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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에겐 거짓이 없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4 조회수1,074 추천수14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 그에겐 거짓이 없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는데 허경영 총재가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표와의 혼인설,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양자설 등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려 옥살이를 일 년 반 정도 한 뒤 출감하여 바로 쇼프로에 출연한 것입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회개 한 줄 알았더니 더 상태가 나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전히 영혼이 몸을 떠나 외계인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한다든가 축지법을 쓴다든가 물 위를 걷는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강을 걸어서 건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많은 것들 중에 하나를 시범으로 보여 달라고 하자, 대통령 될 사람이 마술사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그런 것들을 보여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공중부양을 보여준다고 하더니 한 쪽 발만 높이 들어 중력을 덜 받고 있다는 헛소리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와중에 눈만 보면 아픈 곳을 0.1초 안에 고쳐준다고 하면서 진행자 세 명의 눈을 쳐다보며 아픈 곳을 고쳐주었습니다. 정말 희한한 것은 고쳐주기 전에 오링테스트를 할 때는 손가락이 잘 떼어지더니만 그 사람이 눈만 쳐다보고 나면 손가락이 꼭 붙어 아무리 떨어뜨리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진행자들도 깜짝 놀라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저도 그것을 보면서 100%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것들은 잊고 ‘참 희한하다.’라는 생각으로 재밌게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정말 사람은 속기 쉬운 동물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백가지 중 한 가지만 맞아 들어가면 사람들은 그것에 미혹되어 나머지 의심스러운 것들을 잊고 속아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지만, 일부 종교에서 벌어지는 전 재산을 다 갔다 바친다든지, 동반자살을 한다든지 등의 황당한 사건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격조사를 해 준다고 하면서 각자에게 똑 같은 성격유형의 결과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수백 명이 되는 사람들은 똑 같은 결과를 받아들고 서로 참 정확하게 자신의 성격을 맞추었다고 감탄하였습니다. 자신의 성격과 다른 결과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내용 중에 자신과 관련되는 것이 적어도 몇 가지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책임감이 있고 주위 사람과 잘 조화를 이룬다는 등의 좋은 내용은 다 자신의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사주팔자나 철학관에서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저도 관상을 조금 공부 해 봐서 알지만 얼굴에 나와 있는 독특한 면을 찾아내어 말해 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감탄하고 더 많은 것을 물어보고 알고 싶어 합니다. 이때부터는 매우 편해지는데 미래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말해 주어도 50%의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 50%는 단골이 되고 그 사람들이 선전해 주어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 자대 배치 받아 선임의 관상을 보아주고 편하게 지냈던 생각이 납니다. 사람의 얼굴은 표정을 짓는 대로 변해가기 때문에 얼굴을 보고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두 가지 놀래켜 준 다음에 좋은 말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임들은 자신들이 있는 것을 저에게 다 갖다 바쳤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나가서 취직을 잘 하든, 예쁜 여자와 결혼하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좋게만 말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천주교 많은 신자들이 고백성사를 볼 때, 철학관을 다녀왔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느님보다는 그런 속임수에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잃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신적 속임수에 당하지 않고 하느님만을 믿을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복음이 그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서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는 말만 듣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백인대장이나, 부활한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서야 믿었던 토마 사도와는 대조적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어떻게 작은 근거로 미신이 아닌 참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믿음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거짓이라도 있는 사람은 자신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남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도 못 믿는데 하느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 왜인지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볼 땐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쉽게 속임수에 당합니다. 거짓이 없는 사람은 진리이신 하느님을 쉽게 받아들이고 믿지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진리를 믿지 못하고 거짓을 믿어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따라서 철학관에 가서 그 사람들을 믿거나 속임수에 당하는 사람들은 순진해서가 아니라 진실하지 못하여 하느님만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바르톨로메오처럼 저절로 진리를 온전하게 믿게 되고 그러면 다른 속임수엔 빠지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르톨로메오에게 하신 말씀처럼 참 이스라엘 사람, 즉 참 하느님 백성은 거짓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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