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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와 성모 마리아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8 조회수471 추천수1 반대(0) 신고

 

 

교회와 성모 마리아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어떻게 믿고 있는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가브리엘 천사는 인사하였다(루가1,28).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하고

 엘리사벳이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루가1,41)

여기서 말하고 잇는 사람은 약 19세기 전에 갈릴래아에 살았던 젊은 여인,

 즉 나자렛의 마리아였습니다.

 

왜 가톨릭교는 오늘날도 계속 마리아를 공경합니까?

무엇보다도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녀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구원계획 안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영광을

그녀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몸 안에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완전하고 충실한 응답을 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을 상상해보십시오,

처음에 천사의 말이 그녀에게 들렸을 때 그녀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며 "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루가1,34)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는 당신의 잉태는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루가1,38).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그녀의 찬미의 기도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루가1,46-5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영광을 깨달은 마리아는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1,48)하고

이어서 즉시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찬미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루가1,39).

 

그러나 마리아는 아들의 잉태에 찬미했을 뿐만 아니라

고난과 수난에 대해서도 찬미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말구유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헤로데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에집트로 피신하였습니다

(루가 2,6-7;마태오1,13-14참조).

마리아가 예수를 성전에 바칠 때 시몬은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하고

 예언하였습니다(루가 2,35).

 분명히 이것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잇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가 열두살이었을 때 성전에서 잃어버려

보통 어머니들이 겪는 걱정도 해보았습니다(루가2,41-50참조).

그러나 성서에서는 결코 이런 시련에 대해 그녀가

불평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루가2,19,51).

 

 마리아와 아들

마리아는 그녀 아들의 모범적인 제자였습니다.

그녀는 비록 예수의 공적 생활에 대한 기사에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녀는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을 따른 것은 분명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녀의 순수하고

 확고한 믿음으로 인해서 예수의 첫 기적을 가져오게 했습니다(요한2,1-12참조).

 

우리는 그녀가 십자가 밑에서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증인으로 남게 됨을 보게 됩니다.

화가들은 예수의 시체를 마리아가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에 마리아는 예수의 생애의 모든 일들-

그의 잉태, 탄생, 어린 시절, 청년 시절, 가나에서의 첫 기적,

공생활에서의 유혹과 승리, 그리고 지금 이 수난과 죽음의 고통-을

상기했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것은

예수의 승천 이후에 예루살렘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도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써다"(사도행전 1,14).

며칠 후 오순절에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예수 잉태시에 마리아께 내려 주신 그 같은 성령께서

그녀의 생애에 다시 한 번 내렸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그의 어머니로부터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은 예수의 참된 친척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마태오12,46-50;마르코3,31-35;루가8,19-21참조).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마리아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분명히 그녀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에 따라

충실히 행하는 자들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자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보통 어머니와 아들의 인간적인 관계를 초월한 것입니다.

그녀는 아들 예수의 참된 제자였습니다.

 

 우리 어머니

가톨릭의 마리아 신심에 대한 이해로서 가장 중요한 성서 구절 중 하나는

 요한 복음의 예수 죽음의 장면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요한19,26-27).

 

가톨릭 신자들은 요한 복음의 절정에 나오는 이 장면의 구절은

 아주 풍부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신께서 사랑한 제자"에 의해 상징화되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 모두를 마리아에게 당신 안에서

그녀의 아들과 딸들로 맡기셨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의 마음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어머니

역할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마리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마리아를

 새로운 하와로 보고 있습니다.

"인류의 어머니"(창세기3,20)였던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그녀의 모든 자녀들을 죄의 굴레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순명, 즉 가브리엘 천사의 메시지에 대한

마리아의 순명의 응답은 예수의 구속사업에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2세기 말, 성 이레네오의 말에 의하면

 "하와의 불순명의 오점을 마리아의 순명으로 깨끗이 씻어주었다"고 합니다.

 처음 하와는 불신앙으로 굴레에 묶였었지만,

동정녀 마리아는 신앙을 통해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우리들의 신앙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한 어머니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의 돌보심과 사랑을 체험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마리아를 숭배하거나 마리아께 기도하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중개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불러 일으키는데 큰 효과가 있음을 믿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공적 때문이 아니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님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고 강조하였습니다(1디모테오1,15-16).

 마리아의 중개는 "사람들에게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의 이 유일 중재성을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인간 구원에 유익한 복되신 동정녀의 온갖 영향은 어떤 필연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호의에 기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로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중재 역할에 근거를 두고 거기 속하며

거기서 전적으로 힘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믿는 이들과 그리스도와의 직접 결합을 절대로 방해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다"(교의헌장 60항).

 

간단히 요약하며, 예수와 마리아는 경쟁적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녀의 기도와 우리의 관심을 예수님께로 지향케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를 통해서 당신의 은총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그들 자신이 그들의 기도와 모범으로

하느님의 은총의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수 있는지 체험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예수님과 가톨릭 교회가 일치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아들의 은총의 특별한 길로

 이용하기 위해 선택하셨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모든 아들과 딸들을 돌보아 줄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똑같은 위치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이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행복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되신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유일한 중재자 그리스도의 지위와

효능을 조금도 감하지도 가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한다"(교의헌장 62항).

