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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31 조회수819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손
                                            이순의
 
 
2009년12월24일 성탄 대축일 밤미사에
짝꿍과 함께 아들녀석을 가운데 앉혀놓고
행복한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아들녀석이 성인이 된 뒤로는
서로의 사생활이 달라지고,
영역 또한 각각 다른 곳에 머물다 보니
아들녀석을 한 중앙에 앉혀놓고
엄마 아빠가 머리에 손을 앉어 평화의 인사를 주던 시기가
언제였던지 기억도 안날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아들녀석의 흔쾌한 동반에
마냥 좋아서
그 녀석이 어렸을 때 처럼
가운데 앉혀 놓고
양쪽에서 평화의 안수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얼마나 덩치가 크던지
건너편에 앉은 짝꿍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엄마랑 아빠랑 손을 얹어 머리에 평화의 축복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의 머리가 엄마랑 아빠랑 보다 높은데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손만 잡고 평화를 빌어 주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분이 있었습니다.
본당의 주임신부님이요.
어려서 성당에 다닐 때야
제가 신부님께 인사를 시키지 않아도
제 녀석이 신부님 치마 폭 안에서 줄창 놀아댔으니
오히려 신부님께서 저를 누구녀석 엄마로 알아 보셨지요.
그래서 전에 다니던 성당에서는
제 본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도
누구 엄마로 통했었지요.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성당에서는
제가 1년 중에 반도 안 되는 시간만 머무를 뿐만 아니라
심신 단체에 적을 둘 수 없으니
제 본명도 모르고요.
제 아들녀석의 엄마로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들녀석이 오랜만에 들른 본당의 성탄 대축제에
신부님께 인사 시키고 싶었습니다.
 
<신부님, 성탄 축하합니다. 저희 아들이예요.>
그리고 악수를 했습니다.
그런데요.
헉?!
으헉?!
신부님의 손이요.
그 느낌이요.
지금까지 잡아 본 신부님들의 손은 보드라웠거든요.
어쩌다
수도회 수사님들이나 신부님들 중에서 손이 거칠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교구 신부님들이신 본당 신부님들의 손은
대체적으로 따뜻하고 보드랍습니다.
그러면 교우들은 그렇게 말하곤 하였지요.
<어머, 우리 신부님 손은 예수님의 성체를 축성하시는 손이라서 따뜻하고 부드럽드라.>
그런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헉?!
이 느낌 뭐라고 표현해야하지?
신부님의 축하 손 한 번 잡아 보고
고민에 빠져버렸습니다.
뭐지?
그리고 다음 날에는 예수 성탄 대축일 낮미사입니다.
세례식도 있고,
중고등부 미사랑 교중미사가 합하여 졌으니
잔치도 있고,
여칸 번잡할 텐데
그래도 우리 신부님의 손을 찍고야 말리라.
 
 
 
 
 
찍기는 찍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있는 모든이에게 강복 하소서.>
<아멘>
우와 멉니다. 멀어요.
보이기는 보이는데 잘 안보입니다.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강복을 수여하시는 거룩한 손이
저 제단에서 내려 오시면
도대체 무엇을 하시기에
<헉?!>
이런 느낌이 날까요?
그러니 신부님의 손을 더 가까이서 관찰을 해야 합니다.
미사가 끝나고 세례식 기념 촬영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가만히 계시고
뒤에 서는 교우들은 순서를 기다려 자꾸자꾸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의 주인공은 손입니다.
신부님의 손!
 
 
 
꼭 모아 잡은 손은
부동자세로 서 계시는 신부님 처럼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 됩니다.
가끔 성물 축성 때
잠깐 축성을 해 주시기는 한데
카메라 렌즈에 담아질 만큼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저 부동의 자세!
어휴~!
<저어~! 신부님 손 바닥 좀 펴 보세요.>
아마도 신부님의 손만 찍히고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아, 못생긴 손만 자꾸 찍어서 어디다 쓰게? 못생긴걸........>
그러니 또 저렇게 꼭 쥔 손만 찍을 수 밖에요.
성당 안에는 인적이 줄고 있었습니다.
곧게 서 계시는 신부님의 뒤로 들어 왔던 사람들은
기념촬영을 마치고
하나 둘 빠져 나갔습니다.
개인 사진을 찍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몇몇 사람들만
옹기종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손짓을 해 주십니다.
아!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찍으려면 빨리 찍어요.>
그 순간의 윤허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신부님 연속 두 장이요.>
한 장을 찍었습니다.
 
