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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뿌스띠니아와 뿌스띠니끼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30 조회수512 추천수3 반대(0) 신고
온 가족이 모두 다른 어떤 마음 상태보다도 침묵과 고독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많은 종교 단체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나는 헌신의 삶과 비움의 삶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있든 맹세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모두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장 강한 사람의 영혼도 흔들어버릴 정도의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신경증을 앓고 있는 시대이고, 불안을 느끼고 있는 시대이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시대이고,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시대이고, 정신안정제를 먹어야 하는 시대이고, 병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시대여서 현실과 책임감에서 도피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시대는 부(富)와 권력을 우상으로 떠바치는 시대이기도 하다.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은 이러한 우상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너무나 거대하여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십계명 중 첫번 째 게명이 다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생명이 전멸하는 어둡고 불길한 전쟁의 구름이 다가 오고 있다. 곳곳에서 장송가가 울리고 있고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태세이다.
 
우리를 이렇게 억누르고 있는 이런 모든 어둠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
대낮도 캄캄하게 만드는 이런 모든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
하느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
 
나에게 한 가지 대안이 있다. 뿌스띠니아(the poustinia)이다. 뿌스띠니아는 기도, 회개, 고행(苦行), 침묵, 고독, 사랑의 성령을 받는 것, 속죄,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옛 예언자들의 영혼을 얻는 것을 뜻한다. 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나의 동료들과 형제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간구하는 것이다.
그렇다. “더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는 것”이 뿌스띠니아일 수 있다.
사막에 들어가고 외로운 곳에 들어가고 고요한 곳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두 손을 들어 하느님께 기도하고 회개하고, 자신의 죄와 형제들의 죄를 속죄하고 하느님께 간구하고 하느님께 되돌하가는 것이다. 뿌스띠니아는 진리의 말씀을 드릴 용기를 갖고, 하느님은 진리시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한 곳이다.
뿌스띠니아는 천사가 예언자의 입술에 놓아 불타는 불꽃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정화(淨化)하고 그렇게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다.
 
“뿌스띠니아”는 러시아어로 “사막”을 뜻하며 보통 명사이다. 내가 러시아의 어린 소녀였을 때 선생님이 지리 시간에 나에게 “사하라 사막”의 이름을 물었던 그런 사막이다. 그것이 뿌스띠니아가 뜻하는 것이다. 또 옛날에 모든 것을 버리고 외롭게 고행(苦行)을 했던 “교부들의 사막”을 뜻하기도 한다. 서양인의 의미로는 은수자(隱修者)들이 찾아가는 쓸쓸한 외딴 집을 뜻한다.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계시는 조용하고 외로운 곳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또 은수자들이 여생을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침묵과 기도하기 위하여 갔던 외딴 집을 말한다.
그러나 뿌스띠니아는 반드시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는 외딴 곳일 필요는 없다.
집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작은 방을 뿌스띠니아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뿌스띠니끼(poustinik, 뿌스띠니아에 머무는 사람)”는 성별(聖別)된 곳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농부, 공작(公爵), 중산층의 사람들,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들, 어떤 부류의 사람들도 뿌스띠니끼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죄나 세상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 드리려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막”에 들어가는 사람 또 기쁨과 재능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모두 뿌스띠니끼가 될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충고하러 가셨던 한 뿌스띠니끼와 가까이 지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다. 어머니와 나는 맨발로 거기로 가서 맨발로 돌이왔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도착하면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에는 빗장이 없었다.
그 뿌스띠니끼는 항상 거기에 머물면서 방문하는 사람을 누구나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머니는 통나무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성화(聖畵)에 절을 하셨다. 그런 다음 그 뿌스띠니끼에 절하고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하고 말씀하셨다. 나도 따라 하였다. 그러면 그는 우리에게 차와 빵을 내어 놓고 “하느님의 자비로 나에게 보내주신을 것을 어서 함께 나눕시다.”하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바깥에 놀러나가고 어머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런 다음 우리는 집으로 돌와왔다.
이 사람을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가 그 동안 알게 된 다른 뿌스띠니끼들은 이른바 “은수자”였다. 그러나 은수자와 뿌스띠니끼는 약간 달랐다. 그 뿌스띠니끼아는 말이 통했다. 그는 누가 찾아와도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반갑게 대하였다. 그는 손님을 맞을 때에는 언제나 환하게 웃었으며 그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다. 그는 손님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말이 별로 없고 항상 듣는 편이었으며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가 육화(肉化)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을 항상 위로하고 이해하고 사랑했다.
그리나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그는 여기저기에 많이 불려 다녔다. 마을 사람이 그를 필요로 하면(예를 들어 농부가 비가오기 전에 건초가 필요하면) 그 뿌스띠니끼에 달려가서 그의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 그는 즉시 만사를 제쳐두고 그 농부에게로 갔다.
이 때문에 누구나 그를 항상 이용할 수 있었다.
 
