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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복음 묵상 - 하느님의 공평한 심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0 조회수1,084 추천수1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23 주간 목요일 - 하느님의 공평한 심판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었습니다. 군것질 할 가게도 없었고 가끔 찾아오는 뻥튀기 리어카가 밥 아닌 다른 것을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오면 집에 있는 모든 쇠붙이나 병들을 모아다 가져다주었고 그 것 때문에 동네가 깨끗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그 아저씨가 서비스 차원에서 뻥튀기를 거저 준다고 아이들만 다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빈손으로 달려 나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각자 그릇을 준비해 나왔습니다. 한 친구는 세숫대야만한 양동이를 들고 나왔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각자가 들고 나온 것에 가득히 뻥튀기를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양 손을 벌려 최대한 많이 받아보려 했지만 결국 옷으로 받혀서 가장 적은 양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저씨가 불공평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들고 나온 그릇의 크기는 각자가 판단했던 뻥튀기 아저씨의 자상함이었습니다. 그러니 각자가 그 아저씨를 판단한 만큼 받아가게 된 것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양을 주는 것보다 각자의 기준대로 주는 것이 더 불평이 적고 더 공평한 것이었습니다.

배우자나 부모, 혹은 자녀에게 대하는 것이 직장사람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을 대하는 것과 똑같다면 그것이 불공평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똑같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도 사랑 자체이셨지만 성모님과 가리옷 유다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되질하는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심판의 잣대대로 심판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남을 모질게 심판했으면 모질게 심판받을 것이고 자비로웠다면 우리의 죄도 자비롭게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무자비한 자는 무자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 2,13)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각자를 다르게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 심판은 각자가 지니고 있는 잣대에 따라 한 것이니 하느님은 불공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심판을 피하는 길은 내가 지닌 심판의 잣대를 부러뜨려 못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나를 심판할 잣대가 없기 때문에 나를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심판의 잣대는 나의 교만과 비례합니다. 내가 교만해지면 그만큼 하느님과 같이 높아져 심판자가 되고 상대를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교만해져서 아담은 하와를, 하와는 유혹자를 심판한 것과 같습니다. 결국 나의 심판의 잣대를 아주 작게 만들거나 부러뜨리기 위해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이전의 겸손한 상태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죄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저절로 커진 자신의 잣대로 자동적으로 이웃을 심판하게 되어있습니다.

 

공기 안에는 좋은 냄새도 안 좋은 냄새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이에나는 썩은 냄새만 맡고 그 냄새를 쫓습니다. 상어는 바다에 피가 한 방울만 떨어져도 수 킬로 밖에서 그 냄새를 맡는다고 합니다. 꿀벌은 꽃을 보지만 똥파리는 똥만 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존재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나쁜 것만 찾아내서 그것을 보고 판단하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의 본성이 이미 하이에나나 상어, 똥파리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실 때 양과 염소를 나눌 것이지만 심판 때문에 양과 염소가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 25장 참조) 이미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변해 있는 것입니다. 한 번 더 남을 심판할수록 자신은 염소가 되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남을 미워하지는 맙시다. 남을 용서 못하고 미워한다면 나의 죄 또한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남을 단죄하는 사람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사람은 상대를 심판함으로 심판받는 역사를 이루어왔습니다. 카인은 아벨을 심판함으로 심판받았고, 사울은 다윗을 심판하여 심판받았으며, 유다와 그의 나라 백성은 그리스도를 심판함으로 심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심판하시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하느님 앞에서는 내가 심판하고 있는 사람과 별반 다름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 보아주며 모든 심판은 주님께 돌리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과연 내가 지니고 있는 심판의 잣대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요?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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