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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병의 마중물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0 조회수515 추천수7 반대(0) 신고
 
 

한 병의 마중물 - 윤경재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7-1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이 비유를 읽으면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사뭇 낯설기만 합니다. 요즘 같이 복잡한 세상에 주인의식으로 무장하여 난관을 헤치고 나가야 자기가 받은 사명이나 일을 성사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이 말씀이 지나치게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솟습니다. 이왕이면 멋진 효과도 내고 스스로 성취감을 얻도록 하는 것이 능률적이지 않으냐는 심정입니다. 

실제로 요즘 유행하는 성공학에서는 매사에 능동적이고 주인의식을 갖추는 길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야 앞서가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구호처럼 외칩니다. 미국 대통령에서 동네 구멍가게 주인까지 모두 이런 생각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행복할 것 같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더러 쓸모없는 종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사하라 사막 한 복판에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 펌프 손잡이에 깡통이 하나 매달려 있었고 그 속에 이런 내용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편지는 메마른 사막 한 복판을 헤맬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물을 계속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이 펌프는 물을 퍼낼 수 있는 완전품입니다. 땅 밑에는 언제나 흐르는 물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펌프를 사용하려면 바짝 마른 펌프를 먼저 적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펌프를 돌릴 만큼의 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펌프 곁 흰 바위 밑을 들치면 마중물이 들어 있는 병이 있을 것입니다. 물이 증발하지 않도록 마개를 잘 막아 놓았습니다. 마중물은 겨우 이 펌프를 적실 정도입니다. 내 말을 믿고 그대로만 하면 당신이 필요한 대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을 다 얻고 나서는 내가 했던 것과 같이 병에 다시 마중물을 채워 봉한 뒤 처음 놓였던 바위 밑에 챙겨두십시오.”

병에 채워 넣은 마중물은 갈증을 못 이겨 홀짝 마셔버리면 한 사람이 목을 축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그러나 갈증을 잠시 참고서 펌프에 넣어준다면 땅 속에 흐르는 시원하고 풍부한 생수를 실컷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목을 축였다고 빈 병에 마중물을 채워두지 않고 자리를 뜨면 다음 나그네는 땅 속의 물과 펌프를 보면서도 갈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은덕의 고리가 그 사람에게서 끝장나게 됩니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그래도 나았지만,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은덕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한 줌의 마중물도 없애버린 어리석은 짓을 수없이 저질러 왔습니다. 무엇이 대승적 차원에서 올바른 행동인지 따져 묻기 전에 소아적 행태를 저지른 것입니다. 자기 민족의 승리와 영예를 찾고자 타인의 혜택을 말살하는 파렴치를 공공연하게 저질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개인의 좁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좀 더 높고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한 병의 마중물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주인은 다만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또 다른 나이며 이웃입니다. 우주라는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입니다. 언제나 목말라하며 생수를 찾는 나그네가 바로 주인입니다. 그 주인을 위해 한 병의 마중물을 담아 두는 일은 정말 보잘것없으나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자신도 마른 목을 축일 수 있으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듯하나 어마어마한 크기의 일을 지금 여기서 수행하는 자가 바로 진정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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