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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례자 요한의 증언 (김용배신부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1 조회수410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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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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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의 증언


세례자 요한은 중요한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특별한 인물로서 자기 스스로 나선 것도 아니요 어느 사람이 보낸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요한1,6). 따라서 요한의 증언은 요한 자신을 위한 증언이 아니라 장차 '오실 분'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1,8).

이러한 요한의 증언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요한을 무시하는 태도로 질문들을 쏘아댑니다만(1,19.21.22) 그는 조금도 분노의 빛이 없이 한결같이 오직 증언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자신은 비록 하느님의 말씀을 예언하지만 자신은 사람들이 기대해 볼 만한 그런 사람도 아니며 더욱이 온 인류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물론 아니라고 분명히 고백합니다. 또한 자기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존경하는 예언자도 아니라고 합니다(1,21).

물론 요한은 예언자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훌륭한 예언자였습니다. 자신은 오직 "주의 길을 곧게 하라"(1,23)는 하느님의 사명을 받은 그대로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고 밝히며, 누가 외치고 있는지 문제삼지 말고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자신도 또한 오실 분을 고대하며 그 때까지 증언을 계속할 것이며, 오신 다음에는 자신은 물러나야 할 인간으로서 사실 그분 앞에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1,27).

오늘의 우리 신앙인들도 하느님으로부터 뽑혀 이 세대를 위해서 보냄을 받은 자들이므로 요한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단순히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값있는 중요한 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오직 증언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자들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장소와 때를 가리지 말고 주님의 뜻을 증언해야 하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우리의 생활이 자신의 생각만을 앞세우며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를 선전하는, 즉 결국 자기를 증언하는 생활이 되어 버리면 이는 사명의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는 생활입니다.

둘째, 우리들 자신은 잠시 살다가 가는 나그네들임을 잊지 말고 사람들안에 우리를 심으려 들지 말고 주님을 심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사람들을 주님에게 이끌어 가는 사명을 충실히 다 했으면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은 조용히 뒷전으로 물러서야 할 것입니다(1,27).

결론적으로 요한의 증언 하나하나는 모두가 장차 오실 주님을 알리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지 자기 자신을 위한 증언이 결코 아니었으며, 또 증언하는 모습 역시 조금도 자기 위주나 자기 중신이 아닌 어디까지나 주님 위주요 주님 중심이었기 때문에 요한의 모든 증언은 진실했음을 우리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요한 5,31-32). 한 마디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전해서는 안 되며 오직 주님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김용배신부님의 글 중에서)

 

[2010년 1월 2일]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19-28>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늘의 묵상]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절입니다. 요한은 ‘요르단 강’에 들어가 씻기만 하면 죄가 용서된다고 외칩니다. 당시는 죄를 지으면 ‘속죄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규정은 까다로웠고, 예물도 만만찮았습니다. 그러기에 서민들은 죄의식을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냥’ 물에 들어가 씻기만 하면 죄가 용서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설마’ 하며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의 용서’의 느낌을 안고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기적의 은총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요한의 행동에 바리사이들은 제동을 겁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들은 따지기만 합니다. 백성의 불편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의 용서’를 얻으려면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하며, 얼마나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성실하게 답변합니다. 자신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은 ‘자신의 본디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유가 많아지고 자리가 높아지면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겸손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행동입니다. 요한의 모습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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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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