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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께 혐오스러운 것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7 조회수2,663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1 주간 토요일 - 하느님께 혐오스러운 것

 



 

 젊은 변호사가 멋진 사무실을 빌리고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인상을 주려고 사치스러운 전화기를 구입했습니다. 그 전화는 아직 가설되지 않은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첫 번째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젊은 변호사는 일부러 그를 밖에서 15분쯤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잘난 체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 정말로 통화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네, 국장님이십니까? 국장님,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아, 네 정 그러시다면, 하지만 천만 원 이하로는 안 됩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안녕히 계십시오.”

변호사는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손님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젊은 변호사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 ... 전화를 가설하러 왔는데요.”

이 변호사는 은근히 으스대고 싶었지만 결국 비웃음을 사고 맙니다. 전화를 개설하러 온 사람은 전화가 안 되는데도 전화 받는 척을 한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처지를 다 아시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사는 척, 더 많이 아는 척, 더 행복한 척을 하는 것을 잘 아십니다. 오늘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 받는 것이 하느님께는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한 번은 고해성사 하러 들어오신 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다 받아들이겠는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우선 먹고 살아야 신앙도 있고 뭐도 있는 거지...”

조금은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또 조금은 비웃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라고 했다가 여지없이 비웃음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비웃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면 그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그렇게 말하는 이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을 좋아해서 그렇게 말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뿐임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어 자신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못마땅해 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참혹한 죽음을 안겨주려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보려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을 보며 그 분이 틀렸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인정하는 것을 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통을 줘서 더 비웃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 신념 안에서 당당하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비웃었던 이들은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왠지 자신들이 예수님께 비웃음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처럼 돈도 좀 원하고 육체적 즐거움이나 권력을 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끝까지 세상 것들을 원하지 않는 것을 보고 혼돈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비웃는 사람들을 삶으로 비웃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지 말고 나의 확신대로 살며 오히려 세상을 비웃으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본래 부잣집에서 태어나셔서 돈 걱정 없이 사실 수 있으셨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거지의 삶을 택하셨습니다. 그분이 드나들던 문은 보통 사람의 허리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드나들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만 구멍을 뚫어놓고 문으로 사용하였고 잠자리도 누우면 그만인 조그만 공간에서 주무셨습니다. 물론 먹는 것, 입는 것도 살 수 있는 만큼만 드시며 사셨습니다. 모든 것을 최소한만 취하며 은근히 부자들을 비웃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그의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프란치스코는 그의 삶으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드러냈고 이어 친구들과 많은 이들이 그의 삶을 따르려고 몰려들어 그의 동료들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버리고 거지의 삶을 사는 것을 비웃는 친구들을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께 혐오스럽게 보이느니보다는 사람에게 비웃음 당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당당하게 살기 위해선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하느님께서 혐오하시는 것들입니다. 언젠가 다 사라질 공허한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한 것을 추구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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