 

공의회는 이것을 유비(類比)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한 대사제이다(히브리8,1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사제직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는 중재자이지만 그리스도인들과 마리아는 기도를 통해

그분의 중재를 같이 동참하고 서로를 사랑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믿음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를 신앙의 여인

또는 모범적인 제자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 관해서

 다른 믿음을 가르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즉 그녀는 죄없이 잉태되었다거나 또는 죽는 순간에

하늘 나라에 올라 갔다고 하는 등등입니다.

 

이런 가르침들이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들은 성서에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분명이 역사적으로 예수의

직제자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비교적 이런 믿음들은 수세기의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서가 예수와

그의어머니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예수를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런 믿음이 마리아에 관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가 참된 하느님이었다면

그분의 어머니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말한다는 것이 온당하지 않습니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와 같은 천사들의 인사처럼
성서의 여러 구절들은 이런 명상면에서 보다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의 권위자들(교황과 공의회 주교들)은

 어느 믿음이 마리아에 관한 교회의 참된 믿음인지를 분별해야만 했습니다.

 분별의 두 원칙이 판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성서 또는 사도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참된 전승에 어떤 것도 위배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모든 마리아 역할에 대한 이해들은

그들이 수용될 수 있기 이전에 계시된

 진리의 경전과는 달리 시험을 거쳐야만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반영에서 전개되는 어떤 통찰도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하느님의 백성들로부터 수용된 것임을 밝혀야만 합니다.

 여러 신학자들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확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교회를 대체로 오류에서

보호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한16,13).

가르침이 지속적으로 위대한 목자들,

그리스도교의 역사가들과 또한 교회의 백성은 물론

그들 모두에 의해 수용되어 왔다는 사실은 성령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이런 통찰을 주고 있다는 하나의 표징입니다.

 

마리아에 관한 네 가지 가르침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시대의 과정에 따라서 이런 시험을 거쳐왔던 것이

이제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된 것입니다.

 

 영원한 동정녀로서의 마리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예수의 탄생 전에도

탄생시에도 처녀였다는 것을 믿습니다(마태오1,18-25;루가1,26-27).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마리아가 나머지 여생도 처녀로 지냈다는

가톨릭의 믿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복음은 어떻습니까?

(마태오12,46;마르코3,31.6,3;루가8,19) 또한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와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말은 어떻습니까? (마태오1,25)

이런 말들은 예수의 탄생 후에 마리아와 요셉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하여

 다른 자식들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교회의 위대한 교리 교사들 대부분은

 적어도 4세기 이후도 계속

 "마리아는 그녀의 여생을 동정녀로 남아 있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주장한 사람들은 모든 시대에

빛이 되어 온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아타나시우스, 에피파니우스, 예로니모,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스와 기타 등등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공의회들 중 하나인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A.D.353-354)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라고 두 번씩이나 언급했습니다.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 존 칼빈,

그리고 홀드리 쯔빙글리도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믿었습니다.

 

이런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형제들"에 관해서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랍말로 "형제들과 자매들"은

가까운 친척들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사촌, 조카, 질녀 등 등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학자들도 역시 "까지"(until)라는 말이 희랍 및 셈족 용어로

 그 시점 이후에 일어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뜻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가 탄생되었던 때는

 참으로 동정녀였다고 강조합니다.

 

최근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부 학자들은

'신약에서의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된 책을 공동 출간하였습니다.

그것은 성서에서 나타난 것을 적절하게 연구한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신약성서는 이 교리에 충분히 찬성할

또는 부정할 증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가톨릭 신자들은 성령이 교회를 대체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에 따라 성서를 이해해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으로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 이런 믿음이 중요한가?

그것은 틀림없이 마리아의 소명과 사명의 독특함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어떤 사람도 인간을 참조하신 하느님을 잉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녀의 처녀성은 성과 결혼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며

그녀 자신 안에 잉태하고 있는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녀의 소명의 독특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유로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이런 동정성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리아가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는

하느님의 초대를 기꺼이 수락한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희랍어 테오토코스(Theotokos)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 또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데

그 것이 첫 번째로 마리아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이 명칭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인간은 물론 참된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그런 명칭에 도전하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부르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즉, 그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혼란케 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동방 교회는 네스토리우스의 관점을 부정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예수가 하느님임을 또는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의 발표에 의하면

"만일 어느 누구도 하느님이 참된 임마누엘이라고 고백하지 않고

 또 이런 이유로 거룩한 동정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육에 따라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여

낳음으로 육이 되게 하였다) 그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는 육적으로도 하느님의 어머니이지만

 예수의 신성(神性)의 근원이 아님을 조심스럽게 언급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태초부터 하느님을 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로 여겨야만 했습니다.

