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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8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8 조회수360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2주일]

<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또는 12,41-44>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인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 공히 기록된 말씀이고 마태오 복음서에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서에서는 장을 달리하고 있으므로 두 말씀을 하나의 말씀으로 연계하여 묵상할 수 없었으나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두 말씀을 연이어 기록하였기에 하나의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가 잘못 기록되었다고 하기 보다는 복음서의 章구분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루카 복음서에 의하면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하신 말씀은 20장의 끝 말씀이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21장의 첫 말씀이므로 章구분을 잘못하여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묵상할 수 없는 원인을 제공한 것 같습니다. 복음서를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마르코 복음서의 진가를 새삼 발견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오전에 친한 친구가 전화를 하여 6개월의 예비자 교육을 모두 마치고 이번 주 토요일 부부가 함께 세례를 받는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며, 영세 전에 보좌 신부님과 주임 신부님의 면담이 있으므로 면담에 대비하여 몇 가지 궁금한 점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것은 성당신축 봉헌금의 약정은 얼마나 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당신축 봉헌금의 약정에 대하여 물어보느냐 하였더니 그 친구의 대답은 미사가 끝나고 공지사항을 알려줄 때에 이에 대하여 몇 번 얘기하는 것을 들었기에 신부님 면담 때에 혹시 성당신축 봉헌금에 대하여 말씀하시면 약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여 제 대답은 세례받을 때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며, 입교를 하고 난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벤츠타고 다니는 값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하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세례를 받기 전에 이런 걱정부터 하고 있으므로 오늘은 돈 없으면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요즘 세태에 대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우리 가톨릭은 개신교나 다른 종교에 비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개신교는 신자가 갈수록 줄고 있지만 우리 가톨릭은 신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우들 사이에, 특히 성당 신축이 있는 경우에는 이에 대하여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기도 합니다.

용사참사 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으신 김형태 변호사님은 얼마 전에 기고한 글에서 ‘서울 변두리 우리 동네에도 수백억짜리 교회가 들어섰고, 멀쩡했던 성당이 헐리고 백 억짜리 성당을 새로 짓는다. 가난한 동네 신자들 호주머니에서 이런 거액이 나와야 하니 대학병원에서 청소해 주고 버는 100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아주머니도 매달 십 만원, 이십 만원씩 거들어야 한다. ’는 글을 게재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게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다' 하였으므로 율법학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모욕적인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없는 소리를 하실 분도 아닙니다. 지금 이 말씀은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가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이 땅의 여러 종교에 대하여,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도 돈이 필요한 이유는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기 보다는 교회를 유지 관리하고 교세를 확장하는데 돈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성당 한 곳 신축하려면 서울에서는 100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성당신축이 꼭 필요한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데 성당이 없어서 하느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번쯤 재고를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야외에서 장정 오천 명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민중들을 찾아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셨기에 교회 건물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민중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들에게 구원받고 싶으면 교회로 오라고 하기 때문에 교회 건물이 필요하고, 교회 건물은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가기에는 부담을 느낄 정도로 호화스럽고 대형화되고 있기에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지금 이 땅의 거의 모든 종교가 이런 모습들이기에 돈 없으면 종교 생활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오늘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부자가 큰돈을 넣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헌금하였다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대할 때마다 불가의 貧者一燈 얘기가 떠오릅니다. 이 얘기를 어느 글에서 인용하여 소개하면,

난타는 어느 날 길거리에 나갔다가 부자들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다. 난타는 궁리 끝에 구걸해서 은전 한 닢을 얻어 그것으로 기름을 샀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등불을 만들어서 기원정사로 찾아갔다.

먼발치에서 부처님을 뵌 그녀는 구석진 곳에 초라한 등불을 밝히고 설법을 들었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흩어지자 등불도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도 꺼지지 않고 점점 더 밝은 빛을 내는 등불이 있었다. 난타가 깨끗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밝힌 그 등불이었다. 당번을 맡은 목련존자는 날이 밝아오자 기름을 아끼려고 등불을 끄려 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은 꺼지지 않는 난타의 등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난타가 밝힌 등불이 어떤 큰 등불보다 더 오래 어둠을 밝히는구나. 이 등불은 태풍으로도 끌 수 없고, 바닷물을 다 부어도 끌 수 없다. 누구보다 깨끗한 마음으로 등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공덕으로 ‘등광불(燈光佛)’이라는 부처님이 될 것이다.” 가난한 여인의 깨끗한 정성을 뜻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은 이 설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데 있으며 돈으로 복을 사고 천당행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가난한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기가 가진 것을 전부 헌금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헌금은 위 빈자일등의 얘기로 대신하고 가난한 여인이 헌금한 돈이 어떻게 쓰여 지고 있느냐를 묵상하면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를 믿는 것이 성경의 무오류를 믿는 것이며 성경의 모든 기록이 전부 무오류라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진리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아야 진리이므로 따라서 오늘 말씀은 바로 지금 이 땅의 모든 종교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땅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며, 또한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이유로 불우한 이웃들을 일일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우한 이웃들을 일일이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일을 우리 교회가 대신해 주기를 바라며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우들은 어떤 목적으로 봉헌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제 경우에는 이런 마음으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봉헌의 의미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교우들의 뜻도 저버리지 않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섬겨야 하며
빈부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가난한 자는 하느님도 섬길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태어난 우리 교회가 주님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있으므로
주님을 뵈올 면목도, 성체를 모시기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자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희 교회를 지켜 주시옵고
저희도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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