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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남자와 여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5 조회수940 추천수10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모 승천 대축일 - 남자와 여자

 

 

 

얼마 전에 어떤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오래 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실 때 아내는 부모를 모시랴 자녀를 돌보랴 밭에서 일을 하랴 많은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워 남편은 세탁기나 전기밥솥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아내는 그런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거부하였습니다. 남편이 보기에 하도 안 돼서 몰래 세탁기를 사 놓고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탁기를 사 놨다고 한 번 들어가서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왜 시키지 않은 일을 했느냐며 화를 내고 세탁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밭으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일주일 동안이나 그 세탁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살짝 세탁기를 보았고 버튼 하나로 세탁이 되고 탈수까지 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편한 것을, 왜 진작 사용하지 않았을까?’하며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시집살이가 힘들어서 남편까지도 원망스러웠고 그래서 남편이 주는 것까지도 받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남편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여자는 남자에게 감사할 일도 없고 사랑에 보답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여자는 남자가 주는 것을 받고 그렇게 다 주는 사람에게 자신을 주면서 서로 한 몸이 되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받는 것은 주는 것 만큼 어렵습니다. 받는 만큼만 줄 수 있고 그 만큼만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묶어 주신 한 몸이고 그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한 몸이 되는 관계는 항상 주고받는 움직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먼저 남자가 주고 여자가 받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남자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일치의 신비를 이루어갑니다.

이 관계의 모델이 삼위일체입니다. 아버지는 남자로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십니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립니다. 다시 성령님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혼인의 일치는 그래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하는 신비입니다.

성자는 이번엔 남자가 되셔서 삼위일체 신비를 받아야만 사는 여성성을 지닌 인간과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생명과 함께 영원성이 있는 거룩한 신성을 인간에게 내어주십니다. 이것이 곧 성체입니다. 인간은 그 성체를 모셔 그 분과 한 몸을 이루고 또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봉헌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이고 하느님나라입니다.

 

그러나 혼인의 신비도 구체적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델에서 출발하였듯이, 하느님과 인간과의 일치도 구체적인 모델을 준비하셨습니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 모델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한 몸이 되는 혼인관계”로 삼으셨습니다. 이 두 분의 한 몸이 되는 혼인의 신비가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 신비의 모델이고 우리 개인이 그리스도와 맺어가야 할 혼인의 모델입니다.

성부께서 사랑을 위하여 성자를 영원으로부터 나게 하셨듯이 성자에게서 역시 마리아가 나오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왔듯이 성자에게서 마리아가 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원죄를 입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로부터 순결한 육체를 물려받으십니다. 왜냐하면 인류 구원을 위해서는 죄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제물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성자에게서 나와서 그 분과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성모님으로부터 육신을 취하셔서 성모님과 한 몸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성체의 출발은 결국 성모님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모님의 인사를 듣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서 부르짖는 소리는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 진리의 성령님께서 직접 일러주시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즉,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성모님을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성모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취하시지 않으셨다면 과연 ‘주님의 어머니’라 불리실 자격이 있으실까요?

엄마라 불리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할 가장 큰 조건은 태중에서 키워주고 낳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에게 자신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성자로부터 받은 당신 자신을 다시 성자께로 돌려드려 성자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자신을 주면서 한 몸을 이루어 성모님이 교회의 구체적인 모델이 되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뜻은 그분에게 당신의 염색체와 육체를 나누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죄가 있으셨다면 예수님도 그 죄를 물려받고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흠도 티도 없는 육체를 물려받으셨고 그 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몸으로 하느님나라에서 살기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몸을 가지고 아버지께 올라가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온전한 인간은 하느님 삼위일체의 모상을 닮아 “영, 영혼, 육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육체가 없는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고 육체까지 구원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 주신 몸을 가지고 아드님이 하느님나라에 올라가셨다면 그 어머니께서 당신의 깨끗한 몸을 지니시고 하늘나라에서 살지 못하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모님의 아드님이 승천하셨다는 말은 곧 그에게 당신 자신을 나누어주신 분도 승천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모님의 아드님이라 불리신 예수님의 승천이 곧 성모님께서 승천하셔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역시 인간은 하느님의 삼위일체를 닮아 영과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는데 우리의 행복이 영혼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나라에서의 행복도 영과 영혼과 육체가 모두 행복을 느껴야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육체로 고통을 받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육체도 천국의 행복을 나누어 받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모님께서도 당신의 육체로 구원사업에 동참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육체도 천상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도 지금의 죄 있는 육체가 썩어 없어질지라도 마지막 날에는 모든 육체들이 부활하여 자신의 육체를 지니고 그 육체와 함께 영원한 행복을 완벽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성모님의 육체는 죄로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땅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어디에 갔다 놓으셨습니까? 바로 에덴동산에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비록 에덴동산의 흙으로 만들지는 않으셨지만 죄로 물들지 않은 깨끗한 몸이었기 때문에 하느님나라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육체에 죄가 들어옴으로써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하느님나라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쫓겨났고 그의 후손들도 그들로부터 육체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죄로 물들어 태어나게 된 것이고 그것이 원죄입니다. 그리고 죄로 물들어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은 아담(아담은 흙이란 뜻도 있지만 사람이란 뜻도 있습니다)이 죄를 지은 이후에 벌을 주시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의 결과이고 하느님의 벌입니다. 죄가 인간을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5절에서 바오로는 시편 16편 10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께서 땅속에서 썩지 않고 부활하셔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가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입니다.

새 번역에서는 ‘죽음의 나라’로 나와 있지만 원 희랍어로는 그렇게 번역되어서는 안 되고 ‘당신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가 썩는 것을 보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번역해야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썩게 만들고 거룩함은 썩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원죄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불마차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의 마차에 탐으로써 그의 원죄까지도 모두 씻어진 것입니다. 하물며 원죄도 없어 성령님으로 처음부터 가득 차셔서 가브리엘 천사가 “은총(성령님)이 가득 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하셨던 성모님께서야 하늘에 오르지 못하실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뜻은 이미 하느님나라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사시는데 이미 성모님과 함께 사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계신 곳이 곧 하느님나라입니다. 예수님이 태중에 있는 동안에는 하느님나라에 있는 것이었고 성모님과 있을 때는 아버지와 성령님과 함께 하느님나라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께 다가가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다가가는 것이며, 성모님께 다가가는 것이 곧 삼위일체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며, 성모님께 다가가는 것이 곧 하느님나라에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남자인 아담은 제 부모를 떠나 인류와 혼인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마리아와만 온전히 한 몸이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 분만이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순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없으셨다면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는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누구도 하느님 자신을 받아들일 만큼 순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하느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성모님의 일치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당신의 온전한 육체까지도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당연히 성모님은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모델로 삼고 닮아야 할 우리의 참 어머니이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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