 
 
어쩐지 불안합니다.
렌즈의 초점이 수단에 맞춰지면 손이 잘 안 나올 것 같은!
에라 모르겠습니다.
신부님께 다가가서 신부님의 손을 잡고 자세 수정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신부님, 손을 좀 붙여야 될거 같아요.>
 
 
 
 
기왕에 허락하신터라서 원하는 대로 해 주십니다.
찰칵!
<감사합니다. 신부님.>
답례로 미소 한 번 보이시고 마십니다.
그런데 그 손을 찍고 싶어서 찍어다 놓기는 했는데
정답이 떠 오르질 않습니다.
그 느낌이 뭘까요?
뭘까?
사진상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그냥 손입니다.
그러나 잡아 본 신부님의 손은 다릅니다.
퉁거운 나무토막 같은데
손이니까 딱딱하지는 않고,
거칠은 바위돌 같은데
손이니까 아프지는 않고,
농구공처럼 크게 느껴지기는 한데
손이니까 꼭 맞게 악수가 되는,
뭘까?
뭘까?
그리고 어제 밤에
잠을 자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어, 주인네는 일도 안하는데 왜 우리들 손보다 거칠어? 손이라고 볼 수가 없어.>
산에서 총각무 작업을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내 손을 보고 흠을 잡습니다.
사실 
산에 가면 종일 일을 하시는 할머니들 손은 곱습니다.
한 번 장갑을 끼고 일을 시작하면
점심 식사 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을 마처야 장갑을 벗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시대가 좋아져서 
작업의 용도에 따라  고무장갑도 면 장갑도
이루 헤아려 고를 수 없을 만큼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러니 거친 일을 해서 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손이 망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인인 내 손은 엉망진창입니다.
한 가지 일을 저녁까지 하는 게 아니라서
그 용도에 맞추어 장갑을 마련할 수도 없지만
마련해 본들 그 장갑들을 때마다 갈아낄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다가
솎음하는데 가면 어린잎이 다치지 않게 덜 솎아진 부분을 솎으다가
묶는데 오면 억센 무 뿌리를 잡고 한 단이라도 더 묶게 뽑아 주다가
약치는데 가면 약 봉지도 뜯어 주다가, 약 줄도 잡아 당겨 주다가
풀 많은데서는 한 포기 풀이라도 뛰어다니면서 뽑다가 비비다가
어휴!
가뭄 타는데 가면 스프링클러 호스도 폈다가 말았다가
홍수 나는데 가면 삽질하여 포대에 흙담고 물 막느라 흠뻑 젖다가
주인의 손은 만능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장갑을 낄 틈도 벗을 틈도 없이
현장을 향해 옮겨 다녀야 하고
그 현장에서 작은거라도 흠이 보이면
몸 사리지 않고,
손도 사리지 않고,
주인은 즉시 즉시 손 담가야 합니다.
그러니 옛날 양반처럼
곰방대 늘어 뜨리고 손끝으로만 지시하며 종을 부리던 시대가 아닌
현대 노동현장의 주인 손은 누더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손이 엉망이라는 할머니의 꾸중소리에
잠에서 깨어
베란다 창문 가득 둥실 떠오른 아침 해를 향해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묵상에 잠겼습니다.
<우리 신부님의 손은 주인의 손이구나~!>
그러고 보니
현대 신앙현장의 신부님 손은 누더기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현대종교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개인간의 자존심은 물론
일상 안에서의 품격과 품위 유지
연령과 취향에 따른 문화적 배려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엄청난 격차 안에서의 중립성
이런 모든 조건(?)들을 충족할 수 있도록 배려 하지 않으면
믿음이라는 맹목적의 신앙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그 속에서 또 나눔이라는, 봉사라는, 그리스도적 삶을 권해야 하고,
나와 다른 이웃의 존재를 알려야 하고........
현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의 고뇌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고 올테니 깨어 있어라고 하신
그 날 처럼
밤을 세워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 하고 왔더니
잠들어 비몽사몽인 제자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부님께서 목수더라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톱과 망치와 못이랑 얼마나 친하시던지
부임해 오신지 얼마되지 않아서
목수 신부님이 오셨다는 소리가 교우들 사이에 쫘아악 퍼졌습니다.
그러니 일 년 중에 절반도 본당에 머물지 않는 내 귀에 까지 
목수장이 신부님 소식이 날아들어 왔겠지요.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본당 운영에는 많은 손들이 있으시니
설마
설마 진짜 목수 수준이야 되겠는가?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본당에 절반도 머물지 않는 관계로 
그 모습을 전해 들을 수는 있었어도 목격할 겨를은 없었으니........
그런데 주님 오신 성탄 대축일 자정미사 후에 잡아 본
신부님의 손은
수 십 번의 목격보다도 확실한 증언을 하고 계셨습니다.
퉁거운 나무토막 같은데
손이니까 딱딱하지는 않고
거칠은 바위돌 같은데
손이니까 아프지는 않고
농구공처럼 크게 느껴지기는 한데
손이니까 꼭 맞게 악수가 되는!
진정한 주인의 손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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