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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성령잉태, 거룩한 두려움,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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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5 조회수437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성령잉태, 거룩한 두려움, 임마누엘

찬미예수님.

한 주일 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오늘 말씀에는 주님성탄 준비를 위한

우리의 자세를 돕는

중요한 세 단어가 나옵니다.

그 세 개의 단어가 뭘까요?

첫 번째가 성령 잉태입니다.

두 번째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세 단어에 대한 이해와

이것이 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얼마나 깊이 느끼고 내 영혼에

깊이 심느냐에 따라 예수님의

강생은 다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올 것입니다.

이 세 단어는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계단입니다.

여러분들 구약성경 읽으시면

돌계집은 아이를 못 낳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이를 못 낳는데

성령의 힘으로 아이를

갖게 된 사람. 누굴까요?

꼭대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죠.

젊은 나이에 이삭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세 천사 방문 후

아브라함의 힘이 아닌 성령의

거룩함으로 낳죠.

또 어디에 나올까요?

힘이 제일 세었다고 하는 삼손이죠.

그 삼손의 어머니도 아이를

못 낳는 엄마였어요.

천사를 보내서 예고했죠.

아들을 낳을 텐데 유다의

뛰어난 지도자 판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가 할머니뻘 나이에

아기가 들어선 것에요.

아버지 즈카리야, 엄마 엘리사벳은

인간적으로는 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나이였죠.

성령의 잉태입니다.

또 예수님의 성령 잉태.

예수님의 잉태는 특별히

성령 잉태 가운데서도

동정녀 잉태죠.

약혼만 했지 같이 산 적이 없어요.

이사야서 714처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성령 잉태!

우리들은 육적으로는 예수님을

잉태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여 세상에 보여줘야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우리 크리스챤들의 세례받는

그 순간부터 첫 번째 의무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줘야

되는 겁니다.

출산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출산을 하려면

잉태를 해야죠.

예수님을 모셔야 됩니다.

말씀으로 모시든,

성체로 모시든 어떤 방법으로든지

먼저 잉태가 되어야 그 다음에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잉태하지도 않은 사람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일 수 있겠습니까?

못 보입니다.

보이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절대로 그건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삶이 아닐 겁니다.

성서에 보면 성령 잉태라든지,

성령이 같이 했던 특별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는가?

첫 번째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며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하느님의 뜻을

생활 속에서 열매 맺는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오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잉태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엄청난 성령의 은총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입니까?

내가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죠.

부자 되고, 건강 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좀 전에 말했듯이

잉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낳아드려야 합니다.

사제든, 수도자든,

크리스챤의 가장 중요한

영적 의무는 예수님을

낳아드리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내 주변부터 예수님을

낳아드려야 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예수님을

낳아드려야 됩니다.

또 같은 교우들끼리

예수님을 낳아드려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첫 번째는 성령잉태.

말씀드린 대로 성모님이나

삼손의 어머니나

아브라함의 아내,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처럼

의학적으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분께 성령이

임하여 세상을 정말 거룩하게 할

그런 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들어오십니다.

거룩한 성체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렇게 축복을 받는 자들은

하느님을 드러내고 이웃에

봉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겁니다.

두 번째로 거룩한 두려움이

중요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건 합리적이지 않아.

우리는 두려움 앞에 서게 됩니다.

처녀 몸으로 잉태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는 당사자인

어린 마리아나 주변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그 두려움 때문에 묻습니다.

저는 남자를 모르는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이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천사가 나타나 용기를 줍니다.

너 두려워하는 것 알지만

두려워 하지마.

딴 남자의 씨가 아니야.

하느님의 성령의 힘으로

잉태된 것이니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드려라.’

아무튼 우리는 살아가면서

두려움 앞에 설 때가 많습니다.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어두운 두려움이 있고

거룩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난 후에 오는 두려움은

분명 어두운 두려움입니다.

죄책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의 뜻을 행할 때 결과만큼은

선하게 예비하고 계실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은 바로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어두운 두려움은 원인이

본인에게 나왔기에 죄를 찾아

겸손이 회개하면 사라집니다.

그리나 회개치 않으면

마귀가 그 두려움을 가지고

하수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한 뜻을 설명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마리아에게도,

두려워 마. 네 사촌 언니

엘리사벳, 그 늙은 나이에

아기를 가진 지가 여섯 달이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단다.’

이 말은 천사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리아에게 해 준

얘기였습니다.

요셉에게도 두려워 마라.

태중의 아기는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란다.’

그래서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때이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순간이고,

그 결과 신앙이 업그레이드되는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오는 두려움이

어두운 두려움인지,

거룩한 두려움인지 그때그때

잘 분별해야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중요한 말은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 말만큼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임마누엘이시다.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비록 내가 불붙는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주님은 나와 곁에

계실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을

우리는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 번째,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두 번째, 하느님은 나의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세 번째, 하느님의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과거의 역사에

한 번도 나를 사랑하시지

않으신 적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게 바로 첫 번째요.

주님은 현재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이 십자가를

어떻게 지고 갈지 모르는

힘듬 속에서 반드시 하느님께

뿌리만 내리고 있다면

그분은 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다는 표현이요.

마지막 세 번째는 미래입니다.

나의 앞길이 가시밭길일지,

벼랑 끝을 걸을 길인지,

사금파리 위를 맨발로

걸어야 할지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길 끝에는

천국이 있고 그리고 주님이

준비하신 꽃밭이 있다는 것,

나의 앞길 선하게 안배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다 같이 아기 예수님께

우리 신앙을 선물로 드립시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합시다.

그리고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그랬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두운 두려움에만

가득 차 있었지, 단 한 번도

신부님이 얘기하는 저 거룩한

두려움이 내 신자 생활 가운데

몇 번이나 왔을까?

한 번도 그것을 체험한 적이 없다면,

하느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겁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청하십시오.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들의

신앙을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그랬습니다.

잘 분별해야 됩니다.

때로는 마귀는 어두운

두려움을 가지고 거룩한

두려움인 척 할 때가 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분별을 해 줍니다.

우연히 들은 평화방송의 어느 강의가

내 현재 삶을 분별해 줍니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러시기 위하여 그 작고

초라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육화하십니다.

인카르나시오(Incarnatio)!

육의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그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고,

현재의 어려움 해결해 주시고;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실 분이라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아멘.

2019년 대림 제4주일(12/22)

(서운동성당)

-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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