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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8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0 조회수396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 묵상은 두 가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보상도 생각하지 말 것을, 둘째는 '쓸모없는 종'에 대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이 땅의 모든 공복들에게도 오늘 말씀을 전해주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묵상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이유를 차지하는 것은 아마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요즘 일부 신학논쟁을 보면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 등 이런 얘기들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 생각의 밑바탕에 구원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죽어서 천당 가고 싶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났으므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구원은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고 있으므로 구원의 관점에서 이런 신학논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아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보상심리도 갖지 마라는 가르침이므로 마땅히 해야 할 당위성과 사람 된 도리만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교를, 우리 가톨릭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구원이라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 말씀에 반하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가 타종교를 배척하고 있으며 그나마 포용주의 입장을 가진 분들은 관용적인 생각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 된 도리와 당위성만을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구원은 생각하지 않고 있으므로 열린 종교관이라 할 수 있는 다원주의 입장도 구원이라는 보상심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초월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사실 전에는 다원주의 입장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나 다원주의도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이런 논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신앙관이 오히려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배타주의와 포용주의 그리고 다원주의는 사실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만 언급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에서는 이런 얘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교가 유일한 종교였던 서양의 입장만을 생각한 것이며 우리 동양의 관점에서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비근한 예로 이 땅의 우리 신앙 선조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었으므로 오히려 우리 가톨릭을 포용해 줄 것을, 더 나아가 종교다원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고 우리가 배타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면 종교인 이전에 먼저 사람부터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양의 입장에서는 그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었으며 이 땅에는 이 땅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종교가 다원화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 땅의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배타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거나 우월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면 종교 간의 대립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평화에 기여할 종교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불안 요소가 된다면 이는 종교의 본질을 망각한 행위이고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차라리 종교를 갖지 않는 것이 자신은 물론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배타적, 우월적 종교관이 생겨난 원인은 바로 잘못된 구원관 때문에 비롯되고 있으므로 이제라도 잘못된 구원관을 버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하여야하며, 우리 교회도 헛된 기대나 잘못된 구원관을 심어주는 그릇된 가르침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를 삼종기도로 바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의 종이므로 무조건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주님의 종일뿐, 다른 어떤 사람의 종도 아니며 종의 종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제의 지시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므로 사제가 주님이 되지 않고서는 순종을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제와 하느님은 일체라는 그런 교리가 있는지는 불민한 탓에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순종하여야하고 그 외의 그 어떤 지시도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사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 더 나아가 주교에게 모조건 순종해야 하는 소속 사제들의 순종도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과거의 잘못된 유산이며, 이러한 사제의 절대적인 지위는 사제 중심의 우리 교회의 의사기구를 통해서는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평신도가 깨어나야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나지 못하면 저희는 쓸모없는 종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여전히 종으로 말씀하시므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종의 의미는 신분이 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종처럼 가져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종은 자신의 생각을 모두 버리고 오직 주인이 시키는 일에만 전념하며 주인의 맘에 들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머슴은 그나마 새경이라도 받지만 종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직 해야 할 일만 해야 합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종노릇도 할 수 없으므로 종노릇을 하려면 자신을 죽이고 죽여서 '나'라는 상을 완전히 버려야 하고, 내를 버려서 내가 없기에 그 어떤 대가도 바리지 않는, 그 어떤 상에도 머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서 그 어떤 상에도 머물지 않고 구원이라는 상마저도 버려야 우리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민주사회는 공복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복들은 국민들을 하늘처럼 모셔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라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라고 공복제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다반사이며 오히려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므로 제발 이 땅의 공복들은 ‘저는 쓸모없는 국민의 종일뿐입니다. 마땅히 국민들이 원하는 일만 하겠습니다.’이런 각오로 종노릇을 충실히 해주기를, 또한 이를 고언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도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그 어떤 보상도 기대심리도 버리고 주님의 종이오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섬겨라 하였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저희들이 우히려 잘못된 구원을 바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들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할 공복들이 국민의 뜻을 거역하며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것,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깨달지 못한 저희 탓이오니
깨달음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저희와 우리 교회의 잘못을 깨우쳐 주시고
이 땅의 공복들에게도 공복의 사명을 다하도록 깨우쳐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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