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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15일 야곱의 우물- 마르 13,13-24/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5 조회수407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무렵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지금 전 세계는 커다란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회 전통도 기존의 규범도, 사람들의 기존 가치관도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듣는 말 가운데 ‘파괴’란 유행어가 생겨났습니다.
형식을 파괴한다, 가격을 파괴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파괴 현상이 한꺼번에 동시에 일어나서 때로는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아노미 현상, 곧 ‘무질서 현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많이 듣고 많이 사용하는 말이 ‘구조조정’입니다.
어차피 파괴해야 할 것들은 적극적으로 빨리빨리 파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미래는 우리에게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하나는 기회이고 다른 하나는 시련입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미리미리 대비한 사람들에게 미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미래는 시련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무화과나무를 보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이집트나 팔레스티나는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큰 도로에 하수구나 배수구가 없다고 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 산천이 발갛고 비가 오는 우기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우기에 비가 오면 무성하게 산천초목이 금방 자라나지만 건기가 되면 쉽게 말라버립니다. 그래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무화과나무가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마르 13, 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 것처럼 미래가 있음을 깨닫고 더 나아가 종말이 있음을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어떻습니까? 미래를 잊어버리고 이 세상 끝 날이 있음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잊어버리고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하나는 현재에 쫓기고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바빠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미래에 대해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어두워서 오늘은 간신히 견디지만 내일은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에 내일이 두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과 실패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때 좋은 미래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좋은 미래가 나를 향해 지금도 힘차게 달려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현재를 피할 수 없듯이 미래를 또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내 인생의 소중한 현재이고 내일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오늘 현재와 미래를 기왕이면 적극적으로 맞아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13, 32)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주관하시며 인도하시기에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볼 때 미래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기에 몇 분 후,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파바로티는 성공하려면 50퍼센트의 선천적 재능과 50퍼센트의 인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에디슨은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결정된다고 했지만, 하느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인간이 99퍼센트 노력을 해도 궁극적으로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지켜주고 주관하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달렸기에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래전 광고에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광고였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순간의 선택,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반드시 결정의 순간이 우리 앞에 닥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 어느 것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지를 고민하며 선택하게 됩니다. 특히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면 더더욱 손해보다는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피해버립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이렇게 부분적이며 편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을 떠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 이렇게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그날과 그 시간’은 모른다 하더라도 두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결정하든 가족이 결정하든 순간순간의 결정이 중요한 만큼 우리는 모든 일에 앞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을 앞두고 갈등을 느낄 때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선택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합시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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