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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16일 야곱의 우물- 요한 6,51-58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6 조회수385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에 싸여 불평한 것처럼(6, 41.52), 이제 ‘제자들’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불평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빵’이야기에서 ‘군중’이었던 이들이 그다음에는 ‘유다인들’로 그리고 이제 ‘제자들’로 점점 몰이해와 불평의 주체가 구체적으로 제한되고 강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에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60절ㄴ) 그들의 불평은 예수님께 대한 ‘비토(거부)’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영원한 ‘생명의 빵’이라고 하신 말씀과 당신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6, 26 ‐ 58참조)을 제자들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투덜거림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물으시는 말씀에서, 그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61절ㄴ) 이 구절을 직역하면 ‘이것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입니다. 곧 그들에게 ‘스캔들’(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62절) 그리스어 원문에서 불완전한 문장으로 끝나는 이 말은, 너희가 그런 일을 본다면 지금 마음속에 가진 의문이나 당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하신 말씀에 그러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씀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고동락하며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조차 예수님께서 아버지한테서 오신 분인 것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살’이 되신 ‘말씀’은 부활하신 뒤에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하고 전하여라.”(요한 20, 17)

제자들의 믿지 못함 앞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63절)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 또는 예수님에게서 오는) ‘영’으로 다시 나기를 원하지 않고 ‘육’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육(살)’은 물질로서 제한된 가능성에 갇혀 있는 인간을 뜻합니다. 빛이 아닌 ‘육’으로서의 인간은 혼자 힘으로는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도 못합니다.(요한 6, 36) 그러나 빛으로 표현되는 ‘영’은 사람을 살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서, 인간에게 빛을 비추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알게 하고 받아들이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움,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64절ㄱ) 그들은 자기들의 ‘육’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 깨닫지 못한 채 그분 곁을 떠납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대열에서 낙오되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많은 제자가 길을 바꾸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67절) 이 물음은 그들에게 선택을 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이적들을 베풀어 일상적인 지상생활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왕’을 찾아 떠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내주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을 계속 따를 것인지 두 갈래 길에서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에 베드로가 열두 제자를 대표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68 ‐ 69절) 베드로는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고 간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말합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민족들에게 하신 것을 다 보았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여호 23, 3; 24, 14‐15) 그러자 백성이 그에게 대답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24, 16) 자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하느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다짐했던 그들이었듯이, 이제 베드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비록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불가분의 결속 관계를 표현합니다(요한 3, 2; 5, 19; 10, 30).
 
예수님은 하느님에 의해 거룩하게 되어 지상으로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하였다.”(10, 36)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아니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신 말고는 어느 누구의 뒤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신 말씀과 당신 일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진리를 두고 다른 곳에서 방황하지 않고 당신을 따르는 온전한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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