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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어있어라.그날과 그시간이 언제올지모른다[김웅열 토마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7 조회수1,147 추천수7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찬미예수님

깨어 있어라. 그날과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모른다.

계시는 공적인 계시와 사적계시로 나뉘어집니다.

공적계시는 요한묵시록으로써 끝이 납니다.


사이비 종교에서는 몇 년도에 세상종말이 온다.... 휴거가 온다...하면서

요한묵시록을 제멋대로 해석하지만 사실 요한 묵시록의 내용은 너무 어려워 우리들이 알 수 없습니다.


묵시록 이후에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내려오는 사적계시 가운데서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이 누구의 계시일 것 같습니까?

바로 성모님의 계시이지요.


성모님은 하느님 옆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고 하느님의 생각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시기 위해서 이천 년 동안

당신이 선택하신 여러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성모님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제들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면서 경계와 위로와 동시에 힘을 주고 계십니다.


성모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셨던 예언자들, 예를 들면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성인을 통해서

뭐라고 예언을 하셨습니까?

[장차 성모의 군대( 레지오 마리애)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막시밀리안 꼴베 신부님을 통해서 기사사도회가 만들어져서 악과 싸우고 있습니다.

또 수많은 성모님의 이름으로 액션 단체가 만들어져있습니다.

사제들 중에는 다락방 기도회를 통해서 늘 성모님의 보호하심에

이 세상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또 사제들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 뜻을 메시지로 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마귀라고 하는 놈이 그 틈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알다시피 영의 존재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분별이 없으면 성모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탄의 농간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메시지가 참으로 성모님의 메시지냐 아니냐하는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메시지의 내용이 교회와 성서의 가르침에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


두 번째 기준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교회에 절대 순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


세 번째의 기준은 그 메시지의 내용이 善한 쪽으로 열매가 맺어지느냐, 아니면

惡한 쪽으로 열매가 맺어지느냐?

선한 쪽의 열매는 순종 기쁨 일치...

악한 쪽의 열매는 불순종, 분열,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우리 교회는 이천 년 동안 이 세 가지의 기준을 중심으로 성모님의 메시지가 참이냐 ,아니면

악령의 역사이냐를 구분하고 결정을 지어왔습니다.


성모님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신 내용을 종합을 해보면

첫 번째가 지금이 환난의 시대라고 합니다.

환난의 시대란 사탄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들끓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사탄은 힘을 쓸 수가 없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지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발악을 하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신앙이 없는 사람의 입에서도 어떤 얘기가 나옵니까?

‘인간들 이러다 벌 받지, 벌 받아.’

다시 말하면 사람이기를 포기한 일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성모님은 지금이 환난의 시대라고 하는 것을 징표를 통해서 알려주셨는데

첫 번째 징표가 뭐냐?

오류가 교회 안에 번지고 있다.

인간의 지극히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교회이기 때문에 때로는  가라지를 통해서

악이 교회를 점령하려고 많은 역사를 합니다.


각 성당마다 조용한 성당이 없습니다.

2천 년 전에만 바오로 아폴로파가 있는 게 아닙니다.

한국 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도 많은 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그 성당에 똑똑하다고 하는 인간들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파들이 세력을 구축해서

그것도 무슨 알량한 기득권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그 칼을 갖고 흔듭니다.

이렇게 교회가 분열되는 것도 교회의 어둠입니다.

그 오류가 놀랍게도 저명한 신학자들, 진보적인 신학자들에 의해 정통교리를 뒤흔듭니다.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는 27년 동안 재위하면서 수많은 진보적인 신학자들과 맞서서 싸웠습니다.

‘낙태를 해도 된다.’ ‘지옥은 없다.’

그 많은 신학자들 가운데는 파문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 현 베네딕또 16세 교황이 신학성성 장관으로 계시면서 뒤에서

아주 굳건한 신학적인 뒷받침을 통해서 그 많은 오류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에는 뒤돌아보면 2천 년 동안 내려오던 수많은 아름다운 전통들이

‘진보다, 자율이다, 세상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라는 미명하에 너무나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수녀들도 세상과 가까워져야한다는 미명하에 수도복을

다 훨훨 벗어버리고, 귀걸이를 달고, 루즈를 칠하고, 담배를 꼬나물고 삽니다.

어느 수녀원에 갔더니 할머니 수녀들만 있는데 사복을 입고 알코올중독에 빠져서 살을 덜덜덜덜...

떨고 있고, 이게 수녀원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끊임없이 성소자들이 늘어나는 데는 지금도 대기하고 있는 데는 봉쇄수녀원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거룩함, 그것을 늘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별히 한국교회에 침투하고 있는 오류 중에 하나가

하느님께 무릎을 못 꿇게 만드는 장궤틀을 없애는 것이 아닐까?

전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장궤틀 없애는 천주교회는 대한민국 천주교회밖에 없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하는 첫 번째 경배행위가 하느님에게 무릎을 꿇어야 되는데

명동성당부터 장궤틀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수백억의 성당을 지으면서도 장궤틀을 안 놓습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교회의 잘못입니다.

교회가 신자들을 끌고 구덩이로 같이 들어가는 겁니다.


장궤틀을 생전 구경을 못하던 신자들은 무릎을 꿇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성지에 와서 뭐라 그러느냐?

‘역시 성지라 친절하셔, 발 시려울까봐 발틀까지 준비해주시고...아, 여기는 물건 올려놓는

물건 틀이구나.’

해설자가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면 왜 무릎을 꿇어야하는지도 몰라 당황합니다.

