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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6 조회수444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ㅡ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치유한 복음으로 공관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리코에 들어가기 전에 눈먼 이를 치유하셨고,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예리코를 떠나는 길에 치유하였으며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두 사람의 눈먼 이를 치유하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베사이다에서, 요한 복음서에는 실로암에서 따로 치유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눈먼 이를 치유한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을 치유한 것으로 묵상하고 있으며, 이런 묵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선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요한 6, 63)하셨으므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육신의 눈을 치유해 주실 리 만무하며 예수님은 병든 육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음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눈먼 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며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 9,41)고 하셨으며, 또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루카 11,33)하신 말씀에서도 눈은 마음의 등불임을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눈은 우리 마음과 몸의 등불이므로 마음의 눈이 멀었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없으며 예수님의 길을 따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우리의 눈으로 見物에 따른 욕심만 끼워왔으므로 그런 눈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눈을 치유 받은 사람은 見物의 눈에서 見性(聖)의 눈으로 치유 받았으므로 이제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예수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눈이 치유되어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군중들도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한 사람이 치유되면 우리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인 들이 잘못된 모습을 보인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지독하다는 말을 듣게끔 한다면 누가 우리 그리스도 교인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교인의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 나와 다르면 사탄으로 치부하고 잘못된 정권에 아부하며 비난받는 행동을 한다면 오히려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악선전을 하는 반 그리스도교인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에는 눈이 멀었다거나 눈에 무엇이 씌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 마음작용이 하는 것이지만 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눈은 마음의 등불임을 알 수 있으며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눈에 무엇이 씌었어도 지독하게 씌운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눈이 멀었기에 우리 사회도 정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4대강 관련 예산으로 3조5천억을 반영하였다고 합니다. 적정성을 판단할 아무런 근거도 제출하지 않은 채 4대강 예산안을 심의해 달라는 이런 경우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적은 예산안도 이런 식으로 예산안을 제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 살림을 운영하는 국가 예산을 이런 식으로 제출하여 예산안을 통과해달라는 것은 국가재정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며 밀어붙이기식 눈먼 공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가장이 눈이 멀면 처,자식은 눈에 보이질 않고, 조직의 지도자가 눈이 멀면 조직의 구성원은 눈에 보이질 않고. 국가지도자가 눈이 멀면 국민은 눈에 보이질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눈이 멀면 주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도 보이질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오직 돈만 보이고 있으며 하느님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산과 들의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도 모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음에도 우리 눈에는 전부 돈으로 보이고 있으므로 이제는 하느님마저도 돈으로 생각하는 어둠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상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 광명의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의 믿음만이 우리 자신을 구원하고 이 땅을 구원할 수 있음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저희들을 치유해 주시기위해서
오늘도 피땀을 흘리고 계십니다.
하오나 저희는 잘못된 믿음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여야 함에도 하느님께 잘못된 소원만을 빌고 있으며
우리의 믿음과 따름으로 구원받음에도 구원만을 바라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눈이 먼 저희들에게 깨우침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하느님을 찬미하며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어둠으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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