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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사원 ㅎ 씨의 비애> - 호인수 신부
작성자송영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7 조회수670 추천수3 반대(0) 신고
 
회사원 ㅎ씨의 비애
[호인수 칼럼]
 
2009년 11월 06일 (금) 11:28:38 호인수 hoinsoo@hanmail.net
 

ㅎ씨는 37세, 여성이다. 미국에서 8년간 의상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 변두리의 한 중소의류수출회사에 어렵게 취직해서 일한지 3년이 되었다. 정규직 과장이다. 허구한 날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서 밤 11시에야 돌아오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툭하면 특근이니 연애는 물론 맞선 한번 제대로 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직도 본의 아니게 미혼이다.

ㅎ씨는 요즘 유난히 더 슬프고 서럽다.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상무가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고 다른 사원들 앞에서 공공연히 그에게 핀잔을 준단다. 전에 있던 상무도 어떻게든 그를 내쫓으려고 안달을 하다가 끝내는 회사 돈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되어 쫓겨났는데 이 사람은 한 술 더 뜬단다. 묵주반지를 낀 손으로 삿대질은 보통이고 어떤 때는 ‘자매님’이라고 불러가며 지청구란다. 그러니 어디 살겠느냐고 ㅎ씨는 밤늦은 퇴근길에 전화기에 대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는다.

ㅎ씨의 하소연은 차츰 회사 전반의 문제로 전이된다. “우리 회사는 사원이 백 명이 넘는데 노조도 없어요. 사원들 사이에는 바른 말하면 왕따가 돼서 결국은 쫓겨난다는 사고가 팽배해요. 미국 지사는 사내의 인권문제를 감독하는 기관이 따로 있어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데 여기 본사는 시도 때도 없이 휘둘러대는 상사의 언어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제가 입사한 후에만도 30대 직원이 둘이나 죽었어요. 둘 다 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건 보나마나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 거예요. 사원들은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보험이라도 들어둬야 하지 않겠냐는 말들을 예사로 해요. 시체놀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어쩌다가 토요일, 일요일에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시체처럼 꼼짝 않고 잠만 자는 거예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거지요. 저 그래서 주일미사 못한 지가 얼마나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는 혼자라서 좀 나은 편이지요. 결혼한 사람들 중에 아이가 둘인 경우는 거의 없고요, 식구들 얼굴도 한 주일에 두세 번 보는 게 고작이라니까요. 남편과 애가 일어나기 전에 나오고 잠든 다음에 들어가니 그럴 수밖에요. 정규직이면 대수예요? 1년을 못 버티고 나가는 애들이 수두룩한 걸요. 너무 안됐어요.”

스트레스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든 아니든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동료사원들이 그러리라고 믿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불평은 계속된다. “본래 웃기 잘하는 제게서 점점 웃음이 떠나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가요. 전 경마장엔 안 가봤지만요, 말이 죽을힘을 다해 뛰다가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 처한 것 같아요. 요새 제가 꼭 그래요.”

이 땅의 모든 ㅎ씨들은 이렇게 산다. 그런데 나는 사제랍시고 그런 ㅎ씨들에게 주일미사 참례를 강요했다. 본당의 봉사활동 단체에 적어도 하나씩 가입하라고, 그래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기회만 있으면 침을 튀겼다. 그렇게 30여년을 살아왔다. 부끄럽다. 오늘 밤은 20여 년 전부터 보아온 터라 늘 어린애 같기만 한 ㅎ씨에게서 정말 훌륭하고도 요긴한 알로꾸씨오(훈화)를 들었다.

오늘 아침에 받은 교구공문이 오버랩 된다. “2011년은 인천교구 설정 50주년이 되는 해다. 기념사업으로 ‘영성교육피정센터’를 건립하는데 약 3백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 신자들에게 ‘봉헌약정서’를 배부하고 설명하라. ‘인천교구-성령충만’이라는 구호를 매 미사 때마다 제창하라.”는 내용이다. 하라면 하면 되나? 해야 하나? 이 기념사업이란 게 진정 ㅎ씨에게 위로가 될까? 어림없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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