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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8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4 조회수38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백)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전혀 별개의 두 가르침을 알려주신 말씀인지 아니면 하나의 사실을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알려주신 말씀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 말씀은 모든 상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고, 뒤 말씀은 판단을 정확히 하라는 말씀이므로 언뜻 생각하기에는 별개의 다른 두 말씀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 결론 말씀은 '이와 같이,'로 시작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많은 말씀이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하여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태 13,1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서는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로 말씀하시어 마태오 복음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과는 거리가 있는 말씀이므로 마태오 복음서의 말씀이 원형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하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직,간접 경험칙에 의해서 인식하므로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인식의 틀 속에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으며 또 하나는 자세하게 설명해 봐야 귀가 막혀있으면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면 자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알아들으라는 뜻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후자에 해당될 것이며 이럴 경우에는 같이 있었던 제자들도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제자들에게 따로 그 비유를 설명해줘야 합니다. 어제 복음은 바리사이의 지도자가 초대한 식탁에서 바리사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비유로 알려주었으므로 그들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동석한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제 복음의 비유를 따로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말씀이 오늘 복음입니다. 따라서 어제 복음을 제대로 묵상하였다면 오늘 복음은 자연스럽게 묵상되었어야 합니다.

어제 복음은 '나'라는 상을 버려야 한다는 뜻으로 묵상하였고 묵상 내용을 글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소탐대실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묵상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다시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의 말씀으로 다시 풀어보면 잘못된 상에 연연하다가 영원한 생명인 얼 삶을 살 수 없는 잘못을 범하고 있으므로 소탐대실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 말씀은 '이와 같이,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흔히 무소유를 말씀하신 것으로 착각할 수 있고 무소유는 재산적인 가치가 있는 재물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은 혈연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불경인 금강경의 사구게로 이 말씀을 풀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금강경 제5분 如理實見分에서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 하였으며. '무릇 있는바 모습은 다 허망한 것이니 모든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로 풀이하는 것 같습니다. 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아상, 인상, 그 이상의 상뿐만 아니라 法이라는 상마저도 없애라는 뜻입니다. 法에 집착하는 것을 법집이라 하며 이는 아집과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 그리스도교 용어로 표현하면 하느님이라는 상마저도 지어버려야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므로 궁극의 경지가 아닐 수 없으며 이런 궁극의 경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도 집착하지 않는 경지이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인 '다 이루어 졌다'(요한 19,30)하신 말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종교다원주의를 벽안시하고 있지만 오늘 묵상을 통해서도 느낀 점은 언어의 차이만 극복하면, 문화적 차이만 극복하면 모든 종교는 하나의 곳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심벌이고 자기희생을 뜻하고 있으며, 오늘 묵상을 통해서 다시 확인한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교는 자기희생을 통하여 나는 물론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있다 하겠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므로 써 내가 내를, 내 이웃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으므로 결국 예수님이,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만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공짜 구원은 있을 수 없으므로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령잉태를 고백하고, 육신의 부활과 심판, 죄의 용서 등을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은 진리이신 하느님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러한 신경의 고백은 가르침을 실천하므로써 완성됨에도 가르침의 실천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 성령잉태를 부인하였다느니,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였다니 하고 있으므로 이들은 우리 그리스도교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이들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기도만 열심히 하면 예수님이 소원을 다 들어주셔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이 왜곡되고 있으므로 이런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라는 뜻에서 성경을, 신경을 문자 그대로 고집하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는 선각자들의 외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성경을, 신경을 부인하였으니 화형에 처해야 한다는 한심한 소리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헛된 망상이 깨어질까 두려워서 죄없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지만 어차피 우리는 희망이라는 꿈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탓할 수는 없으므로 하루빨리 미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할 나그네들입니다. 그럼에도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잘못 생각하여 숱한 과오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면 그 과오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천년만년 누릴 것 같은 대통령의 자리도 5년이란 임기가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권좌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권좌에 있을 때에 잘 해야 하지만 이제는 측은지심마저 생기고 있습니다. 측은지심으로 국민들을 보살펴줘야 할 지도자에게 일개 민초인 제가 오히려 측은지심을 느끼고 있으므로 세월이 유수처럼 빨리 흐르는 것이 아깝고 아깝지만 어서 빨리 세월이 흘러가기만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그 어떤 헛된 상에도 머물지 말고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오히려 온갖 상에 집착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사옵니다.
오직 주님의 가르침만을 등불삼아 오늘도 내일도 그 길을 가려고 하오니
이런 저를 가상히 여기시어 성령으로 지켜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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