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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9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3 조회수390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주간 제15주일 월요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것입니다. 종교로 인해 가족간에 불화가 생겼을 경우에 우리 그리스도교를 믿는 입장에서는 오늘 말씀으로 위안 삼으려고 할 것이며, 우리 성직자 중에는 물론 이런 분은 안 계실 것이지만 일부 무책임한 목회자의 경우에는 오늘 말씀을 알려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단락의 말씀은 두 가지 관점에서 묵상하고 있으며 첫 번째는 당시 시대상황의 관점에서, 다른 하나는 진리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시기 전에는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분노를 이성적으로 극복하고 승화할 줄 알아야 하느님을 닮은 사람의 아들이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노를 승화시켜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모든 인류에게 성령의 은총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은,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였으며 로마의 폭정에 항거하는 민심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이런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구절로는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루카 13,1)하였습니다. 당시 사회는 로마제국에 협조하여 이득을 취하는 기득권세력과 이에 항거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민중들은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기득권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생각에 따르는 통합을 주장하며 평화를 외쳤을 것이며 분노할 줄 아는 의로운 사람들은 항거를 주장하며 칼을 외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불의한 기득권세력의 주장에는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항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협심에는 동조하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동조할 수 없으므로 제3의 길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신 이 말씀의 의미는 나는 위선적인 평화를 주장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계시며, 민중들의 의협심에 백번 공감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도 칼을 들고 싶지만 민중봉기의 방식으로는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하신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이 분열하여 서로 원수가 되는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면 민중봉기는 성공하지도 못하고 가족끼리는 물론 민족들도 서로 분열하여 원수로 지낸다는 뜻 같습니다. 지금 우리도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는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각자가 분명한 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적인 사안만큼은 교회 지도자의 지시도 따르지 않으므로 교회 지도자분들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파적 지지를 떠나서 어느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지는 알려주는 것이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성장과 분배 등 이런 잘못된 이분법적 인식 때문에, 이를 이슈화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유발시켜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언론과 이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의 당리당략 때문에 우리 사회도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장하신 민족 구원의 길은 로마당국에 협조하는 길도, 민중봉기를 통한 투쟁의 길도 아니며 우리 민족이 서로 사랑하며 자비를 실천하면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우리 모두가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제3의 길인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위 말씀을 진리의 관점에서 묵상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집안사람들로 부터도 박해를 받으므로 이를 극복하여야 진리의 삶을 살아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진리의 길은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길이지만 그렇지 않고 도그마를 신봉하여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을,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는 것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하신 두 번째 단락 말씀은 진리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는 말씀으로 요약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의 창조질서가 진리입니다. 혈연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창조질서인 진리이고, 진리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절대적인 것이므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진리의 삶을 살아서 우리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평화를 누리며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이런 진리의 삶을 사신 분들 덕택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이며 우리 후손들도 그분들의 공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므로 그분들의 영혼은,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은 죽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이런 진리의 가르침에 얼마나 충실 하느냐에 따라 우리 그리스도교의 생명력도 이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으므로 복음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 된 도리이고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께 대한 순종일 것입니다. 복음을 실천하므로 써 하느님 나라의 백성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므로 순종은 복음의 실천을 뜻하고 있으므로 교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순종과는 다른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은 교우들의 입장에서는 중세처럼 교회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는 그런 세상도 아니므로 성직자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순종에 대해서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획일성을 중시하였던 기존의 사고와는 다른 미래세대의 다양한 사고는 이러한 순종에 대하여는 많은 거부감을 가질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교회 봉사자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므로 강요된 순종보다는 감동을 주는 교회로 빨리 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실천하면 아빠 하느님의 모든 축복을 받을 것이며, 예언자로 받아드리면 예언자의 축복밖에는, 의로운 사람으로 받아드리면 의로운 사람의 축복밖에는 받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마태오 복음서 10장의 말씀은 오늘로서 끝나므로 내일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11장의 말씀을 기대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세속적인 모든 가치를 포기하는 어렵고 힘든 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여야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예언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예언자의 축복을
의로움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의로움의 축복을 받을 것이며
가르침의 전부를 실천하는 자는 하느님의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복음의 실천만큼은 마음껏 욕심내는 저희들이 되도록
세속적 욕망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고, 성령의 물로 깨끗이 씻어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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