 

성모의 티 없으신 잉태(무염 시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누구이며,

그리고 그것이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에 관해

보다 깊이 생각해 보았을 때 하느님께서 특별히 마리아를

당신의 계획 안에 끌어들여 구원 준비를 시키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죄와 반대되시는 완전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죄악에 타락된 인간 조건으로 얼룩진 자에게서 탄생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또한 마리아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의 완고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자유롭게 의심없이 하느님의 계획에 순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믿음이 점점 커져서 "하느님이 마리아를 원죄, 즉 '첫 조상으로부터

 모든 인류에게 지워 준 죄의 유산'으로부터 보호하셨다"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마리아의 "무염시태"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예수처럼 마리아도

처녀의 몸에서 출생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즉 그녀는 평범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졌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임신되어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녀가 잉태되는 때부터

원죄로부터 하느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마리아에게 역사(役事)하시어

그녀가 순결을 지키게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낳도록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리아의 무염시태는

 마리아에 관한 것보다는 예수에 관한 것을 더욱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 뜻은 예수가 너무 거룩하시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를 원죄로부터 보호하심으로써

 미리부터 마리아를 준비시키셨다는 뜻입니다.

 

마리아의 원죄가 없다는 믿음은 교회 역사로 볼 때 매우 일찍 나타났습니다.

4세기에 성 암브로시오는 마리아를 "아무 티도 없는 분"으로 언급했습니다.

 한편 성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마리아는 다음과 같은

성서 구절에 예외적인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만일 우리가 죄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요한1서1,8).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많이 마리아에게 내려 원죄를 회복하게 하고,

 죄 없는 상태에서 하느님을 잉태케 하고 낳게 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믿음에 대해 논쟁을 띠고 있는 가톨릭 신학자들 중에

 성 베르나르드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믿음에 계속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로마서3,23참조).

 

그러나 가톨릭 신학자들과 사목자들은

그와 같은 반론들을 깊이 연구하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무염시태는 성서와 일치하고 있다" 성서에는

모든 인간은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원죄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구원자의 중재없이 우리 스스로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습니다.

 예수는 본성적으로 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무염시태'교리는 이런 진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도 역시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도 아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구원되어야만 했습니다.

마리아는 본성적으로 예수처럼 죄가 없지만

주님의 특별한 중재를 통해서 구원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신 주님은 예수의 구원의 은총을 먼저 마리아께 주시어

당신의 계획 안에 그녀의 특별한 임무를 준비케 하시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루가1,49).

 

'무염시태'에 관한 신앙에 신학적 반대논란이 있었을 때,

이미 그 신앙은 로마가톨리 교회에서는 보편화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공식적인

교리로 발표하였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수태시에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권능에 의해서

인류의 구세주로 예견된 예수 그리스도의 중대한 관점에서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를 받았습니다.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의 원죄 없음이

그렇게 공로를 낳게 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공로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성모 승천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지상 생애를 완성한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에로 승천하였음을 발표하였습니다.

 무염시태의 신앙과 같이 마리아가 승천하셨다는

초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있었던 신앙은 수세기에 걸쳐서

훌륭한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교리는 13세기까지 보편적으로 수용되어 왔었습니다.

 비오 12세의 발표가 있기 수백년 전부터 교황들은 113명의 추기경,

2,500명의 주교, 32,000명의 사제와 수사들, 50,000명의 수녀들,

그리고 8백만 명의 평신도들, 이들 모두는 마리아의 승천을

가톨릭 교회의 교리로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성모승천의 믿음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마리아의 몸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에로 올림은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모승천은 우리는 언젠가 마리아가 체험했던 육신의

부활을 체험하리라는 희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모승천의 신앙은 논리적으로 무염시태의 신앙에서 유래합니다.

죽음은 아담의 죄의 결과이며 심판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하느님의 자유스런 은사에 의해서

죄로부터 보호되었다면 당연히 마리아의 죽음은

우리들의 죽음과 다른 체험을 하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녀의 하늘에 불려 올리심은 만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표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하느님께서 종말에 믿음이 충실한 사람들에게 줄

모든 복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상징입니다.

 

 마리아와 우리들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특별한 은총과

권위를 주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다면 마리아가 보통 사람들과는

특별히 다르고 여신의 정도에까지 상경지례를 드리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성공회, 그리이스 정교회가 바로

 이런 면에서 마리아를 보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완전히 이 세상에 오심으로

새 언약의 궤가 되도록 하느님에 의해 그녀만이 선택을

받았다는 면에서 특별합니다.

 오로지 마리아만이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성령에 의해 아들을 잉태하고 아직까지도 동정녀로 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우리 어느 누구보다 더 평범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평범한 것에 가깝도록 지향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지만 인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이런 일들로부터 보호하시어

평범한 인간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마리아는 죄의 결과로서 닥친 시련과 고통을

모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시 평범하였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특별한 은총 때문에

보다 고통스럽게 죄의 공포를 체험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면에서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을 졌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독특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교육문고[39] '교회와 성모 마리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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