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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하신 하느님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5 조회수515 추천수6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병자와 허약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가난하고 슬프고 옳은 일에 주리고
온유하고 자비로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미 모든 완전하고 훌륭한 조건을 다 갖추고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 즉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셨던 본래의 영적, 육체적 건강을 되돌려 주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놀라운 일이 되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당연한 일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 되는 일이 너무 많다.
빨간 신호등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고 특종처럼 보도되고 이 시대의 양심가라고 추켜세웠던 일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예수님의 진복 팔단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 귀에는 너무나 놀랍게 들리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고 온유한 사람이 행복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한 까닭은 아마도 하느님이 그러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그렇게 가난하시고 슬프시고 온유하신(온유함은 달리 말해서 마음이 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까닭은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심지어는 하느님께 반역하고 대들었기 때문에 말이다.
 
사실 오늘날처럼 돈으로 안되는 일이 없는 이런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이라면 정말 인생을 즐기면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인데,
이런 판국에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정신 나간 소리요 같잖은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재물 없는 가난이 행복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설교는 사람들의 이런 생각들을 변화, 개혁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하느님은 사람을 부유하게 창조하셨지만 사람들 스스로 가난을 불러들였다.
가난이 생겨난 까닭이 이 세상 재물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린 것에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결국 원죄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죄의 결과 참으로 어이없게도 아까도 말했지만,
하느님이 인간 관심사에서 멀어져 버렸고,
그래서 하느님이 인간세상에서 소외되었고, 그 결과 하느님이 가난해지신 것이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단 말 앞에 “마음”을 붙인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이런 죄를 깨닫고
그 죄를 갚을 길이 없어 빚진 것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복된 것, 진복 팔단이 가난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고통과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만들어준다.
그만큼 하느님 마음을 알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그래서 그만큼 하느님께 돌아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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