서 이기셨다고 인정 할 날

이 올 것이다.

그 동안 나는 계속 지고만 살아야 하나? 아니면 또 싸우고 짝꿍을 보고 싶어 해야 하나?

"나는 당신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라고?!

 

ㅡ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시고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하고 물으셨다. 요한6, 6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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