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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가 그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3 조회수1,253 추천수1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22주간 목요일 - 누가 그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대학 친구들은 안 만나고 가려고 했으나 며칠 전에 한 친구에게 한 번 모이자고 메일이 왔습니다.

모일 수 있는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였습니다. 그것부터 놀랄 일이었습니다. 다들 바빠서 다 모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이 제가 한국에 와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재미있습니다. 모이자고 주관한 친구가 저의 안부가 궁금해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제가 한국에 있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메일을 보내지 않던 친구가 저에게 메일을 보내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있다고 말한 친구는 제가 아예 유학을 떠나지 않고 오래전부터 한국에 있었는지 알고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잠깐 들어와 있는 것이었는데, 어쨌건 잘못된 정보 때문에 다 같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저의 친구들은 종교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 두 명의 친구는 이 번 기회로 성당에 나오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 모임을 주선한 친구는 천주교를 믿어보려 했지만 여러 가지로 맞지 않는 것이 많아 수녀님과 싸우고 교리를 조금 받다가 말았던 친구입니다. 제가 한 때 “모든 것엔 다 때가 있어.”라고 말해 주었는데 그 친구는 지금까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연봉이 1억이 넘고 부족한 것이 없는 친구이지만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지 못해 거의 우울증까지 갔었고 자살까지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저를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고 누군가가 섭리해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바로 지금이 종교를 가져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아내를 불러서 함께 성당에 다녀보자고 하였습니다.

종교는 마음이 약한 이들이 의지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무엇이라고만 믿었던 그 친구가 하느님의 섭리를 믿을 수 있기까지 겸손해진 이유는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고, 또 그런 일이 반복됨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누군가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드디어 하느님을 받아들일 만큼 겸손해 진 것이고, 바로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가 바로 하느님이라 부르는 신의 섭리라고 느낀 것은 그 친구 하나 뿐이었습니다. 제가 유학 나간 지 모르고 한국에 있다고 무심코 대답한 친구는 결국 자신 때문에 다 모이게 된 것이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섭리하심이 들어 올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건 안에서도 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껴 신앙을 갖기를 선택했고, 한 사람은 그저 일상적인 일로 묻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왜 같은 사건 안에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은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은 준비되어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사람이 당신의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겸손하여 졌을 때 부르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다 때가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도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목수의 아들이 오더니 깊은 곳으로 나가 그물을 한 번 내려 보라고 하자 그 말에 순순히 따릅니다. 자기의 전문분야에서까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순종할 수 있으리만큼 겸손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고기가 잡히자 베드로는 겁이 나서 자신은 죄인이니 자신을 떠나달라고 청합니다. 겸손해진 사람이기 때문에 고기가 잡힌 것이 바로 예수님 때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이면, ‘운 좋게 많은 고기가 걸렸네?’라고 생각해 버릴 것입니다. 겸손해지면 사람은 단 한 순간도 하느님의 섭리 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제가 유학을 다시 나와 공부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한국 생각만 하고 있을 때 함께 나온 한 사람의 미니홈피에 적힌 글을 읽었습니다.

“나로선 아무리 하기가 싫고 정말 아니다 싶더라도 진정 교회를 생각하고 나를 아끼는 이들이 그 길로 가라고 하면 그건 틀림없이 하느님의 뜻이다.”

이 신부님도 원치 않는 것이었지만 주교님이 원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잘 깨닫고 있는 것을 보고 제 자신을 반성하였습니다. 저는 가기 싫다고 하여 주교님께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한 달간 묵상해 보라고 하신 것과는 사뭇 다른 자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만 교만한 사람은 특별한 일도 그저 일상의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신학교에 들어왔지만 참으로 그 부르심을 인정한 때는 비로소 겸손해 졌을 때였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도 교만하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모든 거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왔는데...’

그러나 이틀을 굶고 밥을 조금만 먹지 않아도 죽을 것만 같은 약한 존재임을 깨닫고는, ‘주님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행복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습니다.

어제도 신앙을 갖기로 한 친구가 계속 저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행복하려면 겸손해져서 합당하지 않은 죄인인 나를 불러주신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주님은 모든 만남과 사건 안에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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