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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연중 제 33주일 - 평신도 주일 (심흥보신부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3 조회수595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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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연중 제 33주일 (평신도 주일)


오늘은 평신도 주일을 맞아 평신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우선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을 모르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세상 한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증거하는 것이지요.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잡혀 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 10, 19).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알고 자신이 깨달은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일상에서 적용하고 실현해서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 그래서 신학교나 교리신학원에서 교리를 탐구하고 성경 공부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고 구역, 반모임에서 형제들과 말씀을 나누어 그 말씀을 실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 11) 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생업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자기 생업에만 충실한 사람은 자기의 삶에 대한 인정은 받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자기가 헌신했던 사람들과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칭찬을 받고 그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헌신하고 형제들을 위해 봉사할 때 자기 교회가 됩니다. 교회의 주인이자 지도자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또 교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아 감싸주고 삭힐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옵니다. 그것도 돈을 많이 가지고 인격이 좋은 사람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가진 것이 적고 인격적으로 모가 나고 죄가 많은 사람들이 그 죄를 씻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찾아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교회는 주님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죄인들이 모여 주님의 구원을 바라는 죄인들의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날 때까지 그리고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그 죄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가 죄를 벗을 때까지 그로 인한 아픔과 더러움을 대신 짊어주어야 하고 꼴아닌 꼴도 보고 당하게도 됩니다. 교회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지만, 교인들 너도 나도 그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자만 한다면 그 교회는 아수라장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이에게 채워주기 시작한다면 교회는 진정 주님의 사랑이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고 말할 수도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 가운데서 다른 것들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더욱 조심스럽게 감싸고 또 보기 흉한 부분을 더 귀중하게 여겨 주셔서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가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1코린 12, 12. 21-27).

교우 여러분, 누가 뭐래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며 교회와 형제들 그리고 불우한 이웃에게 빛을 주는 책임있는 교회 신자가 됩시다.

(심흥보신부님 강론 글에서)




[11월 15, 일요일] 생명의 말씀 '복음'  
<마르 13,24-32>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


[오늘의 묵상]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진정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요? 말씀의 의도는, 미구에 닥칠 엄청난 변화를 이야기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 ‘해당될 만큼’ 요지부동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바뀐다는 암시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는지요?

실제로 달도 변하고 태양도 바뀝니다. 자신이 변화되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다르게 보입니다. 마음이 밝은 날에는 ‘달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만, 마음이 어두운 날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종말 역시 이러한 삶의 변화입니다. 오늘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인생의 작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중간’에서 종말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적인 ‘무엇으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종말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한 일입니다. 누가 인간의 삶에 대해 결론 내릴 수 있을는지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종말의 구원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실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다시 시작하고 새롭게 출발하며 거듭 태어날 것을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시작이 종말을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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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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