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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은 동등한 인격체로 만나 먼 길 떠나는 일입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2 조회수462 추천수5 반대(0) 신고
 
 

혼인은 동등한 인격체로 만나 먼 길 떠나는 일입니다 - 윤경재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5,27-32)

 

  근년에 들어 한국 사회도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혼의 문제점은 당사자 사이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그 주변 가족이 고통을 당한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어린 자식이 있는 경우 그 상처는 상상을 넘어섭니다. 그렇기에 이혼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러시아 속담에 전쟁에 나가기 전에는 한 번 기도하고, 항해를 떠날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을 앞두고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남녀 간의 혼인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혼인 적령기가 늦어지는 요사이 결혼은 점점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최소한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의지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굉장한 요구인 듯하지만, 그 근본정신은 하나입니다. 주님 말씀을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기의 욕심을 인정하고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는 지금보다 훨씬 이혼 사건이 많았습니다. 남성위주의 사회이었기에 이혼이라는 이름보다 소박한다는 생각으로 부인을 내쫓아 버린 것입니다. 그랬기에 모세는 함부로 여인을 소박하지 못하게 이혼장을 써 주라는 율법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혼장을 써 주어 여인이 받을 사회적 지탄을 방지하고 여생을 안전하게 지내도록 만든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율법조항은 남성입장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 힐렐 같은 율법학자들은 이 조항을 더욱 폭넓게 해석하여 어떤 이유에서든 소박이 가능한데 이혼장만 써주면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요세푸스 같은 유대 역사학자는 자기 본처보다 예쁜 여인을 만났다는 이유로 이혼장을 써주고 이혼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놀랄만한 요청이었습니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만 제외하고 이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셨습니다. 간음은 남녀 간의 사사로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비 인격체로 여긴다는 표시입니다. 배우자의 인격을 염두에 두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며, 자기 욕망의 분출구로서 또 다른 인격체를 물질로 보아 이용한다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먼저 남자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다가“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말하시면서 사람의 몸에서 뼈를 취하여 그 짝인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비로소 남자와 여자가 생긴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주 하느님의 의지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인격체이며 동시에 한 뿌리에서 나와 함께 있기를 바라는 갈망이 본성적으로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하고 나머지를 종속적인 것으로 삼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남성들의 착각은 반드시 정정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는 그만큼 바보스럽고 열등한 것입니다. 남녀는 동등하되 주로 잘 하는 역할이 다를 뿐이며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협조해야 하는 분야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 조류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창세기에서 말한 두 가지 정신입니다. 예수께서도 창세기의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마르10,6-8)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부모를 떠난다.’라는 구절입니다. 우리 사회는 부모나 자식이나 서로 떠나고 떠나보내는데 서툽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붙잡아 두려고 합니다. 또 의지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혼인이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양가 부모의 문제가 되어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일명 마마보이와 대디걸이 문제를 꼬이게 만들고 스스로 하느님 앞에 선 성인으로서 판단과 인내를 소홀히 한다는 점입니다. 참 부모라면 자식의 세세한 결혼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하기에 앞서 큰 원칙을 정해주고 교육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결혼 생활이야 말로 또 다른 소명이라는 의식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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