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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8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5 조회수412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인 '되찾은 양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자비의 관점에서 말씀하셨으나 루카 복음서의 오늘 말씀은 회개의 관점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므로 같은 말씀이라도 두 복음서는 다른 의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복음서가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저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고 오늘 비유 말씀은 전에는 자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비유 말씀도 복음서에 따라 다른 의미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우리 신앙은 자비와 회개의 두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소외되고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이웃들에게는 자비를 실천하고 불의를 저지른 자에게는 회개를 당당히 요구하는 이런 우리 신앙에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교회 현실은 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 회개의 관점에서만 묵상하려고 합니다. 일전에도 묵상한 적이 있지만 사실 저는 회개에 대하여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거부감을 가진 이유는 선량한 민중들이 잘못했으면 뭘 그리 잘못한 것이 많다고 회개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회개할 사람들은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인데 왜 애꿎은 불쌍한 민초들에게만 '회개하여라!'하는 점이고, 또 삶에 지쳐서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하여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회개를 얘기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용산참사를 예를 들면 살기위해서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한 것은 회개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진짜로 회개할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용역을 동원하고 공권력까지 동원한 힘 있는 대형건설사들이며 또, 지주와 세입자의 사적 분쟁은 당사자 협의가 원칙임에도 이를 무시한 채, 대형 참사가 발생할 것을 예견하고도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행사한 사람들입니다.

이로 인해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음에도 우리 법원은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행사한 것은 정당한 공권력행사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힘없고 돈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회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진짜 회개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고 있으므로 번지수를 잘 찾아서 회개를 요구하라는 그런 뜻에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뜻에서 회개를 말씀하셨는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회개할 죄인은 한 사람이며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아흔아홉 사람입니다. 이를 비율로 따지면 회개할 죄인은 1%이고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99%입니다.

회개할 죄인 1%가 뜻하는 것은 지배계급이며 회개할 필요가 없는 99%는 민중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1%의 위선적인 지배계급에게는 불의한 자들로, 여우로, 심지어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며 회개를 요구하셨고 민중들에게는 이들에게 속지 않도록 깨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중 하나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회개하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가르침은 우리 자신을 한없이 낮춰서 자기반성을 하라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있으므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꼭 그런 의미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유대사회는 민중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어 유대교 지도자들이 민중들을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하여 진짜 회개하여야 할 사람은 바로 유대사회의 지배 계급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런 모습이기에 이런 묵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오늘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탓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므로 바로 너희 바리사이들이 회개할 죄인이라는 뜻으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 사회를 심판하신다면 첫 번째로 심판할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이고 제일 나중에 심판할 사람들은, 아니 하느님이 위로해 줄 사람들은 소외 받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소외 받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회개를 한다고 하면 그만 됐다고 말씀하실 것이며 지배계층들이 지금이라도 회개하겠다고 하면 하느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이 땅에서 누가 가장 먼저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실까를 묵상하면 아마 그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일 것입니다. 한 사람만 회개하여도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을 수 있고, 한 사람만 회개하여도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은 성경 속에나 있는 말씀이고 우리 교회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으므로 더 이상 할 말을 잊어 오늘 묵상은 여기서 그만 마무리 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하여 자비와 회개를 알려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은 불우한 이웃에게는 자비를 실천하고
불의한 자들에게는 당당히 회개를 요구하여야 함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교회와 저희를 성령으로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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