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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이 곧 행복이다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674 추천수7 반대(0) 신고

 

  

 

 

 

요한 20,24-29

토마스 사도는 항상 열두 제자 중 가장

의심이 많은  제자로 기억되는 불이익을 얻고 있다.

사실 나머지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을 곧바로 믿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자들의 전갈을 듣고,

갈릴래아 산에 모인 제자들은,

약속대로 자신들 앞에 나타나 주신 예수님을 보고도

더러는 의심 했다(마태 28,17).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들도 마침내 예수님을 알아보고

열한제자들이 모여있던 예루살렘 공동체로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다고 증언했는데......

그 이야길 하고 있는 동안, 공교롭게 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손과 발을 만져보라고 내미시는데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루카 24, 37-41).

 

예수님께서 음식을 잡수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경 말씀을 풀이해주시는 것을 들으며 그들은 크게 기뻐하기는 했으나,

그분의 부활을 의심없이 믿었다는 이야기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루카 24, 41ㄴ-53)

 

마르코 복음서의 기록은 더욱 심하다.

주간 첫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은 천사로 보이는 젊은이를 만난 후,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려갔고,

두려워서 끝내 아무에게도 말을 전하지 않았다(마르 16,8) .

 

후대의  최종편집자는 그 결말이 하도 딱했는지,

전해지던 전승들 중에서 네개의 에피소드를 덧붙였는데,(16, 9-20) 

네 개의 에피소드 모두, 한 목소리로,

제자들이 믿지 못한 사실은 번번이 강조한다(11절. 13절.14절.)

 

그래서 결국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은, 제자들의 선포 때문이 아니라(일부 공적은 있겠지만- 20절 ),

주님 자신의 권능으로 세상 곳곳에 퍼져나갔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20절 ㄴ,ㄹ) 

 

 

 

 

때 아니게 공관복음서를 찬찬히 훑어본 것은

토마스 사도의 억울함을 벗겨 드리려는 의도다.

 

사실 토마스 사도는 '의심하는 제자들' 모두를 대변하고 있다.

여드레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나머지 사도들도

전폭적으로 예수 부활을 믿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의심이 싹 가셔질만큼 별것 아닌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한복음 자체 내에서도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여자들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숨차게 달려갔던 베드로 사도 역시 

빈 무덤을 들여다보고 나서도 무슨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20, 10)

 

오죽했으면 요한복음서의 최종편집자는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의 이야기 하나를

복음서 끝머리에 하나 더 덧붙여놓는다.

 

테베리아스 호숫가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알아본 사람은 오직,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하나였다는 것이다(21.7).

그는 빈 무덤을 보고,  믿었던 오직 한 사람이었다(20,8).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

그는 최후의 만찬 식탁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앉아있던 제자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예수님의 어머니 곁에 서 있었던 제자다.

 

'예수님의 품'이 알려주는 바,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섬세하게 살핀 제자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이 시사하는 바,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 동참한 친구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암시하는 바, 예수님의 영원한 고향이며 위로였던 어머니를 보필한 형제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믿을 수 있는 은총을 누린다.

 

 

믿음을 제일 처음 가진 제자가, 바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는 사실.

그것은 사랑을 주고, 받는 사이일 때만 믿음이 생긴다 것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렇다.

'믿음',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세심하게 알아주고 살펴줄 때 저절로 싹트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어줄 때 저절로 꽃피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짊어지고, 보필해줄 때 저절로 열매맺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주시며 길을 가르쳐주시는 스승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지신 친구가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형제가 아닌가?

 

이 분을 믿지 않고 우리가 누구를 믿을 수 있겠나?

 

 

사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너무나 불행하다.

아무리 가까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사이도

서로 믿음이 없다면 그만큼 슬픈 일은 없다.

 

믿어야 할 사람, 믿을만한 사람을 못믿고

자꾸 의심을 하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이다.

의부증, 의처증, 피해망상증과 같은

의심증을 병적으로 앓고 있는 사람의 주변에서는

의심을 받는 사람도, 의심을 하는 사람도

매일 생지옥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것은 행복이다.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은 그들이 믿을만한 어떤 검증된 결과를 항상 제공해서가 아니라,

신뢰하고 믿어주는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아무튼 믿을만한 사람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행복하다.

언제라도 달려와 줄 믿을만한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의 참된 길을 가르쳐줄 믿을만한 스승이 곁에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아니, 그 모든 누구가 바로 예수님 같은 분이라면

그런 분을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 이제 캄캄한 의심의 골방에서 그만 밖으로 나오라.)

 

 

 

    Forever You / H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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