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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곡성모순례지영성(4) - 성소의 못자리[김웅열 토마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5 조회수919 추천수6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오후 6시의 성지 - photo b 느티나무신부님 

 

 

 

 

 

 

세 번째, 114년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제 수도자가 나온 곳입니다.

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여기 출신 사제 수도자를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절반도 못 부친겁니다.

 

 

여기는 시도 아니고, 읍도 아니고, 면 단위의 작은 곳인데

성모님이 잡으신 이 작은터에서 끊임없이 사제 수도자들이 나왔습니다.

성소의 못자리이지요.

 

 

여기는 무지무지 기가 센 곳입니다.

많은 지관들이 나침반을 가지고 돌아다니다가 나가면서

“땅기운이 세다!”

 

 

기가 센 땅이기 때문에 이 동네에는 개신교 교회가 들어설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미신바가지들은 얼씬도 못합니다.

 

 

재작년 11월에 천지개벽할 일이 있었어요.

교우들이 나오라 해서 나가보니 요 밑에 마을에 빈집 지붕위로

대나무 끝에 빨간 깃발이 펄력이는 거야.

그것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이 성지 동네에 무당이 기어들어왔어요.

저는 매일 무당집 앞에 가서 구마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쪽 언덕에서 무당집 지붕을 향해서

큰 주사기에 성수를 넣어 밤마다 뿌렸습니다.

‘내가 이기나~~니가 이기나~~’

 

 

무당이 11월에 들어와서 1월까지 석 달을 살았는데

작년 1월에 교우들이 올라와서

“신부님, 기쁜 소식이 있어요. 무당이 이사 간대요.”

빈집이라 들어와 살았는데 성모님의 발밑인 줄 모르고 왔지요.

 

 

무당이 이사 간다고 그러니까 교우들이 찾아가 보았대요.

무당이 자기 몸을 보여주는데 온 몸이 다 부스럼덩어리야.

무당이 꿈을 꾸는데 밤에 불덩어리가 떨어더래요.

그 무당이 불을 맞던 그 시간이 내가 언덕빼기에서 성수를 쏘아대던 그 시간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 서당 주차장으로 아주 고급차가 미끄러져 들어왔어요.

기사가 나비넥타이를 매고 내리더니 딱 서서 문을 열어 주었어요.

‘와~ 재벌총수가 순례왔나보다...’

누가 내릴까 되게 궁금했는데 스님이 차에서 내려서 뒷짐을 지고

동산 앞뒤를 '휘익~' 둘러보더니 사제관을 향해서 물어물어 올라옵디다.

 

 

초인종을 눌러서 제가 내려갔지요.

“지나가는 노승인데 차 한 잔 얻어먹을까 해서 왔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부엌을 뒤져보니 오래된 녹차가 있어서 끓여내었더니

“신부님은 차에도 조예가 깊으십니다.”

 

 

차를 한 잔 드시더니 “신부님, 아깝소!”

“평소에 그런 말을 많이 들었소.”

“신부님이 아깝다는 게 아니오.”

 

 

그 스님이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기는 조계종에서 한평생 명당만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묘자리는 다 자기가 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여주에 있는 신륵사에 일을 보고 고속도로가 막혀서 국도를 타고 강을 따라 장호원 쪽으로

쭈욱 올라오다가 장호원 입구에서 옛날에 임신부님이 처음 이 땅을 보았던 것처럼 고

개를 돌려 이곳을 보다가 깜짝 놀랐대요.

 

산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더라는 겁니다.

‘세상에~~ 한국에 이런 땅이 있었다니...내가 왜 저 땅을 못 보았을까!’

 

산 밑을 보니 고색창연한 성당이 보이는 거야..

‘기가 막힌 저 땅을 성당이 먼저 차지했을까!’

 

 

올라와서 땅을 밟는 순간...땅에서 기운이 ‘짜르르~~’

저 쪽에 서서 이쪽을 보아도 명당, 주변을 둘러보니 더욱 돋보여지더래요.

‘야, 기가 막히다!’

 

 

그 스님 하는 이야기가

“신부님, 정말 아깝소..옛날에 이곳에 절이 섰더라면 유명한 사찰이 되었을 거고,,

이 동네에서도 중이 나와도 수 백명이 나왔을텐데요....”

