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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속빈 강정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4 조회수1,163 추천수1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22주간 금요일 - 속빈 강정

 

 

 

한 신부님이 자신의 신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반에 ‘상투스’가 있었답니다. ‘상투스’는 거룩하다는 뜻이고 성인처럼 사는 사람을 신학생들은 “쟤는 상투스야!”라고 말합니다. 이 말 안에는 약간 비꼬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 신부님과 같은 반이었던 상투스는 늦게 신학교에 들어와 나이가 같은 반 신학생들보다 좀 많았다고 하는데 그 거룩한 것이 정도를 지나쳤다고 합니다.

그 상투스 형은 자신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열심히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주위 사람들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기도에 늦거나 빠지거나 하면 교수 신부님들보다 그 형에게 먼저 한 소리 들어야 했고 심지어는 옆에서 졸면 가지고 다니는 바늘로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배가 아픈지 그 신학생이 혼자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것도 희한한 일인데 미사와 기도가 끝날 때까지 그 형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상투스에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침 미사가 끝나고 같은 반 학생들이 화장실로 갔더니 그 선배는 씩씩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빨고 있더랍니다. 그것은 신학생들이 입는 흰 와이셔츠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가 너무 아파서 대변을 보고 휴지로 엉덩이를 닦았는데 이상하게 변이 휴지에 묻어나오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닦아도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엉덩이 밑까지 내려와 있던 흰 와이셔츠 위를 닦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결국 와이셔츠로 밑을 닦아버린 것입니다.

결국 상투스는 남들 보기엔 거룩해 보일 수 있지만 자기의 밑도 제대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거룩한 행위를 하면 그 사람이 거룩한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스스로 거룩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신과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사실 이들은 지켜야 할 모든 규정들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신랑이고, 제자들은 그 혼인잔치에 온 친구들인데 신랑이 있는 혼인잔치에서 어떻게 단식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며,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는데 그 때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규율들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하고 새 옷은 새 천으로 꿰매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떤 거룩한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거룩하게 해 준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이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덜 거룩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어떤 때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사랑이 될 때도 있습니다. 주위에 아픈 사람을 위해 주일미사를 빠져야 했다면 그 사람을 모른 채 하고 미사에 나온 사람보다 더 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는 주일미사에 빠진 사람이 보고 사랑을 저버리고 미사를 온 사람은 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행위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제가 로마에 유학 나와서 있을 때 이런 분을 또 보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지도 신부님이셨는데 본인 스스로 매우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살고 또 우리에게는 규칙대로만 살지 않으면 매우 화를 내시는 분이셨습니다.

밤에 순찰을 돌고 신학생들의 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엿듣거나 들어와 보기까지 하는 모든 신학생들의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제가 영성체를 하는데 그 때 그 신부님이 성혈을 찍어서 영해 주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성혈을 찍으면서 몇 방울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 성혈을 신발 신은 발로 쓱쓱 문질러서 닦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은 남들이 자신을 거룩하게 생각한다고 믿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항상 경직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건 사제들도 마찬가지고 수녀님들도 마찬가지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벗어버리려 해도 남들에게 ‘사제처럼’ 보여야 한다는 마음에 자신을 포장하게 만들고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는 경직되어버립니다. 스스로 거룩해지고 위해 거룩한 행위를 하지만 사실은 속빈 강정에 불과합니다.

‘속빈 강정’이란 겉은 번들번들하고 달고 맛있어 보이지만 딱딱한 겉에 비해선 속은 텅텅 비어있는 경우를 들어 하는 말입니다. 겉만 포장하며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텅 빈 속을 감추기 위해 그 겉도 얼마나 단단히 굳어져 있습니까?

이렇게 살다보면 형식주의의 대표적인 예인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해서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처럼 되고 맙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새 옷은 새 천으로 꿰매야 합니다. 각자 때와 장소에 맞는 행위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 자체가 거룩함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다른 사람의 행위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비판하기 보다는 먼저 내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데 더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위를 비판하는 나 자신도 속빈 강정일 수 있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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