사탄은 이렇게 우리 교회 안에도 자기 세력을 침투시킵니다.


전통적인 성당은 성당 문을 열고 성수를 찍으면서부터 반 장궤를 합니다.

또 제대 앞에서 자기자리에 들어갔다 나올 때도 반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성체성혈이 축성이 될 때는 설사 내가 국왕,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무릎을 꿇어야 됩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교회에 장궤틀이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지극히 세속적입니다.

‘신자들 많이 앉게 하기 위해서 장궤틀 길이만큼 성당 안이 좁아진다.’

‘장궤틀 놓는 단가가 더 비싸다.’

그 일을 저지른 사제들이 하느님 앞에 심판받을 때

“너 왜 너 신자들 내 앞에 무릎을 못 꿇게 했느냐?”

“예, 돈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첫 목요일, 첫 금요일, 첫 토요일 신심행사가 다 없어졌습니다.

본당마다 주일날에도 향을 피우지 않습니다.

성시간이 있는 본당이 많지 않습니다.

영성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에게 나아가야 되는데  그런 고요한 신심행위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현대인들에게 맞추고 살아야한다는 핑계로... 다 없애버렸습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 가야됩니다.

신앙은 애초부터 불편하고 힘든 겁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요령을 부리려고 한다면 신앙이 아닙니다.

그건 종교이고, 그건 취미생활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기로 한 순간부터 십자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교회도 세상 흐름과 마찬가지로 편하게 하려고 하고

쉽게 쉽게 넘어가려하고 몸으로 봉사하는 대신 돈으로 때우려고 한다면 그건 신앙이 아닙니다.


지금이 환난의 시대라고 하는 첫 번째 뚜렷한 징표가 교회 안에 어둠이 들어오고 있다.


또 한 가지 큰 어둠은 이제는 교회가 사탄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안 가르칩니다.

수녀원에서도 마귀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안 가르칩니다.

사탄에 대해서 못 배운 젊은 신부가 나와서 예비자 교리, 아니면 강론 때

사탄과 어떻게 싸워야 될 것인지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신학교 안에도 어둠이 들어와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들에게도 물어보면

‘신부님 지금 세상에 사탄이 어디 있습니까? 그거 다 신화입니다.’

그게 어찌 신화입니까?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와 싸웠던 것이 신화고 소설입니까?

예수님이 틈만 나면 사탄을 쫓아냈던 것이 그것이 전부다 신화입니까?

어둠이 사람사이를 가로막듯이 이정도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이 오류에 빠지지 마라...특별히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오류가 퍼지고 있으니 늘 경계하라!’


두 번째 환난의 시대 징표는 독성죄가 퍼지고 있다.

독성죄가 뭡니까?

거룩하게 축성된 몸이나 건물을 모독하는 겁니다.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세례 때부터 거룩하게 축성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성령이 살아계시는 궁전입니다.

우리의 영과 육을 다 망가뜨리려고 사탄은 끊임없이 공격을 합니다.


지금은 각 분야마다 독성죄가 퍼져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 퍼져있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틀다가 멕시코 영화를 하나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아무개 신부의 죄악’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내용을 보니 신부 넷이 나오는데 그 신부 넷이 전부다 동성연애를 하면서

그 영화에서 오만 추잡한 짓을 다하는 겁니다.

사이코 신자가 하나도 나오는데 그 신자는 헌금을 할 때마다 동전하나를 넣고 꼭 지폐를 가져갑니다.

그 영화에서는 천주교 신자를 도둑놈으로 모는 겁니다.

그 신자는 성체를 영하는 척하면서 입에다 넣고 나중에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성가 책에다 뱉었다가

그  성체를 가져가서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의 밥으로 줍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영화로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영화감독 하나만 마귀가 사로잡으면 사탄의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그런 영화들이 외국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일반적인 것 가지고는 흥행이 안 되니까 거룩한 것을 똥구뎅이 속에다 쳐 집어넣는

그런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듭니다.


수녀들끼리 간음하는 것을 주제로 영화를 만듭니다.

그런 영화가 지금 케이블 TV를 통해서도 들어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케이블 TV로 이렇게 들어올 수가 있는가?

‘야 천주교가 이렇게 썩었구나. 신부들이 이렇게 동성연애를 하는구나.’

그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상상을 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비판을 하지 않겠습니까?


글을 쓰는 소설가를 마귀가 휘어잡으면 사탄의 책이 만들어집니다.

곡을 만드는 작곡가를 마귀가 휘어잡으면 사탄의 곡이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 중얼 중얼거리는 랩, 번역해보면 그 내용은 끔찍합니다.

사탄숭배, 자살해라... 자살은 축복이다.

애들은 뜻도 모르고 중얼중얼대지만 저주스러운 내용들이 그 랩 안에 들어있습니다.


지금은 독성죄가 퍼져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 퍼져있습니다.

여러분의 몸뚱이 거룩한 성전이라 그랬는데 또 얼마나 오염이 되어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꾼들의 환전상을 둘러엎으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도둑놈의 소굴로 만들지 말아라.

내 아버지의 집을 더럽히지 마라... 하셨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수많은 어두움이 내 영혼을 괴롭히고, 내 가족들의 영혼을 타락시킵니다.


사제들도 정신 안 차리면 저 밑으로 떨어집니다.

수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원 안에서도 재산 싸움을 하고 사제들끼리도 싸울 수가 있습니다.

환난의 시대 두 번째 징표는 오류가 교회 안에 번지고 있다.~~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축일:8월27일 성녀 모니카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인제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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