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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당장의 뒷담화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6 조회수487 추천수3 반대(0) 신고
 

 

회당장의 뒷담화 - 윤경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13,10-17)

 

오늘 복음 내용을 잘 읽어보면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장은 자신의 속마음을 예수님께 직접 털어놓지 못하고 군중에게 분풀이하듯 뒷담화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에 주눅이 들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제 체면이 크게 깎였다고 본 것입니다.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했으니 무엇인가 짚고 넘어갈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 보이는 자리에서 군중에게 화를 내며 나무란 것입니다. 

문맥을 잘 살펴보면 18년간 허리 굽은 여인이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먼저 나서서 그 여자를 부르고 안수하시어 병마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회당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평소에는 회당에 잘 오지도 않던 여인이 하필 안식일에 회당에 찾아와서 이 사달이 벌어졌다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평일에 병마를 풀어주는 일까지는 그런대로 눈 감아 주겠는데 굳이 안식일에 이런 일이 생기도록 한 여인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미리 군중에게 종주먹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병자에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대목 이후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거나 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이 대목이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병자 치유는 예루살렘 순례 길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 그 여인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요 만남입니다. 예수께서도 그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필요한 것을 미루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구원과 사랑을 베푸는데 망설임이 없으셨습니다. 조건이나 제약에서 자유로우셨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님의 이런 행동을 본받으라며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랑만 한다면 그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흔히 생각하듯 아무것이나 멋대로 하라는 의미보다 사랑을 베푸는데 만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기회가 닿을 때 열심히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한 개인에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하느님께 돌아설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기에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늘 마지막처럼 살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간을 허송하면서 보내는 사람들이 안타까우셨습니다. 그랬기에 늘 사도들과 군중에게 최후의 심판 날처럼 절실하게 살도록 강조하셨습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코헬렛1,9) 

우리는 흔히 이 코헬렛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면서 삽니다. 특히 동양인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느냐 아니냐는 ‘지금, 여기서’ 결정지어야 하는 당면 과제입니다. 다시 기회가 없을 수 있습니다.

외교인에게 천주교에 입교하라고 권하면 쇠털같이 많은 날 꼭 지금 해야 하느냐고 대꾸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다가 나중에 교회에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핑계를 댑니다. 일견 그 말이 옳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오늘 회당장의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회당장의 언행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됩니다. 자기 의견을 정면으로 밝히지 못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뒷담화를 하는 자세와 고정관념에 묶여 참된 자유를 잃은 모습이며, 자신에게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낸 무명이 그것입니다. 

어느 광고 문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를 아느냐 모르느냐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저는 오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두 사람만이 살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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