보통 뿌스띠니끼는 남자였지만 여자도 있었다. 또 홀애비 뿌스띠니끼도 있었고 과부나 독신 뿌스띠니끼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가끔 농부도 있었는데 겨우 글을 읽고 쓰는 정도였다. 또 뿌스띠니끼 중에는 간혹 귀족도 있었는데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가 뿌스띠니끼라고 전해진다. 백성들에게는 몇 년 동안 황제가 보이지 않았던 일은 수수께끼였다. 러시아에서는 30-35세 정도가 되면 뿌스띠니아에 가고 반드시 노인이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뿌스띠니끼를 ‘staretz’(여성의 경우 ‘staritza’)라고 불렀는데, ‘늙은 이’ 또는 ‘현자(賢者)’의 의미를 갖고 있다.
게중에는 노인들뿐만 아니라 결혼하여 아이를 둔 사람들도 사막의 매력을 느껴 뿌스띠니아에 들어 갔다. 그러나 대부분 30-40 세의 사람들이 뿌스띠니아에 들어갔다.
뿌스띠니아에 들어 가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시골 사람이나 귀족이나 상인들과 같이 사회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들어갔다(물론 사람들이 뿌스띠니아에 들어가는 이유는 하느님만 아신다). 러시아인들은 사람들이 뿌스띠니아에 들어가면 “거기서 하늘이 땅을 만난다(where heaven meets earth).”고 말했다. 뿌스띠니아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순례자의 복장으로 들어갔다. 여름에는 남자나 여자는 요즘 여자들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손으로 짠 리넨(linen) 옷을 입었으며 허리를 보통의 끈으로 동여 매었다. 그리고 빵 한 조각과 소금과 호리병박에 물을 담아 리넨 가방에 넣어 갖고 갔다. 
이렇게 뿌스띠니끼는 가족이나 마을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뿌스띠니아로 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순례여행을 떠난다는 것과 뿌스띠니아에서 자신의 죄나 세상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속죄하고 금식하며 마음을 비우고 살면서 하느님의 위대한 침묵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새벽이나 야밤중에 몰래 떠나가기도 했다.
  
또 뿌스띠니끼 중에는 수도사나 수녀도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수도사와 수녀는 묵상을 많이 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수도원이나 수녀원의 허락을 받아, 뿌스띠니아 즉 사막에 사는 사람인, 뿌스띠니끼로 지내기도 했다. 어떤 수도원이나 수녀원은 광활한 부지 위에 있었으므로 경작되지 않는 불모지도 많이 있었기에 거기에 뿌스띠니아를 정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수녀인 경우에는 움막을 짓기도 했다.
또는 그들은 단지 떠나가는 것만 허락 받을 때도 있었는는데 자신의 사막을 찾든 움막을 짓든 무엇을 하든 간섭을 받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거룩한 곳으로 순례여행을 가서 거기서 기도하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는 영감을 얻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다음 다시 수도원을 나가서 기도하면서 그 장소를 찾을 때까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렇다. 그 당시에는 러시아어로 ‘startzi’라고 부르는 무척 다양한 뿌스띠니끼 즉 사막에 머무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많지 않았다. 여자들은 보통 늙어서야 뿌스띠니아에 살기 시작했다.
 
