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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5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8 조회수39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에는 '탈렌트의 비유'로 미나가 아닌 탈렌트이지만 복음 묵상에서 이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묵상을 어렵게 하는 점은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씩 능력에 따라 차별을 두고 맡겠으나 오늘 복음에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미나씩 나눠주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묵상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필요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데로 어떨 때는 탈렌트의 비유를, 어느 때는 미나의 비유를 인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도 성경을 인용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또 실제로 예수님이 광야에 계실 때에 악마가 성경을 인용하여 유혹한 적이 있으므로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처럼 '탈렌트의 비유'를 묵상할 때는 각자의 재능이 다름을, 오늘 복음 묵상에서는 우리의 재능은 같다고 묵상하면 저 역시 기준이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어느 누구에게 특정한 선천적 재능이 있다하더라도 다른 재능은 부족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이므로 하느님은 저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모두 똑같이 한 미나씩 나눠준 오늘 비유가 더 적절한 비유로 생각하고 오늘 묵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하신 말씀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맞이할 수난을 왕권을 받으려고 먼 길을 떠난 귀족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전체적인 말씀은 내가 떠나더라도 다시 올 것이므로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복음을 실천하고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그동안 복음 말씀을 제자들에게 똑같이 알려주셨으므로 열 사람의 종에게 똑같이 한 미나씩 나눠준 오늘 비유가 마태오 복음서의 '탈렌트의 비유'보다는 더 적절한 비유인 듯합니다. 오늘 복음은 상선벌악을 말씀하고 계시지만 賞을 받는 것도 사람마다 상에 대한 생각이 다름으로 우리가 받을 상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부자 되는 것이 우리가 받을 상인지 아니면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 우리가 받을 상인지 아니면 우리의 소원을 다 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받을 상인지, 저는 아직도 그 상이 어떤 상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떵떵거리며 잘만 살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에 답은 우리는 빵만 가지고 살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처럼 그 어떤 것이든 형체가 있는 것은 유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마감해야 할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 무상할 수밖에 없으므로 영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숱한 고난과 두려움을 극복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원한 진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아봅니다.

진리의 삶을 살아서 받는 상은 영원한 생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미래의 삶이 보장될 것이므로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그 얼은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며 내세가 있다면 현세를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은 당연히 내세의 삶도 보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못된 현재를 살면서 내세에 복 받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공정하신 하느님은 우리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에 충실한 삶은 어떤 삶인가에 대하여는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이 후회 없는 삶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후회 없는 삶은 그 어떤 미련도 있을 수 없기에 죽음마저도 기꺼이 수용하여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어떤 두려움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여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므로 진리의 삶은 결국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데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한 미나씩을 주셨으며 그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말씀을 어떻게 내 삶속에 실천하여 많은 열매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돌아올 보상도 다르다는 것을 오늘 비유를 통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미나를 열 미나로, 다섯 미나로 늘린 종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과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으며 그러나 한 푼도 늘리지 못한 종에게는 나눠준 한 미나마저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이룬다면 열 고을이 문제이겠습니까? 온 우주가 다 내 것이므로 아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가진 재물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하신 오늘 복음은, 복음을 실천하는 자는 더 많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그렇지 않는 자는 평화는커녕 고통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가장 편히 가는 방법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미련 때문에 하느님을 뵙기 위해 떠나는 길이 고통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가진 재물을 죽기 전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준 사람은 재물에 대한 미련도 없을 것이며, 모든 욕망도 다 버린 사람은 더 이상 잘못된 욕망으로 인한 미련도 없을 것이므로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을 뵈려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곧 자기 비움입니다. 자기 것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자기 것에 연연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희생의 사랑과 비움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라고 우리 교회는 가르치고 있지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비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우고 비워서 모두 다 비웠다면 더 이상 비울 것이 없으므로 죽음의 세력도 그를 더 이상 어찌 하지 못하므로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를 오늘 복음의 세 사람의 종의 모습과 비교를 해보려고 하였으나 비교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마 오늘 복음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일곱 사람의 종들 속에 우리 교회의 모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세 번째 종은 그나마 맡긴 돈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탕진해 버린 종들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빚까지 얻어 쓴 종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인류 역사에 불행을 안겨준 숱한 잘못에 대하여는 아직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으므로 빚까지 얻어 쓴 종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교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했다면 우리 사회도 지금 이런 모습은 결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잘못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바로 우리 모두의 탓이므로 오늘도 내일도 제 자신을 죽이고 비우는 그런 나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우리 교회도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은 비우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왕권을 받으러 먼 길을 가셨으나
저는 주님께서 임금이 되는 것을 방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저를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먼 길 떠나신 주님께서 왕권을 받아와
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되시옵길 기도하는 자녀가 되도록,
또한 주님께서 나눠주신 한 미나로 많은 열매를 맺는 자녀가 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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