“아까울 것 없소..동양중은 안 나왔어도 서양중들은 바글바글 나왔오!”

 

신부가 양중이지요?

 

여기는 땅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알아요.

 

이 성당은 지대가 높지 않은데 시야가 환히 트여있어요.

저 멀리 있는 산 능선능선이 다 보여요.

 

처음 이곳에 와서 노을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지은 첫 번째 시 낭독해 드릴까요?

‘아~~노을 죽인다!!!’

그 말 이상은 더 필요가 없었어.

 

빠알간 노을이 넘어가면 천지가 수백 가지 색으로 변하는데 정말 기가 막혀요.

이곳은 성모님께서 수많은 사제, 수도자를 만든 성지예요.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곳은 성지가 될 수 있어요.

 

 

네 번째 영성, 한국 최초의 성체대회가 1914년에 열렸습니다.

6,25동란 3년을 빼고는 해마다 계속되어서 지난번에 91차 성체대회를 치렀어요.

 

임가밀로 신부님은 이곳에서 51년 동안 계시면서

성모신심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성체가 우리 교회의 중심이라는 것과

성체가 우리교회의 울타리라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쳤어요.

 

 

매년 10월 첫 목요일에 성체대회가 열립니다.

올해는 첫주에 추석이 끼어서 할 수 없이 둘째 주 목요일에 열렸어요.

 

 

 

성체대회가 있으면 석 달 전부터 신자들은 준비를 해요.

 

주교님 성광을 드실 때 그 옆에 있는 도우미신자들은

몇 달 전부터 딴 방을 쓰고 금욕생활을 하면서 준비를 해요.

성광 옆을 지켜야 되니까~

 

 

그건 내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때부터 했고

아버지가 그랬고, 그것을 자식이 커서 그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이 무서운 겁니다.

 

 

성체대회 때 해마다 5000명 이상이 옵니다.

여기는 5000명을 밥을 다 해 먹여 보내요.

처음 여기에 와서 “성체대회 오는 사람 밥 해 먹이자!”

“신부님, 이 본당 생긴 이래 2000명까지는 해 보았어도 5000명은 불가능 합니다.”

“2000명 해 먹였으면 5000명도 할 수 있다.”

 

 

묵밥이 뭔지 아세요?

육수에다가 김치 썰어놓고 깨, 김 뿌리고 제일 중요한 것,

도토리묵을 체를 썰어서 위에다가 덮어줘요.

5000명을 다 묵밥을 해서 묵사발을 내지요.

사발에다가 묵 담아 내면 묵사발이지요.

사람들이 묵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 처음 알았다 ”

 

 

다섯 번째 : 그러므로 은총과 치유의 빛이 강한 곳입니다.

 

이 다섯 번째 영성은 따라 나오는 세 가지의 영적 열매와도 연결이 되어요.

치유의 열매, 구마의 열매. 믿음의 열매

 

 

상처 없으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사제는 사제대로 다 상처가 있습니다.

 

저도 이제 몇 년 더 있으면 30년 사제생활 하는데 참 상처를 많이 받고 산 사제예요.

 

저는 성당을 네 개를 지었는데 성당 지을 때마다 상처를 받았어요.

‘그것도 내 오른팔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한테.....’

 

여기 와서도 사기 당했어요.

 

저기 성당에 로마처럼 돌을 심는데 6개월, 예산은 6억이 들었어요.

 

처음에 서울에서 돌 업자라고 어느 천주교 신자가 왔는데  자기본당에서 레지오단원이었어요.

그 인간한테 1억 5천 떼였어요.

 

본당신부한테 내용증명해서 보냈어요.

‘그 놈 여기서 사기 친 놈이니까 다른 사람 피해보지 않도록 하게 해달라고...’

보니까 찾을 것 하나도 없어요.

유일하게 사무실이라고 하나 있는데 농협에 얼마 걸려있고...

여기 저기 다 걸려 있어서 돌아올 것이 있을지...사제한테는 그게 다 상처예요.

 

그렇게 믿고 맡겼는데 신부를 속여먹다니..벼룩이 간을 내어먹지!

