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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절망적 종말에서 희망적 죽음으로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5 조회수954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3 주일 - 절망적 종말에서 희망적 죽음으로

 

 

 

전례력으로 볼 때 지금 시기는 한 해의 마지막 시점이고 그래서 복음도 종말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두 주 후에 한 해가 끝나지만 대림절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처럼 종말이 오더라도 끝이 아니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이란 말만 들어도 별로 기분 좋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이 오면 태양도 달도 빛을 잃고 하늘의 권세가 흔들리고 큰 재난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태어날 때 고통 중에 태어나니 죽을 때도 고통 중에 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특히 세상 종말에 관한 영화들도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들도 그 시간을 알 수 없다고 하셨지만 새 순이 솟아 나오는 것을 보고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당신 말씀 속에 언제 종말이 올 것인지는 이미 예언을 해 놓으셨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종말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씀해 놓으신 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러면 하나하나의 현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태양이 어두워지고”; 태양은 빛, 즉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말도 요한복음 처음에 나오고, 요한 묵시록 마지막에는 (계시 21,23; 22,5) 천상 예루살렘에는 태양이 존재하지 않을 것인데, 바로 주님의 영광이 바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하늘이 어두워지고 태양도 그리스도와 함께 빛을 잃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때의 어두움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의 법인 사랑이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아와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 안에 사랑이 사라졌다는 가장 큰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빛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세상도 더 이상 그리스도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유일한 계명을 잊고 살게 될 것입니다.

“달도 빛을 잃고”; 달은 태양 빛을 받아 밤을 비추는 가장 큰 빛입니다. 누가 하느님의 빛을 가장 많이 품고 있었습니까? 은총이 가득하셨던 성모님이 아닙니까? 요한 계시록에 보면 (계시 12,1) 태양을 입고서 달을 밟고 열두 개의 별을 왕관으로 쓴 여인이 하늘에 나타날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달은 여성성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마리아를 항상 “여인이여!”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원형이며 그리스도의 신부가 바로 성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달도 빛을 잃고’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바로 성모님의 빛도 힘을 잃어간다는 뜻입니다. 성모님을 버리고 성모님을 격하시킴으로써 주님만이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까지 잊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신앙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의 참 모델이 바로 성모님이신데, 그 분을 잊게 됨으로써 본질적인 신앙의 모습도 자동적으로 변질되게 될 것입니다.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그 별들은 누구를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성인들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성모님만큼 빛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의 작은 빛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성모님이 신앙의 원형이시지만 성인들도 우리가 따라야 하는 신앙의 모델들입니다. 만약 계속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나 마더 데레사 등과 같은 성인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면 신앙인들은 직접적인 신앙의 모델을 볼 기회가 없어질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각 개인이 성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세속적으로 만들 것이며 그래서 성인들은 점차 줄어들어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 매우 힘들어질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권위들이 흔들릴 것이다.”; 하늘에 있는 권위들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남겨놓으시고 가신 당신의 권위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하느님만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성령을 받아라. 누구든지 너희가 용서하면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사도들에게 그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의 수위로 세웠던 베드로의 대를 잇는 교황의 권위나 주교, 성직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교회를 통하여 행사되는 하늘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고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어느 정도씩은 조금씩 일어나 왔고 또 계속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두워지고 흔들리고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하신 것처럼, 또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 떼가 모인다고 하신 말씀처럼, 마지막 날에는 교회에서까지 참 믿음이 빛을 많이 잃어 스스로 종말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의인 다섯 명만 있더라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세상의 악취가 너무 심해지면 노아의 홍수처럼 그렇게 세상을 끝내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메시아를 버렸던 유다인들이 오히려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종말에 관한 가장 확실한 징조일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말세다, 말세여!”라고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제가 볼 때 마지막 때가 오기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우리 개인의 종말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처럼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고 말하며 죽을 수 있도록 깨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종말이 더디게 온다고 우리 죽음까지 더디게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다 죽음을 목전에 둔 시한부 인생들입니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산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죽음을 대하신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시게 될 때부터 당신 아들의 운명을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종으로서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속죄 제물로 고통스러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이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은, 또 누군가는 겪어야 하는 고통임을 아시고 당신께서 그 고통에 참여하기를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만을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같은 수난의 고통을 함께 겪을 것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 고통과 죽음의 시간을 향해 걸었습니다. 우리처럼 언제 어떻게 죽는지 모른다는 것은 참 행복이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이 어때야 하는지 또 언제 올지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고 참 사랑이 무엇인지 세상에 계시하셨습니다. 죽음이 하나의 패배가 아닌 구원과 부활의 도구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모님과 예수님은 죽음을 죄의 벌이 아닌, 은총의 도구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이태리에 와서 한 자매님의 장례식을 본 적이 있는데, 성당 밖에까지 줄이 설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 분은 3개월 시한부선고를 받으셨지만 2년 동안을 매일매일 마지막 날처럼 사셨습니다. 암 때문에 받은 그 2년이란 세월이 그 자매를 성녀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모든 성인들이 그렇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악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종말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두려운 자세가 아니라 어차피 오는 것이라면 패배자의 모습이 아닌 죽음을 통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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