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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7 조회수379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자캐오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관장이었고 부자였다고 하였으므로 소위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므로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과 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권력과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기에 영원한 생명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단지 호기심 때문에 뵙고 싶었다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호기심 때문에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며, 자캐오가 예수님의 모습을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신 진리 그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자캐오는 키가 작기 때문에 군중들에게 가려서 예수님을 볼 수 없으므로 아마 제 경우라면 아예 포기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어 그리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우리도 자캐오처럼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무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입만 벌리고 있는 바보는 없을 것입니다. 자캐오처럼 나무로 올라가는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자캐오의 행동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유대민중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또는 메시아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기에 이런 어리석음에서 빨리 깨어나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우리도 이런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오늘 복음을 통하여 이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는 눈먼 이를 치유해 주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였습니다. 오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구원이 내렸다고 하셨을까요?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하며 굳은 결심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헛된 재물에 연연한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불우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뜻이며, 횡령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권한을 남용하거나 사리 사욕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뜻이므로 이는 그동안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주 간단한 것 같습니다. 재물을 탐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떤 권한이 있다면 이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면 구원받는 것이므로 그 복잡한 교리를 몰라도 구원받을 수 있고, 교회에서 알려주는 여러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구원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재물을 탐하고, 매사를 하느님이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원 받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구원 받는 길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자캐오를 죄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키가 작아서 짜리몽당하여 죄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외모는 죄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지금 우리는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므로 겉치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겉치장을 하느라 얼굴에까지 칼을 대고 있으며 고급차를 타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교회 건물이 낡아서, 교회 건물이 적어서 하느님을 찬미하지 못하는 것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한 탓인지 서민들의 목숨과 같은 돈으로 바벨탑을 쌓아 올리듯 교회 건물을 경쟁적으로 더 크고, 더 높게, 더 화려하게 지을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자캐오가 죄인인 이유는 세관장이고 부자였기 때문에 예수님도 죄인이라 하였을 것입니다. 세관장이 상징하는 것은 국가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부도덕한 공직자를 당시 상황에서 표현한 것이며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죄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부자라고 하여 전부 죄인일 수 없으며 많은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죄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잘 보여서, 예수님께 잘 보여서 구원받으려면 재산의 반을 성전에 바쳐서 하느님께 봉헌하거나 복음을 널리 알리는데 사용하도록 예수님께 드려야 더 확실히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캐오는 가난한 이들을 하느님으로 생각하였거나 아니면 복음을 알리는 데 있어서는 재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자캐오의 이름을 우리 인류가 영원히 기억하도록 복음서에 특별히 기록한 것은 자캐오의 생각이 백번 천 번 옳고 현명하게 결정했다는 뜻이므로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오늘 묵상의 큰 보람으로 생각하며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권력과 재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셨습니다.
또한 권력을 사리사욕을 위해 자의적으로 행사하고,
자신의 곡간에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을 죄인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이 땅의 부자들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사용하고
이 땅의 지도자들은 그 어떤 권력과 권한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도록
그들 모두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어리석은 그들을 깨우쳐 주시옵고
저희 또한 진리이신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길을 찾고 문을 두드려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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