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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전한 봉헌에 대한 동기들 (151-15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2 조회수1,506 추천수1 반대(0) 신고

 

완전한 봉헌에 대한 동기들
넷째 동기

 이 신심은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는 최상의 방법이다
151. 우리가 이 신심을

 충실히 실행한다면 이는

우리의 모든 선행이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이 되도록 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할 의무가 인

간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숭고한 목적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혹은 그 영광을

바라지 않는 데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공로를 바쳐 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초대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또 모든 것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므로,

마리아에게 자신을 완전히 봉헌한

 "마리아의 종"은 자신의 봉헌을

의식적으로 철회하지 않는 한 모든

 행동과 생각과 말이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쓰인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사

심이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 하

느님을 사랑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뜻만을 따르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되겠는가?

다섯째 동기

이 신심은 우리를 주님과의

일치에 이르게 해준다

152. 이 신심은 그리스도인들의

완덕인 그리스도와의 일치에로

이끄는 쉽고, 빠르고, 완전하고,

 안전한 길이다.

-이 신심은 쉬운 길이다. 
이 신심은 쉬운 길이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오시면서

닦아 놓으신 길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데에 아무런 장

애가 없는 길이다.

물론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다른 길도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고

숨은 십자가가 가로놓여 있어

중도에 극복하기 힘든 난관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어두운 밤을 헤치고 불안에 찬

싸움과 죽음의 공포를 겪고

, 험준한 산을 넘는가 하면,

날카로운 가시밭을 지나

무서운 황야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는

마리아의 길은 평탄하고 넓은 길이다.
물론 이 마리아의 길에도 치러야 할

 어려운 싸움괴 극복해야 할 고난도 있겠으나,

마리아는 항상 "충실한 종" 곁에 가까이

지켜서서 그들의 어둠을 밝히시고

그들의 의혹을 풀어 주시며,

그들이 두려워 할 때에 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어려움과의

싸움에서 그들을 지켜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이 동정 마리아의 길은 다른 길에

비해서 참으로 아름다운 장미와

감미로운 꿈의 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비록 작은 숫자이지만 성 엠프렘,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의 성인들은 이 안전한

 길을 택하여 걸어갔다.

그것은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령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이들에게 이 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성인들은

 모두 다 같이

마리아를 공경했을지라도

이 길을 전혀 걷지 않거나 혹은

조금밖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어렵고

험난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153. 마리아의

 충실한 종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마리아를 그다지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할는지 모른다. "

그들은 사회에서 박해받고,

중상 모략당하고,

고통을 겪지 않는가?"

 혹은 "그들은 한 방울의

 천상 이슬도 내리지 않는

어둡고 황량한 사막을

걸어가지 않는가?"

라고 물을지 모른다.

"마리아에의 신심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준다면 어째서

 마리아 신심가들이 이렇게도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154. 나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마리아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충직한 마리아의 종들은

마리아에게서 가장 큰 은총들과

 천상적은혜들을 받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종들은

이 십자가들을 더욱 쉽고,

또 더 큰 영광과 공로를 생각하며

짊어져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몇 번이든지

발걸음을 멈추거나 넘어질 경우에도

마리아의 종들은 한 번도 멈추게

하지 못하고 그들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이는

은총을 충만히 입고 성령의

기름을 듬뿍 받으신 마리아께서

모성적인 따스함과 감미롭고

순수한 사랑의 기름으로

그들이 지고 있는 모든 십자가를

가볍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십자가의 고난이

아주 쓰라릴지라도 설탕에 절인

 호두를 먹듯이

 이 쓴 약을 즐기어 삼킨다.

 신심이 깊어지기를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성실히 살아가고자 하며 또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꿋꿋이 지고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마리아께 대한

 신심 없이는 큰 십자가들을 결코

기꺼이 짊어지고 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달고 가볍게

해주는 마리아의 신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설익은 과일을 먹을 때 설탕을

 곁들이면 한결 먹기가 좋은 것과 같다.

155. 마리아께 대한 이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빠른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어긋나지 않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훨씬 즐겁고

쉽게 더욱 빨리 나아갈 수 있다.

마리아의 종이 되어 마리아께

의탁하면

자기 뜻대로 수 년이 걸려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가게 된다. 마리아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모든 원수를 물리쳐

이기는 빛나는 승

리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원수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방해할 것이며 뒤로 물러서게

하거나 혹은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후원과 도움 그리고 인도를 받으면,

넘어지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며

지체치 않고 오히려 큰 발걸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신 바로 그 길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된다.

