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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라이와 하가르/아브라함/성조사[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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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1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6. 사라이와 하가르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 사라이에게는 이집트인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가르였다. 사라이가 이집트인 여종을 데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간 아브람‘(12,16 참조)에서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이 하가르라는 이름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집트 문헌을 참조해 보면 도망치는 여인‘(16,8 참조) 또는 둘째 왕비정도로 이해할 수가 있다.

 

사실 사라이는 오래 전 시아버지를 따라 칼데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11,30)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성경 저자는 여기에서도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라고 소개된다. 이는 아브람보다 사라이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임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테라의 큰 아들 아브람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큰 불행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내 놓는다.

 

아마도 당시에는 여종은 노예가 아니라 아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내에게 도움을 주는 도움이로 인식되었으리라. 종종 이런 여종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부모가 딸에게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24,59.61 참조). 그러나 하가르는 이집트인 여종이었기에, 아마도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이주해 온 후에 얻은 최근의 여인이었을 게다.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메소포타미아, 특히 아시리아 법에 따르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거기서 태어난 아기를 양자로 삼을 수 있었다. 이러한 법적인 조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으나, 한편으로 이는 여주인과 여종 사이의 심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21,9-21 참조).

 

어쩌면 이렇게 사라이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이 사라이의 태를 막으셨기 때문일 게다. 성조들과 그 가족이 겪는 기쁨과 고통은 사실 하느님 계획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었다. 따라서 사라이가 남편에게 자기 여종과 한자리에 들게 허락하는 것은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의 일환일 수도 있으리라. 과연 어떤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남편에게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라고 쉽게 권할 수 있겠는가?

 

아브람은 사라이의 말을 들었다. 그리하여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기의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를 데려다,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후였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셨지만, 세월은 참으로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이 기간 사라이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는 비록 침묵을 지켰지만, 사무엘을 얻기 위해 그 오랜 기간 참고 기다린 한나의 애절한 기도(1사무 1,10-11)에서도 잘 알 수가 있을 게다.

 

그가 하가르와 한자리에 들자 그 여자가 임신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제 여주인을 업신여겼다. 아마도 여종 하가르의 눈에 자기의 나이 많은 여주인 사라이가 쾌나 하찮게 보였을지도. 당시의 여러 문헌을 보면 여주인이 자기 여종에게 남편을 주어 아이를 갖게 했을 때, 여종이 임신했다고 해서 여주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아주 엄하게 다스리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여주인과 여종의 관계가 잘 묘사되고 있다. ’땅이 몸서리치고 견디어 내지 못하는 일 몇 가지 중 하나는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 여종 밑에서이다’(잠언 30,21-23 참조).

 

그래서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당신 책임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 안에 안겨 주었는데, 이 여종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업신여긴답니다. ,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셨으면!” 사라이는 자기가 여종에게 당하는 이 불의를 당신이 직접 안으라고 윽박지른다. 여종이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어디 계집종이 안주인 자리까지 무례하게 넘본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이라는 거다.

 

아브람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제발 당신 좋을 대로 하구려." 아브람은 아내의 요구를 속 시원히 들어주었다. 사라이는 즉시 하가르를 구박한다. 억압받던 사라이가 이제 억압하는 자가 되었다. 이 같은 분쟁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어서, 인간사에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관련된 당사자가 서로 멀어짐이 상책일 게다. 그리하여 사라이가 하가르를 몹시 구박하니, 하가르는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쳤다.

 

그러면 이 사라이와 하가르와의 관계에서 성조 아브람의 역할을 눈여겨보자. 하가르와 아브람의 관계에서 아브람에게 그 어떤 죄도 물을 수 없다. 그것은 아브람이 여종과 관계한 것은 자손을 낳고자 한 것이지, 어떤 개인의 정욕을 채우려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게 아닌, 아내의 청에 의당 해 준 것 뿐이다. 다만 하가르의 오만만은 있었다. 사라이 역시 자기 몸에서 낳지 못하는 아이를, 다른 여자에게서 얻으려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 이렇게 아브람과 사라이 양측 다 죄 되는 탐욕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의 순리에 따랐다고 여겨진다.

 

이 과정에 믿음의 성조 아브람은 어버이가 되려는 본능으로 하가르에게도 사라이에게도 대단한 신의를 지켰다. 자신의 괘락이 아닌, 아내의 간절함에 응했다. 하가르를 임신시켰지만, 결코 사랑하지는 않았다. 억압받는 사라이를 보호했지만, 대신 여종을 구박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아브람은 상대에게 가장 알맞게 대해 주었다. 아내에게는 절조로, 여종에게는 절도로 대했으며, 그러면서도 어느 여자도 절제 없이 대하지는 않았다.[계속]

 

[참조] : 이어서 '17. 하가르가 낳은 이스마엘'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하가르,여종,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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