또 러시아에는 뿌스띠니끼와 비슷한 ‘urodivoi’가 있었는데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들(fools for Christ)’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나의 아버지의 친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피터(Peter)였으며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장남이었다. 미국식으로 말하면 백만장자로 은행에 많은 금과 은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어버지에게 와서 “데오도르(Theodore),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그렇게 했듯이 나는 복음서들을 읽고 복음서에 있는 대로 살기로 결심했소이다.”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듣고만 있자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지금 내 재산을 챙기러 가고 있소. 나는 내 농장들과 부동산들을 내 가족에게 모두 물려주고 은행에 있는 돈은 금과 은으로 바꾸려하오.” 그는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아버지를 은행으로 데리고 가서 모든 돈을 금과 은으로 바꾸었다.
그 당시에는 트럭이 없었고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짐마차만 있었다. 아버지는 그가 갖고 있던 짐마차는 1 톤 아니면 1.5 톤 정도의 트럭만큼 아주 컸다고 말했다. 그 마차에 금과 은이 가득찬 마대가 가득 실렸다. 피터는 아버지를 데리고 지금의 빈민가와 같은, 페트로그라드(Petrograd)의 가난한 동네로 가서는 모든 집에 금과 은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마차가 비자 피터가 말했다.
“이제 하느님의 몸값으로 지불할 30조각의 은밖에 없소. 이제 집으로 돌아 가야겠소.”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가자 그의 침대에는 리넨으로 만들어진 옷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리넨 가방에 한 조각의 빵을 넣고 다른 작은 리넨 가방에는 약간의 소금을 넣고, 물 한 병과 지팡이 하나만 지닌 채 맨 발로 아버지와 함께 페트로그라드의 거리를 지나서 시골길로 걸어갔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석양에 긴 옷을 입고 한 손에 지팡이를 든 희미한 모습이었다. 그의 옷에는 주머니도 없었으므로 돈 한 푼도 갖지 않았고 가방에는 약간의 빵과 물과 소금만 들어 있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몇 년 후 아버지가 러시아 남부의 큰 도시였던 키예프(Kiev)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던,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착한 사람들로부터 구걸하기 위하여 교회로 모이는 거지들 틈에 끼어 있었다. 그 거지들 가운데 수염을 길게 기르고 머리를 빗지 않아 텁수룩한 머리를 하고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그는 바보처럼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휑하였고 모자라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를 제외하고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아버지는 그가 친구인 피터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의 얼굴이 지적(知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포옹을 한 후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는 아침 식사를 같이 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어떻게 백치(白痴)나 모자라는 사람의 소명을 선택하게 되었소?”
그러자 피터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죽고 난 후에도 계속하여 바보 취급을 받았던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위하여 속죄하고 있소이다.”하고 답했다.
아버지는 그 후 작별 키스를 한 후 피터와 헤어졌는데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피터는 ‘urodivoi’였는데 금식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철저히 가난해져서 교회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이들을 두고 가난하게 살고 혼자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뿌스띠니아와 다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의 소명은 ‘십자가의 바보’를 증언하는 것이었다. 뿌스띠니끼와 같이 가난과 속죄와 기도의 소명을 따르고는 있지만 계속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바보라고 부르기 때문에 바보를 상징하는 ‘urodivoi’는 이 점에서 뿌스띠니끼와 다르다.
그들은 마음 속에 뿌스띠니아를 생각하면서 나무 아래나 건초 위에 자면서 온 러시아를 돌아다니는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하여 항상 구걸하고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다.
 
이런 영성적인 관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67년 내가 국제 평신도 의회(The International Lay Congress) 때문에 로마에 머물고 있을 때 우연하게 네 러시아 신학자를 위하여 통역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영어도 못했고 프랑스어도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어로 통역을 해주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아주 친해졌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러시아인들은 아직도 순례여행을 하고 있나요?”
그들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순례여행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깜짝 놀라 쓰러질뻔 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다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직도 뿌스띠니끼는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아직도 숲속에는 많은 뿌스띠니아와 뿌스띠니끼들이 있으며 공산주의자들도 뿌스띠니끼를 찾으러 숲속으로 갔더니 아직도 뿌스띠니끼들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지만 공식적인 보고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이 믿음이 버리지 않고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망각할까봐 러시아인들에게 그런 이상한 소명을 주신 것 같다. 러시아인들은 하느님을 더 영광스럽게 만들고 보다 잘 섬기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을 더 잘 알려고 하는 믿음을 가졌다. 러시아인들은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에 춥게 지내고 집 없이 지내면서, 쉬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순례여행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이러한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은 비록 편안하게 사는 것이 결코 죄는 아니지만 편안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외톨이처럼 지내며 하느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편안함만 생각하는 것도 우상이다. 따라서 이렇게 이상한 소명이 러시아인들이나 동양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도허티의 <뿌스띠니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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