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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해야 삽니다." - 10.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4 조회수510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24 연중 제30주일(전교주일)

집회35,15ㄴ-17,20-22ㄴ 2티모4,6-8.16-18 루카18,9-14

 

 

 

 

 

"기도해야 삽니다."

 

 

 

아침 성무일도 시 마음에 와 닿은 지혜서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으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원래가 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피조물 속에는 멸망의 독소가 없고

  지옥은 지상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덕스러운 자들은 지혜를 모르며 의인은 죽지 않는다.”(지혜1,14-15).

 

이래서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의인들은 죽지 않으며

지옥은 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어제 휴게 시간에 어느 수사님과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작년보다 야콘 수확이 많이 줄었지요"

 

“날씨 탓이 큽니다.

  농사는 90%가 하느님 손에 10%는 사람 손에 달려있다고 봐야 합니다.”

 

어느 분은 하느님 은총과 사람의 노력을 80%대 20%로 잡기도 하는데

대동소이합니다.

농사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도, 공동체 삶도

하느님 은총과 사람 노력이 80%대 20%입니다.

이를 깨달아 알 때 참된 겸손이요 맑은 영혼의 눈입니다.

하여 기도입니다.

80%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인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80%의 하느님을 까맣게 있고 있으며

80%의 자리에 탐욕의 돈 우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상실의 하느님 중심의 중세시대를 암흑시대라 하는데

하느님과 인간 상실의 물질 만능의 오늘날 역시

현대의 암흑시대, 문명의 야만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강을 죽이고

기름진 농토를 없애는 4대강 공사를 강행할 리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본래의 하느님 자리 80%를 하느님께서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래서 기도요 기도해야 밝은 영성에 밝은 지성, 밝은 감성입니다.

기도하지 않아 영성이 어두워지면

곧 이어 감성도 지성도 어두워져

올바른 판단 올바른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10월은 묵주성월입니다.

기도해야 허무주의라는 가을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점차 단풍 곱게 물들어 가는 산야의 단풍들

사랑의 기도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영혼들을 상징합니다.

얼마 전 산책 중 저는 참 아름다운 공동체를 발견했습니다.

사이좋게 잘 자라는 밭의 배추들이

그대로 기도공동체를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그 소감을 시로 나눕니다.

 

 

“산책 때 마다/만나는

  밭의 배추 형제들 참 착하다/늘 봐도 좋다

  늘/함께 있어도

  다투는 소리 한 번도/들은 적 없다.

  제자리를/벗어나 남의 자리 차지한 것

  한 번도/본 적 없다.

  늘 하늘 향해/찬미 감사기도 드리는

  초록빛 생명 충만한/배추 형제들

  참 고요하고 평화롭다.”

 

 

기도하는 공동체는 고요하고 평화로우나

내적으로는 믿음, 사랑, 희망 충만한 역동적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삶의 80%를 온전히 하느님 자리에 할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때

강하고 온전해지는 공동체요 개인입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살기위해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참 절박한 기도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늘을 보지 않으면,

짐승이 악마가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 향한 무수한 초록의 초목들은

하느님을 찾으라는, 기도하라는 하느님의 성사(聖事)입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 악마들, 괴물들 날로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라 했습니다.

선물인생 과제 소홀로 짐승이나 악마, 괴물이 되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기도입니다.

삶이 기도가, 기도가 삶이 되어야 합니다.

비단 수도자들만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

말 그대로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에는 우열도 등급도 없습니다.

자기 수준에 맞게 지금 여기서부터 실행하면 됩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모두가 기도가 될 수 있기에 기도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보다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신 분이기에

그분을 향한 우리의 모두가 기도가 됩니다.

늘 그분을 잊지 않고 그분을 향해 그분의 현존 안에 살 때

비로소 기도의 완성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들!”

기도 맛, 하느님 맛을 들일 때

세상맛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 저절로 초연과 이탈의 품위 있는 삶입니다.

기본적 의식주 생활로도 내적 풍요와 자유를 누립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의 기도를 비판할 것 없습니다.

오늘은 정말 바리사이를 두둔하고 싶습니다.

세리의 기도는 세리의 기도대로 진실이고

바리사이의 기도는 바리사이 대로 진실입니다.

기도한다는 자체가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정화와 성화는 기도를 배워가면서, 해가면서 일어나는 일이고

우선 기도한다는 자체만 해도 하느님을 기쁘게 합니다.

 

“오 하느님!”으로 시작해 남의 부족을 들춰내며

기고만장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세리의 기도는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아마 하느님은 아마 빙그레 웃으셨을 것입니다.

