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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년만의 고해성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4 조회수738 추천수3 반대(0) 신고

 

 

 

 

 18년만의 고해성사
 
그날 미사를 갔는데 한 이십 분 일찍 도착한 데다가
그냥 고해성사를 할까, 하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순순히 들었다.
가보니 고해성사 줄도 길지 않았다.
나는 그 줄에 서서,
문구를 생각해 두었다.
고백한지 18년 만입니다.
 
무슨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선언문이라도 발표할 것처럼 연습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제발 우리 성당의 나이 드신 신부님하고
젊은 신부님중에 나이 드신 신부님이
고해실에 앉아 계시길 바랬다.
 
왜냐하면 젊은 신부님은 너무 젊으셔셔
한마디로 알기는 뭘 알까?
이런 오만한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거 이미 너무 맨숭맨숭해져서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꼭 번지점프를 하러 가는 기분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젊은 신부님이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지.
그래도 신부님인데, 싶어 무릎을
끓고 앉아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고백한 지 18년 만입니다,
하는데 맙소사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것도 뜨겁고
힘차게 펑펑 나오는 것이다.
 
그 고해실에 무슨 이상한 요술스프레이를 뿌려 놓은 것처럼
나는 어느덧
작년 겨울 18년 만에 혼자 성당에 찾아가 하느님 앞에 엎드려,
하느님 저 왔어요,
항복해요,
내 인생에 대해 항복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닌가 봐요,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 항복합니다.
 
엉엉 울던 그때의 심정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까 저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와 앉기까지 1분,
길어야 2~3분뿐이었다.
내가 설사 아무리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친들,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울면서도 들었다.
너무 울어서 고해가 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고해실에 들어와 보니 크리넥스 통이 있는 것 아닌가.
아니 그럼 18년 만에 회개하는 나 말고도 사람들이
고해실에 들어와 진짜 우는 모양이지.
 
18년 전에도 크리넥스 통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
내가 하도 우니까 신부님이 보기 딱하신지
“우선 거기 휴지로 눈물을 좀 닦으십시오.” 하셨다.
눈물을 닦고 코를 팽팽 풀면서
또 한편으로는
회개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입으로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젊은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참 어려운 길 오셨습니다.
18년 만이라고 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여기까지 오는 발걸음으로 이미 당신은
죄 사함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18년 동안 걸어온 길이 멀고
고단한 길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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