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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8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1 조회수380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벌써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 첫날인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로 기념하고 있으며 둘째 날인 내일은 [위령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2만여 분이 순교하셨으나 그분들 중에서 103위만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순교하신 신앙 선조분들 중에서 어느 분은 성인이고 어느 분은 성인이 아니라는 이런 점은 동의하기 어려운 점입니다.

순교하신 분들은 모두가 성인이지만 그분들을 전부 알 수 없으므로 편의상 이름이 밝혀진 분들만 성인으로 시성한 것은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순교하신 분들을 후손들이 선별하여 성인으로 시성하는 것은 순교하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름 없이 순교하신 모든 분들을 기념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 입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는 오늘 이를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순교자로 밝혀진 분들은 모두 시성되도록 관철시켜야하며, 시복시성 절차를 교회법으로 명문화하여 오히려 순교 성인에 대하여 시성을 제한하는 것은 '순교자는 모두 성인이다' 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오늘 대축일의 본래 뜻과도 반하는 것이므로 우리 교회는 이런 점을 지적하여 순교하신 신앙 선조분들 중에서 이름이 밝혀진 분들은 모두 시성되도록 더 한층 노력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오늘 복음 말씀은 많은 군중에게 복음을 첫 선포하시며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므로 그 어느 말씀보다 소중한 말씀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오늘 이 말씀에 모두 담겨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려고 오신 것도 아니며,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아부하려고 오신 것도 아니며, 사랑과 자비를 모르는 교회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우리 모두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선포하고 계시므로 오늘 복음은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해석은 각자가 다를 수 있으므로 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신 말씀은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을 것이지만 결코 불의에 굴하지 말라는 뜻에서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곧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여라'를 여덟 번 말씀하였으므로 각기 다른 말씀으로 이해하여 진복팔단으로 이해하는 것은 말씀의 논리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묵상하였던 기억이 새롭고, 오늘 다시 묵상하여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와 오늘 묵상에 차이가 있다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열거하였다고 하기 보다는 하나의 사실을 도출하기 위해서 귀납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듯하며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A=B=C=D=E=F...' 이런 등식 구조로 되어 있음을 새롭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슬퍼하는 사람들이며, 슬퍼하는 사람들은 온유한 사람들이고, 온유한 사람들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며,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자비로운 사람들이고, 자비로운 사람들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고, 우리 모두가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되어야 비로소 우리 모두가 마음껏 평화를 누리는 하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인 측은지심(슬퍼하는 마음)이 하늘 나라를 만드는 출발점이고, 이런 측은지심은 사랑과 자비로 이어져서 이 땅을 하늘 나라로 만들 수 있고, 이 땅을 하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오늘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다 담겨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므로 오늘 말씀만으로도 복음을 선포하신 원대하신 뜻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측은지심에서 비롯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측은지심을 먼저 길러야 합니다. 측은지심은 측은한 모습을 봐야 일어나는 것이므로 성경을 제 아무리 공부하고 온갖 교리 지식으로 무장하고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제 아무리 기도를 한다고 하여도 측은지심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혹자들은 영성, 영성하지만 영성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영성은 바로 측은지심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측은지심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신자 된 의무감 때문이며 미사를 통하여, 성체를 모셔서 제 자신이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불우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시설에서 그분들의 모습들을 보며 측은지심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분들과 토요일 새벽미사에 매주 함께하기에 가톨릭 신자가 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가톨릭 신앙을 가진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이 우리의 사제에 의하여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제 눈으로 목격하였기 때문이며 이런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입교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그분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입교한 이유를 상실한 것이므로 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분들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그분들을 통하여 방황했던 삶을 끝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뿐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의로움과 측은지심으로 살아가며 불의한 자들을 배척하고 불의한 자들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는 배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신앙의 배타성에 대하여 백번 천번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기본 덕목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잘못된 구원관 때문에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배척당하고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오늘 알려주신 박해는 이런 잘못된 박해가 아님을, 박해도 다 똑같은 박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고,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기억할 것은 불의에 결코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순교정신을 배워야 함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 내일 독서는 '미사 전례성경'의 위령 미사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으며, 서울 대교구 홈피에는 오늘 복음과 동일한 복음이 선정되어 있으므로 내일 묵상은 산상설교의 전체 말씀을 묵상하려고 하므로 묵상 글은 게시하지 않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마음이 깨끗해야 하느님을 볼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오나 저희는 슬퍼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세상의 고통소리는 애써 귀를 닫고,
고통의 현장은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귀를 닫고 있으니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처럼 눈을 감고 있으니 하느님을 아직 뵙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측은지심과 의로운 마음을 나날이 키워나가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주님을 뵈올 수 있음을 성령으로 깨우쳐 주셨음에 감사드리오며
더불어 의로운 마음이 언제나 충만하여 자비를 실천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이러한 삶을 사시다가 이름 한 자 남기지 않으시고 주님께로 가신
모든 성인들의 순교정신을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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