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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할극이 준 ‘아하 체험’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1 조회수475 추천수3 반대(0) 신고
 
 

역할극이 준 ‘아하 체험’ - 윤경재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마르 2,1-12)

 

지난주 성서 공부 시간에 복음 내용을 가지고 역할극 놀이를 하였습니다. 복음 읽기 방법으로 역할극이 복음묵상에 큰 효과를 냅니다. 각자 등장인물이 되어 예수님 당시로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복음 구절을 미리 숙독하고 공부하여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고 나서 맡은 인물이 되어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날은 마르코복음서 2,1-12절 내용을 택했습니다. 등장인물과 대화 양이 많아 역할극 하기 좋습니다. 시기는 예수님 공생활 초기입니다. 예수께서 한창 복음 선포 여행에 몰두하실 때입니다.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에 다시 돌아오셔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집일 것입니다. 근처에 마을 회당도 있고 열병 든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준 곳입니다. 그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놀라운 표징을 보이신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기적을 보거나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좁은 집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도 섞여 있었습니다. 시간은 안식일이 아닌 평일 낮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여러 가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침상 등 필요한 소도구가 없어서 상황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뜯어낼 지붕은 강의실 문과 사람으로 대치하였습니다. 청중이 빽빽이 서 있도록 해 병자 일행이 헤치고 들어오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일부러 못 들어오게 몸으로 막았습니다. 침상은 부부 중에 남편이 부인을 업는 것으로 대치하였습니다. 네 친구는 두 부부가 역할을 맡았습니다. 중풍 병자와 친구들의 힘든 심정을 이해하도록 미리 남편들이 부인을 업고 성당 건물을 한 바퀴 돌게 하였습니다. 

예수님 역할을 맡은 이는 미사 독서 봉사를 하는 형제가 마태오복음서 산상수훈을 낭독하였습니다.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여 나중에 자신이 느낀 점을 현재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 설명하도록 하였습니다. 미리 짜인 각본 없이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중풍병자 역을 맡은 자매님들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 등에 업혔다고 고백합니다. 또, 최근에 허리 디스크 탈출증세로 고생했던 남편이 제대로 침상 역할을 할지 염려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미안한 감정이 들었고, 자신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안쓰럽기까지 했답니다. 무사히 자신을 업고 다니는 남편의 등이 믿음직했으며 자신이 병이 든다면 의지할 사람은 이 사람뿐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답니다. 

침상 역을 맡은 형제들은 결혼하고 나서 처음 업었지만, 쑥스럽지 않았답니다.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가벼운 집사람의 몸무게에 좀 더 자주 업어주어야 하겠다고 결심했답니다. 오히려 문을 가로막고선 청중을 뚫고 들어오기가 어려웠답니다. 남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답니다. 

지붕이 되었던 교우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좋은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지만, 막상 훼방꾼이 나타나자 은근히 부아가 났다고 합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게 싫었답니다.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게 못마땅했고 그래서 들어오지 못하게 몸을 밀쳤다고 합니다.

율법학자 역을 맡은 형제들은 예수의 언행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썼답니다. 과연 한 인간이 남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며, 자신들이 와있는 것을 알면서도 죄의 용서를 들먹거린 예수라는 사람의 의도가 건방지고 도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곱게 설교나 하고 병자나 고쳐주었으면 눈감아 주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중풍병자 역을 맡은 자매들이 침상 역을 맡은 남편을 거꾸로 업는 이벤트를 연출했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남편을 업는다는 것을 평소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답니다. 강의실 책상에 의지해서 남편을 업고 일어셨습니다. 이 장면을 본 우리는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라했습니다. 두 부부는 얼굴이 상기되었습니다. 기쁨과 행복감이 번져 나왔습니다.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우리는 모두 기뻤고, 등에 누군가를 업은 느낌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강의실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각자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의구심과 개인적 저항감이 사그라졌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뿌듯한 감정이 솟아올라 무엇인가 이루었고 깨달았다는 ‘아하!’하는 체험을 얻었습니다. 

복음서는 다른 종교의 경전 내용과 달리 실제 삶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그 속에서 어떤 감동을 일으킵니다. 우리 곁에 와 계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느껴보라는 배려입니다. 

예수님의 등장은 초월자이기만 했던 하느님께서 비루하고 무가치하며 사라져 버릴 인간의 육신으로 오셔서 인간의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셨다는 가르침입니다. 누구나 내면에 거룩한 영의 힘을 갖추었으며 그 영의 능력이 하느님 아버지께 온다는 것입니다. 그 육화의 신비는 과거에 끝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행하는 진행형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만 계시며 오불관언(吾不關焉,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의 태도를 보이지 않으시고 지금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육화는 구체적 살을 지닌 이웃으로, 손과 발이 묶인 채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눈이 열린 사람이 나서서 그분을 풀어주고 모셔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이웃에게 그리스도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 번의 역할극을 통해서 우리가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틈이 큰 둑을 무너트리듯 우리의 굳어버린 마음도 조만간 허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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