그 인간 나중에 죽어서 어떡하려고 그래요?

내가 좀 있어 보이나봐~자꾸 나한테 그래~

사제는 사제대로, 수녀는 수녀대로.. 상처가 다 있어요.

 

 

그런데 상처 없는 사람 하나 딱 있었어요.

이런 질문을 하면서 “상처 없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했더니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

 

여기 미사 와서 자기는 상처가 없대요.

 

 

희아는 손가락도 네 개고 허벅지 밑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너 상처 때문에 운 적 없어?”

 

몸이 이래서 운적은 한 번도 없지만 피아노치기 힘들어서 운적은 많대요.

 

엄마는 그 아이가 태어난 걸 보니까 손가락이 네 개인데

뼈가 없는 것처럼 말랑말랑해서 숟가락도 못 잡게 생겼더래.

그래서 엄마가 손가락 힘이 강해지라고 물리치료대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라고 했대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음악이 나오니까 따라하더래요.

음감이 있는 거지요.

 

 

희아는 의학적으로는 저능아 판정을 받았대요.

수학을 전혀 못해요.

음감이 있는 걸 보고 엄마가

‘그래, 피아노 가르치자!’

 

손가락 열 개 가지고도 바쁜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힘들 때마다 ‘나 안 한다고...’

그때마다 엄마가 모질게 아이를 여러 번 벽에 던졌대요.

처음에는 자기 엄마가 아닌 줄 알았대요.

지금은 엄마가 이해가 된대요.

 

 

희아가 세계적인 인물인건 아시지요?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3년치가 예약이 되어 있대요. 성서에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완전하다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늘 부족한 자를 선택한다!‘

 

 

희아는 날개만 안 달렸지 분명히 천사예요.

자기는 상처받은 적 없고,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인생을 저주해본 적이 없대요.

엄마, 아빠를 원망해본 적이 없대요.

 

 

그런데 특별한 사람 외에는 다 상처가 있어요.

그 상처는 반드시 어둠으로 나아가요.

어둠을 가지고 어두운 방구석에 틀어박혀서는 어둠이 해결이 되요.

집안 식구 자체가 다 어두운데 어떻게 어둠이 해결이 됩니까?

 

교회는 자주 빛이 강한 쪽으로 찾아가라고 권하는 거예요.

기를 쓰고 성지를 찾아오면 어둠은 빛을 못 이기기 때문에

성지에 올 때마다 어둠의 조각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껴요.

 

정기적으로 성지를 다니면 그 체험을 해요.

 

어느 형제는 신부님, 매달 한 번씩 다녀 간 뒤로는 자기 삶이 확실히 달라진 것이 한 가지가 있대요.

‘신부님, 희한해요..이제는 화가 안나요.’

자기는 어려서부터 상처가 많아서 그렇게 화를 많이 내고

직장에서도 상사한테도 덤비고, 부하직원도 달달 볶고 그랬대요.

지금은 더 큰 일이 일어나도 화가 안 난대요.

 

 

여러분들 주변에 신자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영이 병들고, 육이 병든 자일수록 성지에 데려오세요.

 

 

이곳에서는 불교신자들도 와서 치유를 받아요.

하느님께서 천주교신자들에게만 비 내리고 햇빛 주는 것 아니지요?

우리는 사람 가려서 사랑하지만 하느님은 그렇게 쫀쫀한 분이 아니예요.

 

 

신앙이 없는 사람도 ‘우리 어디 좋은데 바람 쐬러 가자!’

이곳에서 한 바퀴 돌고 나가면 ‘아, 마음 편안해졌어요.’

치유가 되고 어둠이 자꾸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영적으로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내가 무릎을 굽혀서라도

‘엄마 찾아가면 엄마가 내 살려 주실 거야!’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신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러분들의 영적 의무가 이곳을 알리고 성지를 소개해야 되요.

 

 

주님의 몸과 피가 사제의 입술과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성체 영하기 전에 한마디만 하세요.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저 죄인입니다.!‘

 

 

 

   ♧ 2009년 11. 01일 -모든성인대축일(느티나무신부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제91차 성체현양대회-photo by/윤재/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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