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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의한 집사의 비유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6 조회수684 추천수3 반대(0) 신고
 
 

불의한 집사의 비유 - 윤경재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1-8)

 

 

예수님의 비유 말씀 중에서 이 불의한 집사 비유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이 비유를 처음 듣던 청중이나 제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하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일찍이 사람들이 보고 경험한 적이 없는 내용을 좀 더 쉽게 알아듣도록 하실 목적이었습니다. 당신만이 알고 계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시고자 청중이 알 만한 비유와 이야기를 채택한 것입니다. 우선 청중이 잘 아는 생활 속 실례를 드셨습니다. 그러나 종종 듣는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일부러 화폐단위를 어마어마하게 드신다든가, 이야기 전개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이끌었습니다. 청중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도록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비유 말씀의 목적을 청중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선 이 집사가 불의하다고 평가를 받은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나쁜 소문이 돌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부분 소문이란 것이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을 들어 생겨나는 법입니다. 실제가 아니라 무엇인가 연관된 것으로 소문이 나는 법입니다. 소문과 실제는 약간씩 다르기 마련입니다. 소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의심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소작농들은 집사가 가혹하게 군다고 투덜대더라도 주인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식의 소문을 내었습니다. 주인에게 직접 피해가 가야 주인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주인으로서는 돈을 안전하고 빠르게 증식시켜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소문을 들은 내용은 집사의 일하는 능력이나 가혹한 인품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집사를 불러 집사 일을 청산하고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곤란한 지경에 다다른 집사는 약삭빠르게 나중 일을 생각하고 빚을 진 소작인들에게 찾아가 얼마씩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최소한 나중에 대접이라도 잘 받을 수 있게 준비한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사실 자기가 받을 몫을 떼어 준 셈입니다. 다른 집사 같았으면 소작인들을 찾아가서 한 몫을 자기에게 달라고 우격다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집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빚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유대인 집사들은 이자를 받을 수 없는 율법 규정 탓에 미리 실제로 꾸어준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장부에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었기에 쌍방 간에 양해된 사항입니다. 그때 집사는 자기 몫을 붙여 장부에 적었던 것입니다. 

이 집사는 주인의 원금을 손댄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미래를 위해서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자 소문이 금세 바뀌었습니다. 아마도 먼저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은밀한 보고가 주인 귀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가 일 잘한다는 평이 갑자기 나돌았습니다. 소작농 처지에서 다른 집사가 와보아야 별 볼일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 집사가 되던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비유 말씀에서 나오는 주인은 사후에라도 이런 전후 사정을 상세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불의한 집사라고 계속 부르면서도 그가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물론 그를 계속 집사로 두었는지 아닌지 여부는 본문으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루카저자는 이 난해한 비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실마리를 16,9-13절에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강조점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루카는 이 비유를 통해 세 가지 면을 강조합니다. 첫째 재물의 올바른 사용을 말했고, 둘째 작은 일에도 성실할 것을 말했습니다. 셋째로 각자는 하느님인지 재물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하고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 말씀을 갑작스럽게 다가올 종말 때에 어떻게 현명하게 처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셨다면 루카저자는 종말이 미루어지는 당시 제자들에게 평소에 어떻게 재물을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 능력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낭비하고 살아왔습니다. 비단 재물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건강, 개인의 능력을 말합니다. 또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평화 등 공짜로 받은 것 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기쁨 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감사하기는커녕 당연하며 심지어 자기가 잘나서 당연히 획득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행태를 바로 낭비한다고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 자기 것이 아니며 함부로 낭비할 권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사는 모든 이가 함께 누려야 할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생명마저도 하느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이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전횡을 부리며 낭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본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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