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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감사(Eucaristia)와 구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1 조회수1,371 추천수1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2 주간 수요일 - 감사(Eucaristia)와 구원

 

 

 

 송명희라는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소뇌를 다쳐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습니다. 몸의 성장발육이 느리고 연약하여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그렇듯이 얼굴과 몸이 비틀어져 거울을 보기도 싫었습니다. 몸이 그래서 초등학교도 가지 못해서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수차례 반복되는 이사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때 하느님은 ‘말하는 대로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 받아 적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느님이~”

그녀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말씀에 울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

하느님은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느님이라 써라!’ 하셨고, 그녀와의 반복되는 공방전 속에 결국 하느님이 승리하셨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렇게 ‘나’라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사로 한국 복음성가 작사대상을 수상하고 그녀의 책도 기독교 저서 최우수 서적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은 장애인 학교 건립을 추진 중이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그 열 명 중에 유일한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치유해 주신 것이 곧 그 사람들의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돌아와 감사와 찬미를 드렸을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예부터 나병은 죄의 상징이었고 나병을 치유해주시는 것은 세례로 상징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다는 보증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때 비로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송명희 씨는 비록 개신교 신자지만 우리에게도 큰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그녀를 바뀌게 한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것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변화시킨 것은 ‘하느님의 공평함’을 어렵게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찬미 하면서부터 였습니다.

 

가끔 미사시간에 신자들의 얼굴을 보면 억지로 나와 있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분들을 의외로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미사는 파견한다는 뜻이 있고 동시에 ‘감사(Eucaristia)’의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감사의 찬양을 드리지 않으면 미사가 아니고 다른 이들이게 주님을 전하려는 사랑이 없다면 미사는 그 사람에겐 헛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오늘의 치유 받고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미하기 위해 제대 앞에 모이는 이는 비로소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하기가 얼마나 인색하고 어렵습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았다고 느낄 불행한 순간에도 감사가 나온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태양의 찬가를 지어 자연과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시는 그 분이 눈이 멀어 보이지 않을 때였다고 합니다. 눈이 멀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 분을 찬미하였기에 성인이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우리’라는 선물을 주신 그대, 사랑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바로 관계입니다. 말을 못 해도 엄마가 함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찬미도 바로 이래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 하나만으로 능히 찬미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라는 선물을 주신 하느님과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봅니다. 그분이, 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도록 합시다.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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