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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리읽는 복음/연중 제15주일 - 열 두 제자의 파견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1 조회수545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15주일 / 마르 6,7-13


열 두 제자의 파견.

"그 뒤에 예수께서는 여러 촌락으로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다가 열 두 제자를 불러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그리고 여행하는 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파견하심으로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시다. 열 두 제자들과 한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서 한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공동체는 점점 더 커져서 생명의 빵을 먹을 때에는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큰 공동체로 성장될 것이다.

이번까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모두 세 번째이다. 첫 번 째 부르심은 "나를 따라 오라"(1, 17)는 "따름"의 성소이고, 두 번째 성소는 제자 단을 구성하시어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신"(3, 14) 일치에의 성소이며, 세 번째 성소는 "둘씩 짝지어 형제들에게 파견하시는"(6, 7) 파견의 성소이다.

크리스찬의 모든 성소는 이와 같이 세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각자의 삶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으로, 따르는 것에서 당신과 함께 일치하는 것에로, 당신과의 일치에서 모든 이들에게 파견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오늘 복음은 세 번째 성소인 파견을 위한 부르심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전도 여행의 모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세 단계의 성소를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따름"은 반드시 "함께"로 발전되어야 하고 "함께"는 반드시 "파견" 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 세 단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이뤄질 때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낮선 곳에 파견될 때 둘 씩 짝지어 간다는 것은 우선 서로 도와주며 서로의 신변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의미는 증거를 위해서이다.

유대교에서는 증인들의 증언을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적어도 두 사람의 증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선포하는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람을 필요로 한다. 또한 둘은 공동체를 이루는데 최소한의 숫자이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교하자"는 슬로건이 있듯이 크리스찬의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의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띄고 있는 공동체이다. 둘이라는 숫자는 앞으로 점점 발전되어 큰 공동체를 이루게 될 예수님의 공동체요, 제자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크리스찬의 성소를 살지 않는 것이고,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파견된 사람"으로 서의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견된 사람으로서 일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보람을 느낄 수 있겠으며 무슨 기쁨을 맛볼 수 있겠는가?

지팡이는 주로 길을 걸을 때 야수의 습격이나 강도들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안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팡이는 다른 의미가 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 든 하외다."(시편 22, 1-4)라고 노래했듯이 지팡이는 목자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도 지팡이 를 갖고 다녔고 주교님도 지팡이를 갖고 입장하신다.

주교 서품식 때 주례주교는 새 주교님에게 "이 목자의 지팡이를 받으시오"라고 말씀하시면서 지팡이를 건네주신다. 즉 양 떼들을 잘 돌보는 목자로서의 임무를 맡기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팡이를 갖고 다니라는 것은 그네들의 신변이 목자이라는 것을 그리고 목자로서 양떼를 잘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뜻이다.

지팡이는 손의 연장이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너는 너의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팔을 뻗쳐 물을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건너 가게 하여라."(출애 14, 16)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네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그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와 이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출애 17, 5-6)고 말씀하셨다.

지팡이는 하느님의 권능을 뻗치게 하는 도구이다. 지팡이를 갖고 가라는 것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라는 말이다. 여행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다 마련해 주신다는 것이다. 지팡이만 갖고 가라는 것은 하느님하고만 가라는 것이다.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은 버리고 오직 하느님하고만 가라는 것이다.

복음 선포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갖고 가라는 것은 하느님께만 의지하여라. 하느님하고만 가라. 하느님의 힘으로 하라는 뜻이다.

복음선포자의 삶은 가난한 삶이다. 그러나 이 가난은 선택한 가난이다. 내가 못나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오는 가난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삶이다. 무엇에 얽매인 삶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삶이다.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필립 3, 8)

복음 선포자가 무엇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요, 사랑한다는 것은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면서도 가난하게 사셨던 것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것이 아닌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즉 우리의 온 몸을 던져서 전해야 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5,25. 32-33)라는 말씀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정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먼저 자기가 먹고 마시며 걸칠까 하는 것을 걱정한다면 절대로 말씀을 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유 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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