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세 종류의 주는 것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4 조회수780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5-27)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하고 자신의 목숨마저도 미워한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학자가 말했다. “유대인들이 말을 할 때에는 보통 중간의 의미는 도외시하고 서로 상반되는 단어만을 연상하였다.” 동전(銅錢)의 양면(兩面)처럼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 생각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괜찮아요."라는 말이 없었다.
 
예를 들면 ‘미워한다’는 것은 ‘덜 사랑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보다 더 앞세우지 말라는 말을 대부분 ‘미워하다’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장 소중한 것과 자신을 주님 뒤에 두고 살아가라는 말을 그렇게 번역하니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렇게 하고 다른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과 바른 양심을 갖고 훌륭히 싸우십시오.”하고 말했지, “가능한 한 조금만 믿음을 갖고 교회의 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십시오.”하고 말하지 않았다. 다른 피조물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한다. 새가 노래하는 것을 보자. 얼마나 정열적인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노래한다. 오로지 노래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랑하려고 노래한 것도 아니고 취해서 노래한 것도 아니다. 노래하고 싶어서 노래했을 뿐이다. 너무나 순수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순수하고 단순하지 못하여 남의 눈을 의식하고 이해타산을 먼저 따진다. 이런 면에서 우리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린아이 시절에는 순수하고 단순하게 살았던 것 같다. 먼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성장하고 나서는 자의식(自意識)을 갖기 시작하고 자신을 걱정하면서 순수하고 단순한 성격과는 먼 개성(個性)을 갖는다. 일종의 자기 자신의 감옥을 만든 것이다.
개성이 강할수록 제한 받는 일이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살다 보면 만나면 전혀 즐겁지 않기 때문에 만나기 싫은 사람이 많아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이런 감정이 없다.
어린이 같은 예수님을 만날 때에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시며 진심으로 받으시고 진심으로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 3:3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로버트 로덴마이어(Robert Rodenmayer)가 말했다.
“주는 것에는 망설이며 주는 것, 의무로 주는 것, 감사하면서 주는 것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망설이면서 주는 것은 나는 싫다는 말이며, 의무로 주는 것은 당연히 주어야 한다는 뜻이며 감사하며 주는 것은 내가 원해서 준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는 압박을 받아 주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의무감에서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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