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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을 들볶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3 조회수905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2 주간 토요일 - 하느님을 들볶다

 

 

 로마에서 공부하면 손님이 참 많이 찾아옵니다. 바쁘기는 하지만 연락을 하고 오는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좀 한가한 편이지만 바쁠 때 손님이 많이 오면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손님이 오면 거의 하루 종일 걸어야 하고 공부도 할 수 없기에 몸도 마음도 힘이 드는데 언제 한 번은 새끼발가락 옆에 난 티눈 때문에 걷기가 더 힘든 것이었습니다.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티눈이 있어도 뺄 생각을 잘 하지 않았는데 꼭 많이 걸어야 하는 날 더 아파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면서 계속 빨리 티눈을 빼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집에 들어와서는 피곤해서 쓰러져 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티눈이 또 생각났습니다. 아침에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티눈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갈 때 또 괴롭힐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침을 먹지 않는 한이 있어도 티눈부터 빼야겠다고 생각했고 앉아서 손톱깎이로 티눈을 뜯어냈습니다. 결국 아침은 먹지 못했지만 티눈을 떼내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꾸준한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재판관은 하느님도 안 무서워하는 사람이었지만 과부가 자꾸 괴롭히니 귀찮아서라도 그의 청을 들어주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재판관은 마치 발에 난 티눈처럼 과부의 청원이 귀찮고 싫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귀찮더라도 빨리 해결을 짓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도 티눈때문에 재판관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며 이렇게 결론을 지으십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창세기 32장엔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불리게 된 경위가 나옵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올 때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야뽁강을 건너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어떤 사람이 나타납니다. 야곱은 밤새 그 사람과 씨름을 합니다. 야곱을 이기고 빨리 가려던 그 사람은 야곱이 끈질기게 축복을 청하자 야곱의 엉덩이를 쳐서 환도뼈를 부러뜨립니다. 날이 밝아오는데도 야곱이 쩔뚝거리며 끈질기게 축복을 청합니다. 그 사람은 결국 야곱에게 져 축복을 해 주시고 이름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고 떠납니다. 야곱과 씨름을 했던 사람은 하느님이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인간과 씨름을 해서 질 수 있을까요? 이는 축복을 얻어내기 위한 야곱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뼈가 부러지는 아픔으로 이젠 포기해 버릴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기도를 드리다가도 안 될 듯싶으면 금방 포기해버립니다. 그러나 청원은 마치 티눈처럼 하느님을 괴롭혀 은총을 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금방 포기해버리는 것은 어쩌면 믿음이 약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나무에 달린 사과가 가만히 밑에서 기다린다고 떨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은총도 쟁취해 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할 때 부모가 응답이 없으면 사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끝까지 조릅니다. 몇 대 맞고서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부모가 보여주기 전까지는 끝까지 달려듭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그런 믿음을 보여야합니다.

 

성당에 안 나오는 남편, 사업의 어려움, 공부 등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에 열두 해씩이나 하혈 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분의 옷자락에 손을 댐으로써 병을 치유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믿음으로 들볶임을 당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미국에서 금광을 찾던 한 사람이 버려진 광산 하나를 싼 값에 샀습니다. 그 사람은 그 폐광을 더 파 들어가면 반드시 금맥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금맥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그 폐광을 팔아버렸습니다. 새로 그 탄광을 산 사람이 곡괭이질을 해서 1미터 정도 더 파 들어가자 누런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만약 처음 사람이 한 번만 더 휘둘렀다면 평생의 노고가 보상받았을 텐데 마지막에 포기했기 때문에 평생 고생해서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한 번만 더 하면 들어주려고 준비하고  계실 수 있음을 기억하며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물은 100도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 않습니다. 단 1도 차이로 물이 끓지 않는 것처럼, 혹은 단 1점 차이로 시험에서 떨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도 100도까지 완전히 도달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그 기도가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99도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지금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지향으로 기도를 하던 마치 하느님 발의 티눈처럼 기어코 빼내지 않고는 못 배기실 정도의 집념으로 청원을 드려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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