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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4월 22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21 조회수68 추천수3 반대(0) 신고

 

제1독서
 사도행전의 말씀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도둑의 비유'를 들려주신 다음에,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7)

여기에서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수평적 이동의 통로로서의 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늘과 땅이라는 수직적 이동의 통로서의 문이기도 합니다.

곧 이 '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류에게 내려오고, 인류의 사랑이 하느님께 올라갑니다.

그러니 생명과 구원의 문입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가는 문으로서 그 문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로 들어간다.”
또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성경이 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며, ‘말씀의 문’을 통해 생명이 드나듦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는, 그 드나듦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동행하는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로 밝혀줍니다.

바로 당신이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우리가 '드나드는 문'이라 하십니다.

당신을 통해 들어가고, 또한 당신을 통해 나가는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드나들고 있는가?

혹 들어가는 문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들어가면 나갈 필요가 없는 문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사실 예수님이라는 ‘문’은 다시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요한 10,3)

그러니, 예수님이라는 이 '문'은 ‘들어가는 문’이요, 동시에 ‘나가는 문’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우리가 ‘양 우리’ 안에 머물러 편안이 자기만의 안식을 누리고자 한다면, 목자를 따르지 않는 ‘양’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 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요한 10,4)

그렇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밖으로’ 이끌어 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주와 편리로부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을 짊어지고 나가는 일입니다.

생명과 구원을 짊어지고 나가는 일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요, 먹이는 일입니다.

사실 당신께서도 그처럼 ‘성문 밖’으로 나가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요한 10,9)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문을)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양’에게 주어지는 소명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교회의 사명을 이런 말씀으로 일깨우셨습니다.
“안락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길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손에 흙을 묻힌 더러워진 교회가 되기를 나는 꿈꾼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 10,9)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당신 풀밭에서 생명의 풀을 뜯게 하소서.

당신 기쁨이 차오르고 당신 사랑에 깃들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당신의 집에 저의 거처를 마련해주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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