누구나 바리사이의 처지라면

이런 자기과시가 들어가는 가는 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끝으로 의례적일지는 몰라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하고 기도를 마칩니다.

좌우간 기도 안 바치는 것보다는 이런 독백 같은

자기자랑의 불통의 기도라도 바치는 게 백배 낫습니다.

사실 바리사이와 같은

모범적인 신자생활을 하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기처지의 현실에서 나온 진실한 기도가 우선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그대로 그 삶의 진실을 반영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 수뿐이 없는 절박한 처지의 세리요,

바리사이가 이렇게 기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좌우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에는 우열도, 맞고 틀림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 현실에서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면 됩니다.

 

 

기도해야 하느님을 닮습니다.

 

하느님은 공평무사하십니다.

인간 눈에 편애지 하느님 눈엔 똑같이 사랑스런 자녀들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열손 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다는 말로

빗대어 말하는데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공평무사한 하느님의 사랑은 오늘 집회서 에서도 잘 들어납니다.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참 부족한 사람들이 벗어나기 힘든 게, 차별이요 편애요,

이보다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닮을 때 공평무사한 사람입니다.

위의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을, 과부나 고아를 편애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청을 들어주심으로 평형을 유지하십니다.

당장 당신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놔두고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연민의 사랑의 표현이지 편애가 아닙니다.

마찬가지 99마리 양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처지가 절박해서 찾아 나선 주님이시오,

집 나간 탕자를 큰 아들보다 유독 사랑해서가 아니라,

탕자가 제자리를 찾은 기쁨에 차려주신 잔치 등,

모두가 공평무사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게 편협한 인간의 눈에 편애로 보이겠지만

하느님 연민의 사랑은 늘 부족하고 약한 이들을 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정작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바리사이보다 세리를 더 예뻐해서가 아니라

그의 절박한 처지에 응답하신 주님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갔다.”

 

‘의롭다’는 법정 용어입니다.

재판이 벌어져 혐의가 없다는 판정을 받을 때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세리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청했고,

재판관이신 하느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반면 꼿꼿이 하늘을 보며 기도한 철부지 바리사이는

스스로 의롭다고 판단을 내렸고 하느님도 그대로 묵인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 자는

바라사이가 아니라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편애와 차별 없는 사랑을 배우고 닮아야 합니다.

참 부족한 사람들이 벗어나기 힘든 게, 차별이요 편애요,

이보다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공동생활에서 불화의 원인 역시 대부분 편애와 차별에서 기인됩니다.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을 배워가고 닮아갈 때 마음 또한 넓어지고 깊어져,

영혼의 눈 밝아져 차별 없는 공평무사한 연민의 사랑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찬미의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바리사의 기도도, 세리의 기도도 진실하지만 부족합니다.

바리사이는 기도에 더 성장해야 합니다.

아직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면 멀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불쌍한 이들과 비교하여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유치한 독백의 기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인데 일방적으로 자기자랑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니 보기가 참 민망합니다.

세리 역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하늘을 향하여 눈도 들지 못하고 기도했는데

이것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물론 겸손한 세리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했지만

언젠가는 하늘 향해 눈을 들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기도의 절정이자 완성입니다.

정말 성숙한 겸손한 이들의 기도가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바리사이도 세리도 겸손에서 솟아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칠 때 온전한 일치일 것입니다.

하느님 또한 당신 향한 사랑과 겸손에서 저절로 솟아난

이런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겸손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하느님 사랑의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정체성 또렷한 자유롭고 행복한 참 나를 만들어 줍니다.

정체성의 위기라는 시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기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영혼 없이 살아들 가는지요.

사도 바오로의 확신에 넘친 고백은

바로 그가 얼마나 정체성 또렷한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았는지

짐작케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 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이건 교만이 아니라 확신에 넘친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언자 하바꾹의 확신에 넘친 고백도 생각납니다.

 

“내가 던진 질문에 무슨 말로 대답하실지

  내 초소에 버티고 서서 기다려 보리라.

  눈에 불을 켜고 망대에 서서 기다려 보리라.”

 

더불어 욥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위에 나타나리라.

  …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 서신 그분을 뵙고야 말리라.”

 

이런 모든 확신에 넘친 고백들

한결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며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았던,

정체성 또렷한 삶의 열매들입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해야 하느님을 닮아 공평무사한 사랑에 삶입니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즐겨 바쳐야 합니다.

기도해야 영혼이 살아 영성이요 지성과 감성도 빛을 발합니다.

주님은 정성을 다해 이 거룩한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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