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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시 보게 해 달라고?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6 조회수690 추천수6 반대(0) 신고

오늘 복음 본문은 앞 구절 하나가 빠져 있다.

오늘 복음구절 바로 앞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들은 예리코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복음 시작부분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예수님일행이 예리코에 들어갔다가 아무런 가르침이나 기적도 행하지 않고

그냥 바로 빠져나가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예수님 일행이 예리코라는 동네에 들렀지만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나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 인생에서도 같은 일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그 가운데 계실법한 예수님을 몰라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그냥 지나치게 만드는 일들이…

왜 그럴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예수님을 불러세우고 원하던 것을 얻게 된 소경, 바르티매오의 행동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바르티매오가 한 일은 “듣는” 것이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것,

혹은 듣지 못한다면 발견하는 것(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본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자세히 듣지 않으면 안 들은 것과 같다.

길을 가면서 수많은 장면을 만나지만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자세히 본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지나가 버렸다.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에 대해 건성으로 대하지 않고 정성을 들여서 대할 필요가 있다.

옆에서 “내일 시간 있는지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일에 골똘해 있다면 분명히 그 소리가 귀에 들렸을텐데도 놓치고 말 것이다.

만나는 사람 마다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경이 한 다음 행동은 소리치는 것이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을 찾았다면 그 다음엔 그냥 있을 것이 아니라

뭔가 청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이 필요하다.

 

들꽃마을 있을 때, 부랑인 시설이었지만 장애인이 대부분이었고, 청소년과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들꽃마을을 장애인시설로 변경하고 싶었지만 반대하는 세력?이 많아서 접고 말았다.

그 대신 대구에 아파트를 구해 그룹홈을 만들었다.

물론 시설신고만 하고 정부지원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공무원을 만날 때마다 앓는 소리 하는 것이 귀챦게 만들고

오히려 역효과를 낼까봐 한 두 번 지원요청을 하고는 입 다물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구청장이 추석방문차 왔을 때 그런 사정을 말했더니,

그분 말이, 그럴수록 더 청하라고 한다.

자꾸 앓는 소릴 해야 다음해 예산 편성 때 한 번더 생각하게 된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계속 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르티매오처럼...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 글쎄…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없을 수 있을까?

 

그 다음 소경이 청한 내용이 나온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말이 참 재미있다.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했으니, 태생소경이 아니라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말 성경번역이 조금 잘못된 것이다.

어쨋든, 그가 태생소경이든 중도 실명자건, 상관없이

그가 눈 먼 상태에서도 늘상 무언가를 보고 살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보게 해 달라는 말은,

우리말 성경 번역이 약간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참 깊은 의미가 들어있는 말인 듯하다.

 

다시 보는 것이 바로 자세히 보는 것이 아닐까?

자세히 듣는 것이기도 하고.

또는 올바로 보고 올바로 듣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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