156. 그대는 왜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그렇게도 짧은 기간만을 사셨고,

더욱이 그 기간 동안에도

거의 대부분을

 당신의 어머니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데 보내셨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그분이 짧은

시간 내에 완전해지셨고

(지혜 4, 13 참조)

아담이 지은 죄를 기워 갚기 위해

 오신 그분은 비록 아담은 900살

이상을 살았지만 아담보다

더 오래 사셨기 때문이다.

확실히 예수님께서는

오래 사신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성부께 순종하기 위해서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완전히

 일치한 가운데 순종하면서

사셨기 때문이다. 그

리고 자기 어머니를 공경하는

사람은 보화를 쌓는 사람과 같다고

 성령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즉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여 마리아에게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며 무슨 일이든지

 그분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이 신비의 길을 따라 매일매일

보화를 쌓는 부자가 될 것이다.

 "자기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보화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집회 3, 4).
둘째로는 "내 늙음은

하느님 가슴의 자비 안에 있다"

(시편 91,11)

는 영감받은 말씀에 대한

영적인 해석에 따라,

완전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고

낳았으며, 온 우주가 그 안에

 담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분을 자신 안에 지닐

 능력을 가졌던 것은 다름 아닌

 마리아의 가슴이었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의 가슴 안에서

젊은이들은 빛과 거룩함과 경험의

지혜를 지닌 성숙한 어른이 되고,

몇 해 안 되는 동안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나이에 이르기 때문이다.

157.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인 이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예수님과 일치하기

위한 완전한 길이다.
그것은 마리아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완전하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가장 완전하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위대하고 놀랄 만한

여행을 위해 바로 이 길을

택하셨기 때문이다.
지존하시고 무한하시며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분께서 아무것도

 아닌 땅의 벌레와도 같은

우리에게 오시고자 하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지존하신 분께서는 당신의 천주성과

거룩함은 조금도 잃음이 없이 겸손한

마리아를 통하여 가장 보잘것없는

자들이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완전하고

 거룩하게 지존하신 분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무한하신 분께서는 당신의

무한함을 조금도 잃지 않은 채

보잘것없는 마리아에 의해 이해되고,

보잘것없는 마리아 안에 있게

되기를 당신 스스로 허락하셨다.
그래서 우리들 역시 조금도

남김없이 완전히 우리 자신을

 마리아 안에 들어가게 하고 완전히

인도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분께서는 당신의 위엄을 조금도

 잃음 없이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고, 당신 스스로 우리

인류와 너무도 긴밀하고 완전하게

 위격적으로 하나가 되셨다.

그래서 우리들 역시 거절당하리라는

두려움 없이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가야만 했고 그분의 엄위하심에

우리 자신을 완전하고

긴밀하게 일치시켜야 한다.
끝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오셔서

그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하여금

존재하는 분이 되게 하셨다.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시는 그분은

시간에 의해 제한됨이 없이

어린 동정 마리아에게 당신 자신을

완전히 예속시키고자 맡김으로써

뒤에서 말한 그것을 완전히 이루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인

우리들도 우리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마리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될 만큼 완전하고 전적으로

 마리아에게 우리 자신을 맡김으로써

은총과 영광에 의해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바로 마리아 때문이다.

 

158. 만약 누군가가 예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을 하나 만들어

그 길을 성인들의 모든 공로들로

포장하고, 영웅적인 모든 덕행들로

 그것을 꾸미고, 천사들의 모든 빛과

 아름다움들로 그것을 비추고

 아름답게 하며,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이 거기 있으면서 그 길을

걸어가려는 이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부축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실을 말하건대

이 새롭고 완전한 길보다는

마리아의 티없는 길을 택할 것이다.
"그분은 내 길을 흠없이 해주셨다"

(시편 18, 33)

그 길은 얼룩이나 흠이 없고

원죄나 본죄도 없으며

그늘이나 어둠이 없는 길이다.
나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지상을 통치하기 위하여 그분의

영광에 싸여 지상에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처음 오실 때

그렇게도 확실하고 그렇게도

온전하게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듯이 마리아 아닌 다른 길을

 이 두 번째 여행을 위해 선택하시는

 일은 결코 없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첫 번째 오심과

마지막 오심,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오실 때 그분은

비밀에 싸여 있었고

감추어져 있었지만

두 번째에는 영광스럽게

그리고 찬란하게 오실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번 다 마리아를

 통해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 바로 여기에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는 것이다.

"모든 혀들은 이것에

대해 잠자코 있을지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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